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sec&sid1=105&oid=001&aid=0005470552
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12/01/120116095529.htm
'불확정성 원리'라는 용어는 보통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서로 관련은 있어 보이지만 약간 다른 의미를 포함한다.
예시 1.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면 할수록,
운동량을 더 많이 교란하게 되어 (예를 들어 더 정확한 위치 측정을 위해서는 보다 짧은 파장, 즉,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지는 광자를 산란시켜야 하므로) 입자의 운동량 값이 불확실해진다.
이때 위치와 운동량 각각의 불확정성을 곱한 값은 hbar/2 이상이어야 한다.
예시 2. 어떤 파동함수가 가지는 위치의 표준편차와 운동량의 표준편차의 곱은 hbar/2 이상이어야 한다.
많은 (어쩌면 모든) 양자역학 교과서들에서, 불확정성 원리를 주먹구구식의 증명과 함께 직관적으로 설명할 때는 1, 2번의 경우를 구분짓지 않고 다 예시로 든다. 단, 엄밀하게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2번의 경우 뿐이고, 2번에서 1번이 정확히 어떻게 유도되는지 보여 주지 않는다.
내가 본 바에 따르면, 링크된 뉴스에 소개된 연구 결과는
예시 1의 '불확정성 원리'를 제대로 파고 든 것이다. (정확히는 이론 논문은 나온지 몇 년 되었고, 최근에 실험이 된 것) 측정이 무엇인지, 측정하는 행위가 시스템을 정확히 어떻게 교란하는지를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정의하여 1번에 해당하는 부등식을 유도하였더니, 기존에 생각하던 것과 조금 다른 관계식이 나왔다는 것이지.
모든 것은 양자역학이라는 이론 체계 내에서 유도된 것이고, 따라서 양자역학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식의 기사 제목은 지나친 과장이다. 단지 사람들이 그 동안 양자역학에서 부주의하게 넘어갔던 한 부분을 정확하게 정리해 준 것이지.
보통 이야기하는 불확정성 원리 증명은, 실제 측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파동함수가 관심 있는 두 물리량에 대해 가지는 표준편차만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예컨대)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때 불확정성이 생긴다는 결론을 내린다. 다시 말해 표준편차(양자요동), 측정오류, 교란, 이 세 가지를 딱히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불확정성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저 개념들을 잘 구분해서 엄밀하게 정의해 주었을 때, 실제 측정에서 나타나는 측정오류 및 교란, 그리고 파동함수가 원래 가지고 있던 표준편차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지를 이론으로 예측하고 실험으로 검증한 것이 기사에 나온 연구 결과의 핵심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이번에 확장된 불확정성 원리를 양자역학적으로 상관관계를 갖는 두 변수 (예컨대, 입자의 운동량 P와 위치 X)에 있어서 측정오차와 확률함수가 독립적이라고 보고 설명을 해보면, 다음과 같이 4가지 항이 나온다.
(dP1+dP2)(dX1+dX2)=dP1dX1+dP2dX1+dP1dX2+dP2dX2
단, dP, dX가 각각 P, X 변수의 variance라면, P1, P2가 서로 독립이므로, Var(P1+P2)=Var(P1)+Var(P2)이고, Var(X1+X2)=Var(X1)+Var(X2)임.
고전적인 불확정성 원리는 첫번째 항이고, 이번에 수정된 것은 첫 3항에 해당된다. 따라서, 마지막 항이 포함되어야 랜덤한 확률변수에 있어서는 더 자연스럽다. 물론 물리적 의미를 더 따져봐야겠지만,
일단 수학적으로는 위와 같은 전개를 해 볼 수도 있지 않나 싶음.
예전엔 양자가 무슨 의지가 있어서 보면 이렇고 안보면 저렇다 졸 신기. 이랬는데
너무 미시의 세계라 관찰자의개입자체가 미시 양자에 물리적 영향을 끼친다는게 밝혀졌다.
그거 밝혀진지 꽤 오래됨.
근데도 왜 아직까지도 신비주의적인 양자역학의 관찰자효과가 거론될까?
그것은 인간의 취향이 그런 신비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나 각종 신비주의 사이비들도 그 미신을 잘 써먹고있고.
정리
1.양자역학 관찰자 효과
2.신기한 초현실 아님
3.관찰자가 물리적으로(가령 광자 등)으로 영향 미치는 것뿐
작은 구멍을 통해서 좀 떨어진 벽에 빛을 비추는 경우에, 구멍이 작을수록 벽에 생기는 불빛의 면적이 더 커짐. 작은 구멍(즉 입자의 위치불확정성이 작음)일 때 입자는 바깥쪽으로 향하는 힘을 받아서 퍼짐(즉 운동량의 변화가 생김). 요게 불확정성 원리의 전부임. 하이젠베르크가 복잡한 행력역학으로 유도한 것을 토대로 20세기 초에는 코펜하겐 해석 이라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설명을 했지만, 최근의 해석은 그냥 자연이 저런 현상을 가지고 있다고 심플한 해석을 하고 있음.
