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링크 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또는 받아들일 수 있다면 질량과 (시)공간이 왜 중력이란 현상과 관련이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럼 중력과 관련된 의문은 모두 해소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중력이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은 근본적으로 에너지(질량=에너지=공간)가
왜 존재하는지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이제는 에너지가 왜 존재하고 있는가란 질문이 다음의 철학적 질문이 된어야 한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중력이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에너지보존법칙에 의하면
고립계에서는 에너지가 새로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습니다. 결국 집합의 개념으로 볼 때 우주가 전체집합이라면 우주를 고립계로 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의 총량의 변화가 아니라 엔트로피의 변화(증가)만이 가능하게 되죠.
따라서 현재 물리학계에서 설명하는 우주는 절대의 무의 상태로 환원될 수 없고 상대론적으로는 특이점으로의 환원까지만 가능하게 됩니다
(물론 저는 특이점을 상대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와 관련된 이론이 바로 빅뱅이론 또는 빅뱅이론을 수정한 인플레이션이론이죠.
인플레이션이론은 간단하게 말해서 특이점에서의 대폭발(빅뱅)과 시공간의 급팽창으로 현재의 우주의 모습이 되었다는 이론입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이론은 에너지가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 에너지 보존법칙이 지켜질 경우 상대론으로 환원가능한
특이점까지로 현재의 우주를 환원시켜서 그 특이점으로부터 현재의 우주의 모습이 되었다라는 이론입니다. 마치 지금은 보기 힘든 비디오테입을
최대한으로 되감기를 하고 다시 재생시키듯이 현재의 우주의 모습을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우주 공간의 부피는 상대론적으로 특이점으로까지 환원가능하니 그런 특이점으로 부터 엔트로피가 변화해서 현재의 우주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물리학자들은 엔트로피의 변화를 시간의 변화로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결국 그 이론대로라면 현재의 우주의
에너지는 특이점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에서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았고 엔트로피만이 변화한 것이죠. 그런데 만약 현재 우주의 크기가 무한한
크기라면 인플레이션이론에서 말하는 특이점으로의 환원이 불가능해집니다. 무한한 부피가 0으로 수축될 수 없다는 것이죠.
또 현재의 우주의 에너지가 무한대가 아니라고 설명될 수 있는 이유도 특이점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유한한 공간에 무한대의 에너지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무한한 에너지는 무한한 공간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죠. 현재 우주론의 대세는 인플레이션우주론이므로
결국 물리학계에서 설명하는 현재의 우주는 유한한 크기의 유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입니다. 그런데 만약 에너지 보존법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 인플레이션이론도 틀리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우주의 에너지가 갑자기 모두 사라진다고 할 경우 특이점으로
환원 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그럼 이제 해야할 질문은 '에너지 보존법칙은 정말 지켜지는 지는가?' 입니다.
그런데 현재 물리학계의 가장 큰 이슈중 하나인 암흑에너지의 경우 에너지보존법칙과의 관계가 애매합니다.
물론 암흑에너지에 대해서 물리학자들은 아직 설명을 잘 해내지 못하고, 연세대 천문학자인 이영욱교수는 암흑에너지가 없다는 주장을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암흑에너지에 대한 설명은 넘어가기로 하고 에너지 보존법칙에 대해서 설명을 계속 하겠습니다.
만약 에너지보존법칙이 붕괴된다면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성질인 대칭성도 성립할 수 없게 되며 지금껏 물리학자들이 쌓아온 모든
물리학적 설명은 무의미해집니다. 에너지가 새로 생겨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그만큼 매우 중요한 문제란 것이죠. 또 만약 에너지가 새로
생겨날 수 있다면 절대의 무의 상태를 가정할 수 있게 되어 우주는 시작이 있게 되고, 현재의 에너지가 새로 생겨날 수 없고 소멸될 수 없다면
절대의 무의 상태로 환원이 불가능하니 우주의 시작을 가정할 수 없게 됩니다.즉, 에너지가 새로 생길 수 있는가 없는가로 우주의 시작이 있다
없다가 결정된다는 것이죠. 그럼 이제 절대의 무의 상태가 과연 성립가능한 상태나 개념인지를 알아보면 되겠죠?
그런데 먼저 생각해볼만한 것이 만약 절대의 무의 상태가 가능하고 그 상태에서 에너지가 새로 생겨날 수 있다면 그 과정을 과연 설명 가능할까요?
저는 설명할 수 없다고 봅니다. 아무런 단서도 없기 때문이죠. 종교에서 등장하는 우주를 창조했다는 신이란 개념이 초월적인 개념인 이유도
그러하고 말이죠. 그리고 에너지가 새로 생겨나거나 소멸될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으로도 왜 에너지가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해결 되지
않습니다. 그 경우도 에너지가 초월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란 것이죠.
