일단 다중 우주에 대한 생각은 양자역학의 등장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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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링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데카르트는 다중우주에 대한 설명외에도 연속적 창조론에 대해서도 말했던 철학자입니다.
이신론의 경우 인격신이 아니기 때문에 신이 세상을 한번 창조하고 나서 자연법칙으로 세상이 돌아갈 뿐 신의 자의적개입 같은 것은 없다는
신론이기 때문에 신의 역할이 창조에 국한된다는 입장이죠. 그러나 테카르트는 연속적 창조론이란 개념으로 창조와 유지(보존)에도 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했죠. 그리고 바로 그 연속적 창조란 개념에서 다중우주란 개념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그는 신이 또 다른 우주를 창조하더라도
법칙은 같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현재 물리학계의 다중우주에 대한 설명은 어떨까요? 다중우주가 있을 수도 있다 정도로 설명하고 있죠.
즉, 필연적으로 다중우주가 도출되는 논리적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할때 그 설명은 상상력과 논리적사고에
제한을 받게 됩니다. 결국 상상하지도 못하고 논리적으로 도출하지 못한다면 잘 설명하지 못하게 되죠. 그리고 그게 바로 현재 물리학계의 수준이란
겁니다. 단적인 예로 다중우주가 가능하다고 가정할 때 분기점이란게 생기게 되죠.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예를 들자면 고양이가 살아있는 우주와
죽어있는 우주로 나누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갈라지는 우주는 위치적으로 또는 시간적으로 또는 시공간적으로 어디에 위치하게 될까요?
갑자기 그 두 갈라지는 우주가 서로 만날 수 없는 거리만큼 순식간에 멀어지게 되는 걸까요? 또는 어떻게 그 모순되는 우주간에 충돌을 막을
수 있을까요? 또 한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기계론적 결정론과 다중우주는 모순적이라는 것이죠. 적어도 우주가 확률적이지 않는한 다중우주는
성립할 수 없게 됩니다. 즉, 확률이 실재해야한다는 것이죠. 결국 물리학계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중우주는 그저 공상과학이나
재미있는 영화의 소재거리 정도가 될뿐입니다. 현실이 그렇죠. 그런데 저는 5차원의 시간대(고립계)의 연속체란 개념으로 다중우주를 자연스럽게
설명했습니다. 즉, 다중우주간에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며 시간대는 자체적으로 확률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죠.
그리고 (기계론적) 결정론과 라플라스 악마란 개념은 양자역학의 등장 이후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인간이 간사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인간은 완벽히 결정되있는 것을 싫어하지만 무작위적인 것도 싫어한다는 것이죠. 하나하나 다 결정되어있는 것은 인형에 불과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고 자신이 어떤 노력을 했는데 결과가 노력과는 상관없는 무작위라는 것도 싫어한다는 것이죠. 결국 인간은 어차피 둘 다 만족하지
못합니다. 아무튼 인간의 만족과 불만족을 떠나서 기계론적 결정론이 무너지고 나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확률론적 결정론입니다.
확률론적 결정론은 쉽게 말해서 당신이 태어났다면 결국 죽게 되는 것은 분명 결정되어있지만 그 생과 사의 중간 과정에서는 확률적인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결정론을 완벽히 부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무언가가 결정되어야 이를테면 선후관계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즉, 아무것도 결정되어있지 않으면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고, 무언가가 결정되어야 그 다음의 것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저 당연하단 겁니다. 결국 기계론적인 결정론도 불가능하고 완벽한 무결정의 상태도 없다는 의미죠. 그리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생과 사가 결정되어 있다면 그 생에서 사까지 가는 과정에서 채워질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사건들의 경우의 수가 있게 됩니다.
그 모든 경우의 수는 결국 정해져있는 것이고 따라서 모든 것은 결국 정해져 있을 뿐이란 겁니다. 제가 설명한 시간대의 경우가
바로 확률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있다는 것을 가장 잘 설명해주죠. 시간대는 완비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설명한 확률적인 결정론을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위의 데카르트의 설명이 바로 그것이죠. 시간대란 구조없이 매순간
현재만이 창조된다고 설명하면 됩니다. 그 경우 미래는 아직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즉, 에너지 보존법칙을 지키는 설명과 지키지 않는
설명이 있을 뿐이란 겁니다. 하지만 두 설명 다 결국 무언가로 결정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죠. 또 현재라고 부르는 그 순간만을 경험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둘의 차이는 결국 없는 것과 같고 말이죠. 따라서 저는 에너지 보존을 지키는 설명을 택한 것입니다.
또 질량이 상대적일 경우 한 시간대에서 우주는 기준에 따라 결정된 부분(사건)과 비결정된부분(질량이 공간화되어 확률적인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결정된 것과 비결정된 것이 혼재되어 있으니 확실한 것은 기계론적 결정론과 라플라스 악마는 어떠한 경우에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곳의 사이비스런 전공자들이 저에게 변화가 불연속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하는데 저는 분명 이곳에서 증거(근거)들을 댔습니다.
빛이 절대속도는 변화의 불연속성으로 더 자연스럽다와 미시입자는 불연속 변화, 거시입자는 연속변화라는 것은 특별한 가정이며
입자라면 둘다 연속으로 변화하거나 둘다 불연속이어야 하는데 미시입자가 이미 불연속이므로 거시도 불연속이다라는 것등등하여
설명을 했었죠. 그런데도 장님이나 난독증마냥 증거증거거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되묻겠습니다.
입자의 변화가 연속이라는 증거를 한가지만 대보세요. 아마 대지 못할 겁니다. 왜 스스로 증거없이 믿고있는 것들은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저에게 내로남불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를 보통 광신도들에게서 자주 볼수있긴합니다만
자연과학을 공부한다는 인간들이 그러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저에게 증거를 대라고 하기보단 먼저 입자의 변화가 연속이란 증거를 한번 대보시길 바랍니다.
사실 수학의 경우,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생각해보면 왜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길이의 제곱은
다른 두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과 같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우리는 사실 왜 그런지 알수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증명이 되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수 없죠. 즉, 어떤 공리체계에서는 왜그런지 알수없지만 그냥 그렇게 증명이 되는게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의 철학적인 의문을 그부분에서 갖게 되면 도무지 설명을 할 수가 없게 되죠. 이처럼 수학에 익숙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왜라는 의문을 갖는 능력이 거세가 된 것 마냥 의심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철학은 왜 그런지를 궁금해 함으로써 기존의 공리나 원리를 이해하게 만들어주며
기존의 공리나 원리가 더이상 공리나 원리가 아니게 만들어 공리나 원리를 전보다 줄여갈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즉, 제가 철학적으로 사유했던 이유도 그런 이유이고 말이죠. 빛이 왜 절대속도일까요? 저는 분명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왜 빛이 절대속도인지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물리학자들의 설명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자연이 그러하니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자가 전부입니다.
오히려 과학은 '그냥 그렇구나' 라는 상태에서 멈추지 않아요
부기우 부활했구나
사스가 부기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