슬릿의 구멍사이즈를 줄이면 통과하는 빛이 넓게 퍼진다는 사실만으로 불확정성 원리 ΔxΔp≥h/2π 가 바로 유도됨. 좁은 위치에 있는 입자는 운동량 편차가 커진다는 것이 그냥 자연현상임. 그래서 확률로만 미시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고 신이 주사위를 던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란 얘기임. 신도 마찬가지로 확률로 미시세계를 파악할 수 밖에 없음
생물학을 전공하는 분들도 교양으로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을 배우는지요? 많은 분들이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이 틀렸음을 알았으면 합니다.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 무너지다!!!
입자의 속도v와 위치x는 불확정적(델타,Δ)이라고 말한다.
입자의 운동량p=mv , 입자의 위치x
그런데 입자의 질량m도 불확정성 원리를 따를텐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입자의 질량m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속도v와 위치x의 불확정도(Δ)를 말하기도 한다.
Δv*Δx=h/m
h는 플랑크변수(숨겨진 변수)
입자가 발견될 확률은 위치x와 관계된다. 그런데 입자m이 발견될 확률을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입자를 관측하기전에는 그 입자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따라서 불확정성 원리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었느냐 살았느냐의 문제가 아닌 고양이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라는 물리적 실재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오자와 부등식이 발견됨으로 불확정성 원리가 부정됬음
결국 그게 의미하는 것은 양자역학의 발견으로 인한 확률적, 비결정론적인 세계관에서,
19세기의 결정론적 세계관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
Experimental violation and reformulation of the Heisenberg's error-disturbance uncertainty relation 이게 저 실험 논문입니다
정확히는 저 기사에 나온 논문은 아니고 1년쯤 있다 다시 실험한 논문입니다 초록만 대충 옮겨보자면
The uncertainty principle formulated by Heisenberg in 1927 describes a trade-off between the error of a measurement of one observable and the disturbance caused on another complementary observable such that their product should be no less than the limit set by Planck's constant. However, Ozawa in 1988 showed a model of position measurement that breaks Heisenberg's relation and in 2003 revealed an alternative relation for error and disturbance to be proven universally valid. Here, we report an experimental test of Ozawa's relation for a single-photon polarization qubit, exploiting a more general class of quantum measurements than the class of projective measurements. The test is carried out by linear optical devices and realizes an indirect measurement model that breaks Heisenberg's relation throughout the range of our experimental parameter and yet validates Ozawa's relation.
반쯤창작해석하자면
하이젠베르그에 의해 1927년 제창된 불확정성 원리는 측정가능량의 측정시 오차와 측정으로 발생한 상대 측정가능량의 변화 그들의 결과물(곱)은 적어도 플랑크 상수에 의해 결정된 한계 이상임을 설명한다. 그러나 1988년 오자와는 하이젠베르그의 관계를 위배하는 모델을 선보였고, 2003년 저 둘간의 보편적으로 성립하는 새로운 관계를 찾아냈다. 여기서 우리는 단일광자 극화 큐빗에 의한 투사법 보다 좀더 일반적인 양자 측정법을 이용한 실험적인 오자와 관계 시험을 보고하는 바이다. 이 시험은 선형 광학 장비들에 의해 행해졌고, 이 실험은 또한 우리의 실험의 매개변수의 범위를 통해 하이젠베르그의 관계를 반증하고 오자와 관계를 증명하는 간접적 측정 모델을 실현했다
쉽게 생각하면 좀더 정확하게 측정을 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정확한건 아니고 여전히 두 관측가능량의 측정시 둘 사이의 정확도 간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
불확정성 원리는 '타겟에 영향 없이 관측이 불가능' 을 증명한 겁니다.
우리가 [본다](=관측한다) 라는건, 빛이 대상에 맞고 반사된 반사값을 측정하는 건데, 빛이 대상에 맞고 반사되는 과정에서 대상이 빛에 두들겨 맞고 도망가 버리기 때문에 맞은 순간에 어땠는지는 확인이 가능해도 맞고 도망간 현재값이 어떤지는 재측정 하기 전에는 모른다는 겁니다.(재측정 과정에서 또 맞고 또 도망가니까 여전히 그 다음은 오리무중...)
이때 측정의 정확도는 빛의 세기에 비례하는데(혹은 찔러넣은 탐침의 강도 라고 해도 마찬가지) 고에너지 빛->심하게 맞고 빨리 도망감 이라서 측정의 정확도와 현재 상태의 정확도는 같이 상승시키는게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둘중 하나는 불확실 이래서 불확정성 원리 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물리적 한계로 측정이 불가능한 것과는 다릅니다. 양자는 어떠한 물리적인 값을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가질수 있는 여러 값을 확률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를 측정하여 확정시키면 이 양자는 새로운 상태를 가지게 되어 다른 종류(속력과 위치 같은 다른)의 값(확률적으로 가지고 있는)을 변화시켜 측정하기 전의 값과 다른 값이 측정될 지도 모르게 만드는거죠. 이에 대해 여러 해석이 존재합니다만 모두 관측 방법 이전에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자를 슬릿 두개사이에 통과 시킬때
뒤에 스크린에 파동처럼 여러 간섭 무늬가 생겻구요
그런데 관찰자를 놓고 전자를 슬릿 사이에 통과 시킬때
입자처럼 스크린 막에 두개의 줄만 생긴다고 하더라구요
결론적으로 인간의 의식이 입자나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더라구요
그런 주장을 통해 의식이 있다고 주장한 -아마 최초의 -사람 중이 유명한 사람이 위그너란 물리학자이죠. 고체물리하고 핵물리, 그리고 양자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으로 유명하죠. 그러나 그런 해석은 아주 편향된 해석이에요. 그 실험은 절대 의식을 증명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냥 물리적 실험결과일 뿐이죠. 가령 이중실릿 실험에 사람의 눈이 아니라 이들을 관찰할 수 있는 카메라같은 인공눈을 갖다놓고 실험해도 결과는 같게 나옵니다.