그럼 에너지가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것이란 설명은 어떨까요? 그것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한 (연역적 또는 공리적) 논리학의 관점으로 볼 때
(형용)모순이라 말도 안되는 설명이죠. 만약 답을 결국 알 수 없다고 할 경우 저 셋중에 취향에 따라 고를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호기심이란 측면에서
보면 아마 다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저 세가지가 모두 성립할 수 있는 결론을 본문에서 설명할 겁니다.
일단 제 논증은 세번째의 설명과 가장 관련이 있습니다. 그나마 관련해서 생각할 단서가 많고 제가 변화가 불연속이라고 의심하게 되었던 이유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후로 진행되는 설명은 결국 믿음의 영역이긴 합니다. 이론이 만들어지려면 그 이론의 전제가 될 수 있는
참이면서 불변인 공리같은 것이 반드시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위의 세가지 경우 모두 제대로 된 전제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일단 형이상학적인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서로 상대적인 관계로만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라 한쪽 개념의 독립적(절대적) 성립은 불가능합니다.
언어적으로도 선이란 개념이 없이 독립적으로 악이란 개념만 존재하지 않고, 악이란 개념없이 선이란 개념만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죠.
즉, 동시에 생긴 개념이며 동시에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개념이란 것이죠. 관련해서 선과 악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제가 어떤 사람을
선하면서 동시에 악하다고 하는 형용모순적인 설명이 관용적으로 허용됩니다. 그럼 명제적인 개념이면서 동시에 형이하학적인 개념인 유와 무의
관계는 어떨까요? 형이하학적인 형용모순의 경우 기존의 논리학에서는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 어떤 한 인간이 있으면서 동시에 없다는 설명은
관용적으로도 성립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선과 악의 동시성이 관용적으로 허용되는 것처럼, 만약 유와 무의 관계에도 한쪽의 절대적 성립이 불가능하여 유와 무의 동시성만이
현상적으로 가능한 경우, 현상적으로 무언가가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상태도 가능해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설명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이 우주가 만약 절대의 무의 상태나 절대의 유의 상태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할 경우 항상 유와 무의 동시성만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관련해서 저는 질량의 상대성이란 결론을 얻기전까지 매우 오랜 기간을 고민을 했지만 유와 무의 동시성이란 개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반물질이란 개념을 알게 되고 나서 생각의 진척이 있게 되었죠. 일단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과 반물질 또는 양의 에너지와 음의 에너지는
그 양이 서로 완벽히 같다고 설명됩니다. 이는 인플레이션이론으로 볼 때 빅뱅의 특이점에 몰려 있던 물질과 반물질의 양이 완전히 같았다고
생각해도 되고 말이죠. 그런데 이러한 반물질의 존재는 저에게 유와 무의 동시성이 가능하다라는 의미로 생각되었습니다.
물질을 있음으로 보고 반물질을 없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자의 경우도 물질과 반물질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물론 물리학계에서는 원자를 구성하는 원자핵과 전자가 물질-반물질 관계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만약 원자핵이 물질이고 전자가
반물질이라면 서로 쌍소멸되어 빛이나 열과 같은 에너지로 모두 전환되어 모든 질량체들이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경우 원자라는 형태는 순간적으로만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뿐 지속적으로 원자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즉, 원자가 자멸적 쌍소멸로 에너지화되고 다시 원자가 될 수 없다면 존재 유지의 연속성이 사라진다는 것이죠. 따라서 닐스 보어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원자핵과 전자는 서로 쌍소멸 되지 않는다고 가정한 겁니다. 하지만 저는 원자핵이 물질이면 반원자핵은 반물질이고, 전자가 반물질이면
반전자는 물질이며, 쌍소멸 뒤 다시 재구성이 될 수 있다면 변화가 불연속일 수도 있다고 본겁니다. 제 생각이 옳을 경우 파인만의 말처럼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질량체도 결국 불연속변화를 가지게 된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인간의 감각이 그 과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 것이죠.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인간은 오직 순간만 존재하니 존재하는 순간의 감각만을 느끼게 될 뿐이니까요.
물론 그런 의심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반물질을 알게 된 그 당시에는 그냥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정도였지만 이후 위 링크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변화가 불연속일지도 모른 다는 의심을 하게 된 후 거리에 따라 중력이 왜 달라지는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질량의 상대성과 질량=에너지=(시)공간의
등가원리를 생각하게 되어 중력을 잘 설명할 할 수 있었습니다. 관련해서 보어의 경우 파동-입자 이중성을 설명하면서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일 수는 없다고 했는데, 그 설명의 정확한 의미는 예를 들어 제가 빛을 관측하면 빛은 입자성을 띄며 누구를 기준으로 해도 그 빛은 입자성을
띄고 있다는 의미로 설명한 것이라면, 질량의 상대성이 성립한다는 제 설명의 경우 제가 빛의 입자성을 관측했더라도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는
그 빛이 입자성을 띄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중슬릿실험도 질량의 상대성으로 입자-파동 이중성을 더 자연스럽게 설명됩니다.
