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기준이란 것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요? 예를 들어 식품류에는 보통 유통기한이 적혀져 있는데 그 유통기한을 정하는 기준은 뭘까요?
어떤 경우에는 상했다고 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상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어야겠죠? 단순하게 보자면 먹고 식중독에 걸리지 않아야 할테고요.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상하게 되는데 만약 하루가 지날때마다 두명의 사람에게 그 음식을 먹게 한다고 했을때 한 사람은 식중독에 걸리게 되고
한 사람은 식중독에 걸리지 않았다면 유통기한은 누구에게 맞춰져야 할까요? 당연히 걸린사람에게 맞춰져야 합니다. 즉, 둘 다 식중독에 걸리지
않는 시간이 있을 경우 그 시간을 유통기한으로 정해야겠죠. 물론 그 기준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만약 어떤 기준이 변하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편리해집니다. 열과 오를 맞춰야 하는데 기준이 자꾸 움직이게 되면 열과 오를 맞추기 위해 기준에 변화 따라 사람들이 계속 움직여야
하니까 말이죠. 또 법도 자꾸 바뀌게 되면 혼란스럽죠. 그러니 불변인 것과 가변인 것이 있을 경우 불변인 것이 기준이 되는게 합리적이죠.
그런데 기준이 변화해도 결국 변화한게 없는 경우도 있을까요?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직선이 만약 0을 기준으로 좌우로 무한하다면 0을 어느쪽으로
옮겨도 좌우 대칭이 유지되지만, 무한한 수직선이 아닐때 0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성을 유지되고 있다면 그 0의 위치를 바꾸게 되면 좌우 대칭이
깨지게 되죠. (물론 수직선이 양쪽으로 무한할 경우 좌우 대칭은 어떤 수를 기준으로 해도 유지가 됩니다.) 즉, 기준 자체가 불변이거나 기준 자체가
변해도 대칭이 유지되는 경우가 가장 기준에 적합하겠죠. 그렇다면 시간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빛을 기준으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
인간은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그런 인간의 감각과 인식은 매우 인간중심적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인간중심적으로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자연철학인 수학과 물리학의 경우 인간의 감각과 인식을 최대한 배제해야 하는게 어쩌면 당연한겁니다. 감정은 물론이고
말이죠. 그런데 시간은 정말 흐르는 걸까요? 상대론의 시공간이동이란 개념을 볼 때 질량체는 시간 또는 공간을 이동하게 되지만 빛의 경우
시간을 이동하지 못하고 공간만을 이동합니다. 그런데 제가 시간을 이동해서 저를 기준으로는 새로운 시간에 존재하게 되었을 때 저는 시간이
변해서 그 시간으로 이동한 것이 되지만, 빛은 시간을 이동하지도 않았는데 그 시간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다시 말해서 빛은 시간을 이동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이동한 시간에 이전에 관측했던 빛이 도대체 왜 존재하냐는 것이죠. 답은 간단합니다.
그 빛은 그 시간에 원래 (확률적으로) 존재해 있던 것이라는 겁니다. 제가 설명한 시간대란 개념은 그런 시간의 불변성을 가장 잘 설명해주죠.
즉, 빛이 시간 이동을 하지 않는게 아니라 이미 모든 시간대에 (확률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상대론적으로 빛은 길이를 0으로 수축시키기
때문에 한 시간대에서의 모든 공간에 확률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죠. 결국 시간이 흐르는 것과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이 있을 때 시간의
기준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쪽이 되어야 하고, 또한 자연의 기준은 불완전한 인식과 감각을 가진 인간을 기준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것처럼 보이더라도 시간이 불변이란 것을 가장 잘 설명하는 구조는 바로 제가 설명한 시간대라는 개념입니다.
아래는 질량의 상대성을 쉽게 이해해보는 사고실험입니다.
먼저 질량이 100kg인 물체와 질량이 1000kg인 물체가 동시에 불연속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죠.
그 둘은 동시에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았다가가 반복된다는 겁니다.
에너지 보존법칙이 성립하려면 질량이 가진 에너지가 질량이 아닌 상태로 바뀌었다가 다시 질량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경우 질량이 공간화가 된다고 했었죠.
그럼 그 경우 질량이 서로 다른 물체가 '동시'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100kg의 질량의 에너지가 만든 공간이 질량화가 되는 것보다 1000kg의 질량의 에너지가 만든 공간이 질량화가 되는 것이 더 빨라야 합니다.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상대론에서 설명하는 중력가속도가 설명되죠.
즉, 서로 다른 질량을 가진 물체가 불연속으로 동시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질량이 더 큰쪽의 공간의 질량화가 더 빨라야 하고
그것이 중력가속도의 차이로 연결된다는 겁니다. 이런 간단한 사고 실험조차도 못하고 제 설명이 틀렸다고 하는 것들은
과연 사고력을 가진 것들인가 아니면 그냥 돌덩이인가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똑똑한 척은 다하면서 말이죠.
그게 이곳 물갤의 전공자들의 수준이란게 참 불쌍하고 말이죠. 적극적으로 제 설명을 비난만하는 것이 아닌 침묵하는 부류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다시 말하지만 제 주장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다이고 그게 틀렸다고 하려면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면 되는 겁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고력만 있다면 제 설명이 옳다는 것을 쉽게 알수있다고 누누히 이야기 했지만
결국 제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변화가 불연속이라는 그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인것이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면 과학을 하지 말길 바랍니다. 저도 사실 제 이론을 감정적으로는 굉장히 싫어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증명이 끝났기 때문에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이론이던 그 이론의 공리하에서는 현상과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수학이 현상과 상관없이 공리안에서 옳은 것 처럼 말이죠. 그런데 물리학이란 현상과 일치하는 이론이 옳은 이론인 것이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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