또 파동함수의 중첩과 붕괴현상을 자유의지의 증명이라고 주장하는 신과학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 역시 전혀 근거없습니다. 뇌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양자역학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시스템입니다. 설령 양자론이 뇌의 의사결정에 관여한다고 밝혀져도 그것 자체로 자유의지를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파동함수에서 도출되는 확률 자체는 결정론적인데 - 다시말하면 슬릿을 통과한 전자의 분포 자체는 파동함수로 주어지는데, 의식이이것이 관여한다는 것은 이 슬릿을 통과한 전자의 분포가 슈뢰딩거방정식의 결과랑 다르게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즉 결국 기존과학과 모순되는 설명이죠.
그 이유는 제가 아는 한에는 불확정성원리로 설명가능합니다.
즉 관찰을 하는 행위(관찰을 하려면 관찰자와 전자간에 빛을 통한 상호작용이 있어야겠죠)가 입자의 운동량에 영향을 줘서 파동성을 깨트립니다. 정확한 수식은 양자론의 표준학부 교재인 가시오로비츠 앞부분에 있습니다.
이 불확정성원리는 어디서 유도될까요? 운동량을 가진 전자에 파동성을 요구하게 되면 수학적으로 불학정성원리는 유도됩니다. 즉 물질입자의 이중성이 불확정성원리의 원인입니다.
불확정성의 원리와 옵져버가 입자의 상태를 바꾸는 것이랑은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옵져버가 있든 없든, 불확정성의 원리는 그 자체로 양자역학의 큰 틀을 이루는 원리입니다.
옵져버에 의거한 빛을 통한 상호작용으로 입자의 아이켄 스테이트들이 변한다는 이론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합니다. 옵져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주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자연들이 양자역학의 법칙을 따라왔다는 것만으로도 이 이론은 뭔가 모순을 가지게 됩니다.
과학의 생명은 객관성입니다.
객관성에 기초해서 반복적으로 결과가 나와야 하는 거죠.
양자역학은 확률에 기초해서 자연을 설명하고 있는데, 확률적으로도 같은 상태에서 같은 옵져버를 들이 대었다면 같은 결과 (예, A와 B 상태가 40:60으로 관찰됨)가 나와야 합니다.
단, 처음에 A가 관찰되었다면, 계속 같은 옵져버를 들이대면, A만 나와야 하고, B도 마찬가지죠. Eigenfunction이 아닌 다른 옵져버를 들이대면 또 결과가 달라집니다. 윗 문단에서 같은 상태라고 말한 것은 ensemble을 말한 겁니다.
인간의 의식에 따라 실험결과가 달라진다면, 뭐...후기 인상파도 아니고, 과학이라고 부르기 힘들다고 봅니다.
로저 펜로스라는 물리학자가 10여년 전 "뇌 신경세포의 정보 처리는 양자역학적 상태에 의한 것"이라는 좀 특이한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지만, 아직 확증되지 않은 가설 수준입니다.
1. 많은 교양서적에서 양자역학과 의식을 연결시키려 하는데 측정이란 행위는 의식이란 고차원적인 요소를 필요치 않습니다. 이중슬릿 실험에서 인간을 배제하고 기계장치가 측정을 해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2. 측정이 계에 섭동을 줘 불확정성이 생긴다는게 일반적인 설명이었으나 최근 실험결과는 이 섭동보단 정보자체가 양자상태를 변화시킨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3. 현재 양자역학 해석에서 특히 측정과 관련해 자연스런 해석은 없으며
여전히 Open problem입니다. 단지 계산상으로 아무 문제가 안생기므로 코펜하겐 해석을 기초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관심있는 분은 Zurek의 Quantum darwinism에 관한 논문을 읽어보세요.
관찰에 의해 파동함수의 붕괴가 일어나는 것은 양자역학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코팬하겐의 해석이고 뭐고간에 양자론의 뼈대중의 뼈대 개념이고요.
Eigenstate와 Eigenfunction 어떤 계의 파동함수가 Eigenstate들의 중첩으로 되어 있을 때, 그 Eigenstate에 해당하는 Eigen function 이 아닌 옵져버로 관찰할 때 항상 그 계는 다른 상태 (다른 Eigenstate들의 중첩 상태가 되는 거죠.