더 이상의 이중슬릿실험도 필요 없게 되고 말이죠. 또 공간을 이제는 에너지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암흑에너지란 것을 제외하면 물리학계의
설명은 공간을 에너지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정의한 진공의 개념과 달리 물리학계에서 정의한 진공의 경우 에너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양자역학적 현상인 양자요동은 진공에서도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결국 물리학계의 설명은
양자요동이 일시적으로 에너지 보존법칙이 위배되는 에너지의 증가현상이라고 설명되기 때문에 역시 진공이 에너지를 가진 것이라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제 설명의 경우 양자요동은 공간이 질량화되는 현상이 되죠. 차이점은 결국 제 설명이 에너지보존법칙을 지키는 쪽의
설명이라는 겁니다(제가 설명한 시간대란 개념으로 에너지보존을 지킨다는 겁니다). 즉, 암흑에너지를 제외했을 때 물리학계가 정의한 진공의
개념의 경우 에너지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런 물리학계의 진공의 개념과 질량의 상대성을 종합해서 볼 때 결국 기준에 따라
어떤 에너지의 상태는 질량(유)이기도 하고 공간(무)이기도 하죠. 결국 에너지는 현재 물리학계가 정의한 대로라면 유와 무의 개념이 공존하는
개념을 가진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처럼 저는 절대의 무나 절대의 유란 상태를 성립불가한 현상이라 가정해서 유와 무의 동시성을 생각해보다가
질량의 상대성과 질량=에너지=공간의 등가원리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에너지는 자체적으로 유와 무의 동시성이라 볼 수있는 질량의
상대성이란 현상을 만들게 됩니다. 그럼 우주는 존재하는 걸까요?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관련해서 우주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듯이
시뮬레이션우주론이나 홀로그램우주론처럼 우주를 비실재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인간이 질량을 실체적이고 공간을 비실체적이다라고
정의해서 구분하려고 한다면 에너지는 실체면서 동시에 비실체가 된다는 것이죠.
그럼 이제 결론을 내기 위해서 형이하학적 개념인 유와 무의 동시성과 형이상학적 개념인 양과 음의 동시성을 종합해서 에너지를 이해해봅시다.
결국 물질을 (+)로 정의 하고 반물질을 (-)로 정의 할 때 그 양이 각각 1로 동등하다면 (+1-1=0 또는 -1+1=0) 처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관계는 (+1-1=0 또는 -1+1=0) 뿐만 아니라 아래와 같이 무한히 표현할 수 있게 되죠.
...(-3+3)...(-2+2)...(-1+1)...=0=...(1-1)...(2-2)...(3-3)...(빈틈없이 완비되어있다고 가정합니다)
결국 위처럼 간단하게 형이상학적이면서 동시에 형이하학적인 관계를 종합해서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수학적으로 0은 없다는 의미이지만 제 설명을 물리학적으로 생각했을 경우 0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에너지(있음)입니다.
그런데 저런 형이상학적이면서 동시에 형이하학적인 관계란 형용모순의 상태가 됩니다. 형용모순을 쉽게 불가지론적이다란 의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착하면서 동시에 악하다는 것과 있으면서 동시에 없다는 것의 의미를 인간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즉, 수학적으로 0의 정의는 없음이며, 물리학적으로는 에너지(있음)이며, 철학적으로는 유와 무의 동시성의 불가지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죠. 저는 결국 철학적 의미가 가장 옳다고 봅니다. 0은 자체로 불가지적이다라는 것이죠. 이제는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필연적이 되는 우주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하고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시간은 불변이 되며 질량이 상대적이게 될 뿐만 아니라, 공간은 확률적인
(4차원적) 에너지의 상태가 됩니다. 즉, 우주의 구조가 불연속 변화와 시간의 불변성, 공간의 확률성, 철학적으로는 형용모순의 동시성이 자연스럽게
성립하는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죠. 또 수학적으로 하위차원의 꼬임(모순)은 상위차원에서 모순이 아니게 됩니다. 즉, 우주가 형용모순적이라면
그 모순도 차원을 높임으로써 해결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저는 우주의 구조가 서로 다른 4차원(고립계인 시간대)의 연속체인 5차원의
구조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우주의 구조는 에너지 보존법칙을 완벽하게 지키게 되며 결국 각각의 고립계에서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엔트로피뿐이란 것을 의미합니다. 설명이 너무 길어져버려서 관련된 설명은 링크 글로 대체하겠습니다.
(링크글: 갈루아의 군론을 통해 우주의 구조 이해해보기, 에너지의 차원과 엔트로피)
결론을 정리하면 우주는 결국 0의 연속체이면서 0의 엔트로피의 변화를 갖는데, 그 0을 없음으로 보면 절대적 무의 연속체이며,
그 0을 있음으로보면 절대적 유의 연속체, 0을 유와 무의 동시성으로 볼 경우 우주는 불가지적 연속체 또는 차원적으로 초월적인 5차원이라는
겁니다. 저는 철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주를 종교적인 신의 개념이 아닌 철학적인 신의 개념으로 여깁니다. 이신론과 범신론을 합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사실 0의 연속체인 우주를 어떻게 생각하던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틀리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철학적으로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 생각의 자유를 갖게 된 것이죠. 철학적 결론은 항상 절대적이면서 동시에 상대적이기 때문이죠.
시간의 절대성에 관한 쉬운 설명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고 시간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대란 시간이 절대적이게 되는
우주의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물론 제 설명에서의 시간의 절대성은 뉴턴의 시간의 절대성과는 다릅니다.
뉴턴의 경우 누군가의 시간이 1초가 흘렀다면 우주의 모든 것들의 시간도 1초가 흐른 것이 되지만 제 설명은 아에 시간이
불변이란 것이죠. 즉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고 고정 되어 있다는 것이죠. 관련해서 다른 글에서 설명했던 것을 잠시 그대로 옴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미 읽으셨던 분들은 스킵하시면 됩니다.
(현상적으로 분명하게도 제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 시계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변화합니다. 저는 시간이 불변이라고 했지만 시계의 시간은 분명
흘렀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잠시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사실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보다는 시계에 표시된
시간이 달라졌다고 하는게 정확하겠죠? 즉, 저는 시간이 불변이라고 한 것이지 시계의 시간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란 겁니다.
보통 시계의 시간이 변화하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선후관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①밥을 먹고) 나서 (②양치질을 하는) 과정들이 있었다고 해보죠. 그럼 선후관계가 분명한 경우에는 ②의 행위는 ①의 행위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설명한 시간대의 경우 ①이 벌어지고 있는 동시에 ②의 행위도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①에서부터 ②까지의 모든 과정들의 사건(사태:사건의 형태)들도 동시라는 겁니다. 즉, 모든 시간대의 사태들은 선후관계가 없고 동시란
겁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불변이라는 것이죠.)
결국 시간이 불변(절대적)이기 위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현상이 가능한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위의 설명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로는 바로 영화가 들어가 있는 한장의 CD가 있겠습니다.
프레임 단위로 분할된 디지털 영상을 우리는 눈은 연속이라 느끼고 시청합니다. 그런데 1초에 60프레임으로 출력되는 모니터의 영상을
1초에 120프레임의 영화카메라로 찍으면 1초에 60프레임짜리의 영상의 불연속 변화를 시각적으로도 알수있게 됩니다.
그리고 1초에 60프레임짜리 카메라 두개로 두개의 영화를 찍은 후 두 영화를 합쳐서 1초에 120프레임 영화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프레임이 더 분할되면 분할될수록 영화 2편 이상을 하나의 CD에 집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도 처음에 독립되어 찍은
각각의 영화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아요. 이러한 설명은 사실 우리가 5차원적 존재가 되서 4차원적 우주의 변화들을 바라본 것과
유사한 행위입니다. 결국 다중우주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않고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죠.
물론 당신이 본 그 4차원 우주(영화들의 교차적 집합)는 매우 복잡해보일지도 몰라요. 그런 짬뽕이 된 영화는 보고 싶지도 않을거고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겠죠. 하지만 각각의 영화들은 따로따로 찍고나서 합쳐진 것이라 원본은 하나의 스토리대로 이어지죠.
자 이젠 영화를 cd 한장으로 구운다고 해보죠. 그럼 그 cd는 구워지기 전에 이미 정보를 저장할 저장공간을 가지고 있어요.
즉, 그 구워지기 전의 cd의 저장공간이란 비결정론적인 공간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또 그 CD의 저장 공간의 시간은 모두 같아요.
영화를 굽고 CD를 재생하게 되면 영화의 시간대 별로 영화가 순차적으로 재생되지만 말이죠.
지금까지의 제 설명이 제가 갈루아의 군론으로 설명했던 시간대란 개념입니다. 각각의 시간대가 보유한 에너지가 만들수있는
확률을 모두 만들수있다는 거죠. 만약 한 시간대가 (10-10)의 에너지가 있다면 (5+5-5-5), (2+2+2+2+2-2-2-2-2-2), (3+1+1-1-1-3)...
사실상 각각의 시간대는 모두 무한개의 확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CD가 구워지기 전의 상태처럼 말이죠.
결국 시간은 절대적이게 되고 말이죠. 양자역학은 이처럼 디지털의 예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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