모 교수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옵저버와 현상의 관계에서
불확정성이 생기는 이유는 그냥 자연이 그러하다 라고 알아두라는데요
이건 원인도 이유도 없답니다 그냥 자연이 그렇답니다.
x 와 p 사이에 uncertainty 가 있는것처럼
w 와 k 사이에 uncertainty 가 있는데
이는 fourier transform 의 관계이며
dirac-delta function 을 F/T 하면 flat 한 white 곡선을 얻을 수 있다는점을 볼때, 그리고 폭이 좁은 rectangular function 이 폭이 넓은 rectangular function 으로 되는것에서도 불확정성의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자연의 모든것과 연관되어 있는듯 하네요.
수학의 소수(prime number) 에서도 이런 비스무리한 현상이 나타난다더군요.
과학은 관념이 아니다.
양자론의 코펜하겐 해석, 비결정론과 주관론 문제
소위 신과학을 지지한다는 중요한 배경적 과학이 양자론이다. 신과학 주장자 는 양자론을 말하며 과학적 결정론의 사망과 정신의 개입을 주장한다. 또한 이 세계가 아양자적 수준에서 그물처럼 연결되었다고 말한다. 양자론은 시공을 초 월한 ESP, PK의 합리화에도 이용된다. 따라서 소위 신과학의 양자적 주장이 어 디에 속한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과학을 지키고, 마술적 세계를 배척하는 스 켑틱에게 중요하다. 이곳에서는 코펜하겐 해석의 문제를 기술하고 EPR 실험은 별도로 게시한다.
1. 양자론과 불확정성 원리
흑체복사와 관련하여 1900년 독일 물리학자 플랑크(Max Planck, 1858-1947)에 의해 양자론이 나온 배경은 예를 들어 필자의 '신과학 바로알기' 등에 자세히 나 오므로 이곳에서는 생략한다. 양자론(quantum theory)이란 입자, 파동 이중성을 가진 광이나 전자 등이 파장으로 규정짓는, 불연속적인 에너지 뭉치, 즉 '양자 (quantum)'로 행동한다는 이론이다.
플랑크에 이어 1905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광전효과를 광이 불연속적인 에너지 뭉치, 즉 '광자(photon)'로 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해석 해 내어 플랑크의 양자에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그뒤 양자론은 덴마크의 보어 (Niels Bohr, 1885-1962)에 의해 수소원자의 구조 해석에 적용되어 1913년 양자 모형이 나왔다. 다시 말해서 보어는 입자인 전자가 궤도의 전이시에 광자를 방 출 또는 흡수한다는 가정 하에 수소원자의 물리적 성질을 해석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모형적 해석은 지금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것이나 가설적 모형이 아 니라 양자론에 기초한 순수한 수학적 처리에 의해 원자 스펙트럼의 선 등 원자 적 성질을 해석해 낼 수는 없을까? 이로부터 나온 것이 1925년 하이젠베르크 (Werner Karl Heisenberg, 1901-76)의 행렬역학, 1926년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의 파동역학 등 양자역학이며 이 둘은 수학적으로 동등 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은 1927년 위치나 운동량(또는 속도)과 같은 어떤 두개의 변수를 측정할 때 정확성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를 낸 것이다. 위치의 불확성성(delta x)과 운동량의 불확정성(delta p)의 곱은 프랑크 상수(h)를 4pi로 나눈 값보다 크거나 같다. 따라서 원자구성입자의 위치을 정확히 측정하면 할수록 운동량의 불확정 성은 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불확정성을 포 함한 양자론의 실체를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안개함을 통한 전자의 운동에 흥미를 가져 어떤 종류의 관 찰에 의해 전자의 최초 위치와 속도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 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것은 불확정성의 관계에 따른 부정확성을 내포하며 또한 실험의 어려움에 기인한 이보다 더 큰 오차를 포함할 것이다. 이 중에 첫 번째 불정확성 때문에 우리는 관찰결과를 양자론의 수학적 도식으로 해 석해야 한다. 가능한 측정 오차까지를 포함하여 측정시의 실험조건을 나타내는 확률함수를 적어야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 실험의 이론적 해석을 최초 실험조건의 확률함수 해석, 시간에 따른 이 함수의 추적, 그리고 확률함수로부터 계산된 새로운 측정결과 기술의 3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는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파동뭉치) 의 움직임을 가상적인 감마선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예를 고안하여 이 3가지 단 계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관찰자는 현미경에서 나온 감마선이 전자에 의해 굴절되어 나와 구성하는 상 으로부터 전자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이때 일정한 위치의 전자를 관찰하는 경우 에 위치는 정확히 안다고 하여도 이 관찰에 의해 전자는 감마선의 광양자에 의 해 밀쳐졌으므로 운동량 또는 속도가 변하게 된다. 이 변화는 불확실하며 변화 의 불확정성은 바로 불확정성 관계를 따른다. 따라서 관찰결과는 확률함수로 나 타낼 수밖에 없으며 불확정성 관계의 만족이 필수조건이다.
그 다음 일정한 시간 후에 전자를 다시 관찰한다고 하자. 그 동안 전자가 어 떤 상태에 있었는지 시간에 대한 함수로 나타낼 수 있을까? 이것은 사실상 불 가능하다. 첫 번째 광양자가 전자에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전자의 파동뭉치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원자에서 떨어져 나간 때문이다. 이때 통상의 미의 경로와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던 것이 다시 관찰하면 원자로부터 일정한 경로 위의 전자를 다시 발견한 다. 그래서 두 관찰 사이에 전자가 어디엔가 있었다고 보아 그 경로는 모르지만 일종의 경로 또는 궤도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때 확률함수로 계산되어 이 단계에서 다시 가능성으로부터 실제성으로 바뀌어진다.
2. 양자론의 코펜하겐 해석
같은 실재에 대한 입자, 파동 두 가지 서로 다른 기술 사이의 이중성 문제는 수학공식으로 아무 모순이 없이 해결된다. 물질적 뉴턴 역학을 따르는 운동방정 식을 단순히 변형하면 물질파의 파동방정식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은 학문적으 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나, 실제 양자론의 문제는 원자적 사건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해석에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다시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작은 두 개의 구멍이 뚫린 검 은 스크린을 향해 복사되는 단색광과, 스크린 뒤 일정한 거리에 입사하는 광을 기록하는 사진건판을 설정한 실험을 상상토록 하였다. 파동그림으로 이 실험을 기술할 경우 일차파가 두 개의 구멍을 통과하여 개개 구멍에서 2차 원형파가 나 와 서로 간섭된다. 그리고 이 간섭의 결과, 사진건판 위에 다양한 강도를 가진 패턴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을 입자그림 다시 말해서 광양자 그림으로 보아 한 개의 광양자가 스크린 을 향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때 이 한 개의 광양자는 첫 번째 구멍 아니면 두 번째 구멍을 통과할 것이다. 첫 번째 구멍을 통과했다면 그 광양자는 그곳에서 산란되어 사진건판의 일정한 지점에 흡수될 확률은 두 번째 구멍이 닫혀있건 열 려있건 여부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하여 사진건판 위에 확 률분포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광양자가 두 번째 구멍을 통한다고 보면 두 번 째 구멍이 열린 경우에만 해당되는 확률분포를 얻을 수 있으며 실제의 사진건판 의 검게 나타남은 두 개 확률분포의 합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이 실험을 해보면 예측과는 다르게 간섭패턴이 나타난다. 이것은 광양자가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어느 한 개의 구멍으로 틀림없이 통과했다고 믿 기 어렵고 정상 사고와 모순된 것임을 의미한다. 이를 보면 파동함수의 개념이 두 관찰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술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한 기술을 발견하려는 어떤 시도도 모순으로 밝혀질 것이며 따라서 "일어난다"는 것이 관찰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양자역학에서 전자를 입자로 또는 파동으로 보아 원자를 기술할 수 있다 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입자와 파동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입자는 일정한 공간에 잡아둘 수 있는 국지성(locality)를 가진 반면에 커다란 공간으로 퍼져 나가는 장인 파동은 비국지성(nonlocality)이다. 입자와 파동은 서로 배타적 (exclusive)이다. 그렇다면 전자의 실재는 무엇인가?
이 때 입자, 파동 양쪽 그림을 어느 하나가 아니라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이 보어의 상보성(complementarity)이다. 서로 배타적이지만 보완적으로 실재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의미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보어의 상보성 원리를 기초로 한 코펜하겐 해석은 크게 두 가지를 말해 주고 있다.
첫째로 양자적 실재가 확실하지 않은 통계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양자적 성질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적 측정이 구체적이라고 하더라도 정밀한 측정을 위 해서는 반복해서 측정해야 한다. 개개 정밀한 측정이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따 라서 미시세계는 측정의 통계적 분포로서만 나타낼 수 있으며 이 분포는 물리학 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통계적인 실재의 본질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정론 의 부정이다. 과연 이 세계는 이와 같이 비결정론적 세계인가?
두 번째는 양자적 물체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실험적 측정을 정밀하게 구 체적으로 말하기 전에는 양자적 물체의 물리적 성질에 관해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관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하는지에 부분적으 로 달려 있는 물질적 실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 실재의 부정이다.
주관론(subjectivism)의 도입이다. 사실 이 세계는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일까?
3. 아인슈타인의 희망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1920년에 처음 만나 알고 있던 특별한 친분을 가진 사이 였으나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해 온 아인슈타인은 아직 양자론이 자연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것이라고 주장을 계속하 였다.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생애 마지막까지 서로 논쟁을 벌였다.
일면 1920년대 말까지 양자론은 온전한 형태가 되어 새로운 세대의 젊은 물리 학자들이 이를 배우고 응용하고 성장하였다. 이들은 코펜하겐 해석과 같은 것 보다는 응용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양자역학의 응용력에 대해서는 아인슈타인 도 인정하였다. 예를 들어 1926년 12월 4일 보른(Max Born, 1882-1970)에게 보 낸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은 분명히 훌륭합니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계속하여 "그러나 나의 마음 속 목소리는 그것이 아직은 실제의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그 이론은 많은 것을 말해주지만 우리가 신 의 비밀에 좀 더 가까이 가도록 하지는 못합니다. 나는 하여튼 신이 주사위 놀 음을 하고 있지 않다고 확신합니다"라고 말했다. 양자론의 코펜하겐 해석이 의 미하는 비결정론적 세계, 우연의 세계를 믿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믿음은 현재 증명 되었다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신과학 유형의 '과학과 이성으로부터의 탈출'을 염려하여 개최된 1996년 뉴욕과학아카데미 심포지엄에서 럿트거스 대학 수학과 골드스타인(Sheldon Goldstein)은 아인슈타인의 믿음이 어떻게 증명되었는지 그 전말을 소개하였다.
그는 하이젠베르크와 보어 그리고 반대되는 슈뢰딩거(아래 고양이 패러독스
참조)와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나열하기도 했는데, 아인슈타인은 1949년에도 "나 는 현재 양자론의 근본적인 통계적 성질이, 그 이론이 물리계의 불완전한 기술 을 갖고 작동하는 사실에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실상 굳게 확신한다. ..완 전한 물리적 기술에서 통계학적 양자론은 ...고전역학의 틀 내에서의 통계역학과 유사한 위치를 가지리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여 결정론적인 이론의 개발이 가 능할 것임을 말하였다.
그러나 이런 아인슈타인의 믿음은 타당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금세기의 가 장 위대한 수학자로 불리는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은 1932년 아인슈타인의 양자론에 대한 결정론적 완결 또는 재해석의 꿈이 수학적으로 불 가능한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주장하며 "흔히 그러리라고 생각하지만 통계학적이 아닌 다른 기본과정(elementary process)의 기술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현재의 양자역학 시스템이 객관적으로 그릇되어야 한다는-양자역학의 재해석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노이만의 주장은 물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파동함수의 통계적
해석을 제공한 보른도 "어떤 감추어진 파라미터(concealed parameter)도 그 도움 으로 비결정론적 기술을 결정론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도입할 수 없다. 따 라서 미래의 이론이 결정론적이어야 한다면 그것은 현재 것의 보완이 아니라 근 본적으로 달라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1952년 봄(David Bohm, 1917-92)은 1927년 드 브로이(Louis-Victor Pierre Raymond de Broglie, 1892-1987)의 전자가 '안내 파'에 의해 안내된다는 '파일럿 파동모델(pilot wave model)'을 정리하여 양자론의 공식을 새로 만들었 다. 이것이 '봄역학(Bohmian Mechanics)'이다. 봄의 이론은 정밀하고, 객관적이 고, 결정론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폰 노이만의 주장이 옳지 않음을 말해 준다.
골드스타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30년이 더 지난 1983년 위그너(E.P.
Wigner, 1902-)는 벨(J.S. Bell, 1928-90)을 인용하여 폰 노이만이 옳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벨에 관해서는 EPR 실험과 관련하여 다음에 자 세히 게시할 것이다.)
그러나 벨 자신은 1987년 "양자 역학에 대한 봄의 1952년 논문은 나에게 하나 의 계시였다. 비결정성의 제거는 대단히 뚜렷하다. 그러나 세계를 한편으로 '(양 자역학)계'와 다른 한편으로 '장치' 또는 '관찰자'로 애매하게 나눌 필요성을 제거 하는 것이 나에게는 좀 더 중요하게 보였다. 그 이래 나는 그들 논문의 아이디 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불행히도 대다수가 그렇지만-양자역학의 의미에 대한 토의에서 불리한 조건에 있다고 느껴 왔다"고 말했다. 벨은 자신이 파일럿 파동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한탄하며 다음과 같이도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 보른은 나에게 이 파일럿 파동에 관해 말한 적이 없는가? 그것 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폰 노이만은 그 것을 고려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교과서에서는 파일럿 파동 그림을 무시했는 가? 유일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압도적인 자기만족에 대한 해독제라고 그것을 가르치지 않아야만 했는가? 우리에게 애매함, 주관성, 비결정성이 실험적 사실 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임의적인 이론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보 여주기 위해서?"
골드스타인은 표준 양자론으로부터 봄 역학에 도달하는 과정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아주 간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 양자철학을 포기하고 가장 분명 한 방식으로 일반 양자적 기술을 완결하면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양자계 의 입자의 위치를 그 계의 상태기술에 포함시켜 이들 위치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나타나도록 하면 된다고 하였다. 골드스타인은 자신의 오랜 공동연구 자인 뒤르(Detlef Du"rr)가 말한 "봄 역학은 입자가 움직인다는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양자역학이란 양자를 기술하기 위한 수학에서 나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결정론적인 봄 역학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파동함수란 확률 을 계산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수학적 물건이다. 그것은 파동처럼 여러 곳에서 일정한 확률로 발견되는 것이지만 검출기에 의해 검출될 때에 파동은 붕괴된다.
예로써, A, B 두 위치의 검출기 중에서 A 위치의 검출기로 측정할 때에 파동은 붕괴되어 A위치에서만 전자는 발견된다. 이 과정을 비결정론적으로 본 전통 양 자역학에 대하여 감추어진 변수이론인 봄역학은 결정론적인 공식을 유도하였다.
봄은 나아가 B위치의 전자가 A위치의 검출을 인지하는 초발광적 아양자적 연 결을 유도하였는데, 이에 관해서는 EPR 실험과 관련지어 설명할 것이다.
4. 슈뢰딩거 고양이 패러독스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는 양자론의 코펜하 겐 해석에 깊은 회의를 품었다. 이것은 1959년 "어떤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 이 코펜하겐 해석의 수용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하고 믿을 수 없어 할 것이다"
라고 하며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이런 슈뢰딩거는 '상 자안의 고양이(cat-in-the box)'라고 부른 사고실험을 제안했는데, 거시세계에서 과연 관찰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상을 인정해야 할 것이냐는, 비평하기 위한 목 적에서였다.
그런데 '상자안의 고양이'는 의외로 미시세계의 문제를 거시세계로 확대하여 의식적 주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하는 신과학자에 의해 자신의 견해를 보강 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이용된다. 페이겔스(Heinz Pagels)가 '슈뢰딩거 고양이 (Schro"dinger's cat)'라는 글에 적은 대로 좀 더 자세히 슈뢰딩거의 '상자안 고 양이' 사고실험을 살펴보자. 그리고 다음 항목에서 페이겔스가 설명한 표준 양 자적 해석으로 인정받는 해답을 이해하자.
슈뢰딩거는 상자안에 넣고 봉한 고양이를 상상하도록 하였다. 그 상자안에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약한 방사선원 그리고 방사선 입자 검출기가 들어 있다. 이 검출기는 1분동안만 켜놓도록 되어 있는데, 이 1분동안에 방사선원이 검출될 수 있는 입자를 방출할 확률을 1/2이라고 하자. 양자론에 의하면 이 방사선 사건의 검출을 예측할 수는 없으며 단지 확률적으로 1/2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때 방사선이 검출되면 독가스가 나와 고양이는 죽게 되어 있다.
이러한 잘 봉해진 상자를 인공위성에 실어 지구궤도를 돌도록 한다. 엄격한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바로 1분이 지난 후에도 분명히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 았는지 말할 수 없다. 지구에 있는 인간은 실제 관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러한 상황을 기술하기 위해 확률파를 죽은 고양이의 상태에 그리고 다른 확률파 를 살아 있는 고양이에 할당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상자안의 고양이는 살 아 있는 고양이, 죽어 있는 고양이에 동일한 파동의 척도로 구성된 파동의 중첩 상태로 올바르게 기술된다. 상자안의 고양이에 대한 이 중첩상태는 실제가 아니 라 확률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이것은 거시적 양자(macroscopic quantum)의 기묘함을 나타낸다. 두 구멍 실 험에서 전자가 어느 구멍을 통해서 나갔는지에 대한 것과 같이 고양이가 살았는 지 죽었는지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느 구멍을 통해 나갔는지를 관찰하지 않으면 전자는 구멍 1을 통한 것과 구멍 2를 통한 것의 확률파동의 동일한 척도 의 중첩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기묘함을 인정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자가 아니라 고양이에 대해 같은 현상을 발견한다,
다음에 우주왕복선에 일단의 과학자들이 타고 궤도를 돌고 있는 상자안의 고 양이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나섰다고 하자. 그래서 이들이 상자를 열었을 때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관찰에 의해 고양이가 일정한 양자상태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주왕복선의 과학자들에게 고양이는 더 이상 죽 은 것과 살아 있는 것의 중첩파가 아니다.
그런데 만일 통신이 두절되어 지구위의 과학자들이 이를 모른다고 하자. 지구 위의 과학자들에게는 상자안의 고양이와 지금 고양이의 상태를 아는 우주왕복선 에 탄 과학자는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어 있는 고양이의 확률파동의 중첩상태로 있다. 중첩상태의 양자의 동화나라는 점차 커지게 된다.
드디어 우주왕복선에 탄 과학자들은 통신을 연결시켜 지구위의 컴퓨터에 자
료를 전송한다. 이들은 고양이가 살아 있다고 알린다. 그리고 이 정보는 자기메 모리에 저장된다. 그러나 지구상의 과학자들이 이 메모리를 읽기 전에는 컴퓨터 도 지구위의 과학자들에게는 단지 중첩된 상태의 일부에 불과하다. 드디어 컴퓨 터의 출력을 읽고 나서야 지구위의 과학자들은 중첩된 상태를 분명한 것으로 환 원시킨다. 그 다음에 옆방의 친구에게 고양이가 살아 있다고 알린다. 이와 같이 실재는 우리가 그것을 관찰할 때 존재속으로 뛰어든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중첩된 상태로 있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 의하면 우리가 관찰할 때까지는 거시세계의 실재조차도 객관성 을 갖을 수 없다. 이것은 기이할 뿐이지만, 코펜하겐 해석에 의한 실재이다. 코 펜하겐 해석에서는 관찰되는 대상과 관찰자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다. 이것은 상자안의 고양이와 우주왕복선 과학자들 사이의 경계이다. 그래서 상자를 열자 이 경계선은 우주왕복선 과학자로부터 컴퓨터로 그리고 지구의 과학자로 옮겨간 다. 이와 같이 고양이 정보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감에 따라 살아 있 는 고양이의 객관적 실재도 옮겨간다. 코펜하겐 해석은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 지 말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선이 그려져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5. 코펜하겐 해석 관찰의 문제
'상자안의 고양이' 실험으로 코펜하겐 해석을 설명한 다음에 페이겔스는 이 실 험의 해석에는 분명히 무엇인가 해결되지 않은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원자적 미시세계에서는 표준적 객관성의 결여가 분명하지만 이런 이상함을 일상 세계의 책상, 의자, 고양이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코펜하겐 해석대로 이것들도 관찰하 는 때에만 일정한 상태로 될 것인가?
이런 의문은 페이겔스만 가진 것이 아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말한다. 저 아름 다운 밤하늘의 달을 쳐다보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나 는 저 달은 나의 시야에 관계없이 그곳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또 다른 사람은 말한다. 관찰하기 전에 실재가 없다고 한다면 눈을 가리고 고층빌딩에서 떨어져 보아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페이겔스의 다음과 같은 말과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이 관찰인지 자세히 조사해 보면 이 실재에 관한 극단적 견해는 유지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실제로 코펜하겐 해석이란 원자의 세계에서는 필요한 반면 일상 물체의 세계에는 적용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것을 거시세계에 적용하는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그렇게 할뿐이다."
페이겔스는 객관적 관찰이 가능한 과학적 해석을 내었다. 우리가 관찰할 때 눈은 물체로부터 에너지를 받는다. 그러나 관찰의 중요한 특징은 관찰 전에 알 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통계역학에 의하면 엔트로피의 증 가, 즉 물리계의 무질서도가 증가하지 않으면 정보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 엔 트로피의 증가는 시간이 화살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관찰은 시간적 비가역성과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가 가능한 물리적 과정이 합쳐 진 것이다.
특히 시간의 비가역성은 관찰의 주요한 특징이다. 관찰의 의식도 기억에 관여 하기 때문에 물론 비가역성을 나타내지만 관찰의 주요한 특징이 시간의 비가역 성이라는 말이다. 관찰은 어떤 원시적인 기억 저장을 갖고 있다면 컴퓨터가 행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의 분석은 일단 양자세계의 정보가 비가역적으로 거시 세계에 있다면 안전하게 그것에 객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다. 안개함에 궤적을 만드는 전자는 컴퓨터가 기록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인간이 눈으로 보지 않고도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죽기전에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은 정말로 인상적이다.
하지만 나의 내면의 목소리는
내게 이것이 아직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론은 많은 것을 설명해 주지만,
옛 존재(Old One)의 비밀을 밝혀주지는 않는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신이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
양자역학의 실재성에 부정하면서 던진말이라고한다.
신에대해 뭔가 아는게 있는데 죽기전에 말안한듯 일부러 생각하고 연구하게끔 시너지를 얻거나, 인간의 창의력 발전을 더 발전시키고 싶었는지도..
양자역학 자체가 과학적 증명이라고 말하는데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체(에너지)에 대하여 인간이 아직은 증명할 수 없다.
사실적 차원에서 영적차원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사랑을 증명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않는 것이라고 말할수 없으니.
미움은 안보이나 몸을 병들게 한다.
병들게 하는 것까지
현대의학,심리학은 증명하는데.
미움이란 것을 내어서 "이거다"
보일 수가 없으니 못믿겠다는 것이지.
나는 양자역학의 확률적 기술을 부정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아인슈타인의
이런 비판적 스탠스 때문에 확률적 기술이 더 힘을얻고 논리적으로 발전했음
난 양자역학 못믿겠다.
양자역학이 결론은 다 맞아떨어지는데, 그걸 증명을 할 방법이 없음 증명 못하는게 과학임?
아인슈타인만 모든것을 알고있다
우주의 모든것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연구했었음 연구결과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어떤 한 인간의 뇌에서 나오는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수억명의 뇌에서 나오는 데이터 시너지효과를 기대한거임 수억명의 뇌에서 나오는 시너지효과는
아인슈타인 자기자신도 본인보다 더 뛰어난 연구결과가 나올수 있다는걸 알고있었거든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은 사실, 수학의 결과값에서 우주 만물에 대한 정보를 얻은게 아니라 수학의 증명과 과정을 통해서 정보를 얻은거다.
그 중간단계 즉 "일련의 과정들"에 만물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거지 확률론적 세계라고 자유의지가 생기는것도 아니거든 사실 자유의지정도는, 우리가 하나의 독립적인 자아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뉴런들에 의해 나타난다는 사실선에서 정리되는게 맞음 물론, 결정론에서 자유의지 부정을 이끌어낼수도 있지만. 그건 또, 자유의지의 정의에 따라 달라지니깐.
또 그 뉴런들이 독립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물질들로 구성되어있다.
근데 솔직히 이건, 너무 환원적이고 원리적인 뜬구름잡기정도로 들리지.
애초에 기계론 같은 결정론을 말한거라면, 적어도 그건 현재 인간이 연구한 수준까지의 우리 우주 안에서는 틀림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그래서 보통 확률론적 결정론이라고 하지. 결정론은 아니지만, 거시계에선 사건들이 결정'적' 이라고 규정한다.
난 양자역학의 확률적 기술을 부정한다.
역시 아무리 어그로들이 정신병자 흉내내 봐야, 진짜는 못따라온다
개 병신 북한새끼 ㅋㅋ 서울대 인증해봐 병신아 너같은 돌대가리가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