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명과 죽음을 고찰할 때와 이 두 가지 용어를 적용할 때에 잘못 생각합니다.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먹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때를 생명이라 부르고, 숨쉬고 먹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일하지 못하게 되어 차고 감각이 없는 유해가 되어서 무덤 속으로 돌아갈 차비가 되어 있는 때를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생명’을 이해하게 하고 ‘생명’에 적합한 행위를 알려주고자 합니다. 생명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존재가 생명은 아닙니다.
이 기둥에 달라붙어 있는 포도나무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생명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멀리 있는 저 나무에 매어져서 매애매애 하고 울고 있는 저 양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생명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내가 말하는 생명은 어머니의 태중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 생명은 하느님께 창조되어 육체 안에 살도록 만들어진 영혼으로 하느님의 생각 안에 태어날 때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죄가 그것을 죽일 때 끝나게 됩니다.

처음에 사람은 발육하는 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씨는 밀이나 실과의 씨가 그런것처럼 부질이나 골수가 아니라 살로 된 씨입니다. 맨 처음에는 그것이 지금 이 양의 태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와 다를 바 없는 동물의 태아로 형성되는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임신된 인간 안에 형체가 없는, 그러면서도 인간을 높여 주는 무형 속에서 오히려 더 강력한 그 부분이 스며들어오는 때부터는, 그 동물적 태아가 그의 심장의 박동과 더불어 존재할 뿐 아니라 창조하시는 생각에 따라 ‘살고’ 하느님의 모습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이 되고, 하늘나라의 미래의 시민인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되어야 이렇게 됩니다.



사람이 인간의 형체는 그대로 가지고 존재는 하되, 이미 사람이 아니라 생명이 분해되는 무덤이 되어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은 존재와 더불어 시작되지 않고, 육체와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생명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됩니다. 그런 다음 생명은 끝이 없습니다. 영혼은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천상의 것이기로 되어 있는 그의 운명에는 죽지만, 그의 벌을 받기 위하여는 살아남습니다. 생명은 은총에 죽을 때에 이 축복받은 운명에 죽습니다. 그의 운명에 대한 죽음이라는 회저(壞疽)에 걸린 그 생명은 영원한 세월을 두고 영벌과 고통 속에서 연장됩니다. 이와 반대로 창조된 그대로 보존된 생명은 그의 창조주와 같이 영원하고 완전하고 지극히 행복하게 되어서 완전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생명에 대하여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어떤 것이든지 정성들여 쓰고 보존해야 합니다. 그것을 주시는 하느님만큼이나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왕의 선물을 마구 쓰겠습니까? 아니지요. 왕의 선물은 집안의 영광으로 대대로 물려 줍니다. 그렇다면 왜 하느님의 선물은 냉대를 합니까? 그러나 하느님의 이 선물을 어떻게 쓰고 또 보존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천국의 꽃 같은 이 영혼의 꽃을 생생하게 가꾸어 하늘에 옮겨 심을 수 있도록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늘을 위하여, 그리고 존재를 넘어서 ‘살게’ 됩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명백한 계율들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이스라엘이 계율들을 지키기 위하여는 그에게 모범과 말을 주는 예언자들과 의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는 성인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잘못 생각할 수도 없고, 또 잘못 생각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마음 속에 있는 결점들과 사방에서 불어나는 죽은 정신들을 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회개하고, 여러분의 영혼의 문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이시오. 변함없는 율법을 지키고, 여러분 안에서 쇠약해져서 지쳐빠진 ‘생명’을 튼튼하게 하시오. 그리고 만일 그 생명이 벌써 죽었으면 참 생명이신 하느님께로 오시오. 여러분의 죄를 한탄하고,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으시오. 그러나 다시 일어나시오.



내일 영원한 고통에 넘겨지지 않도록 산송장이 되지 마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생명을 다시 찾거나 보존하는 방법에 대한 것 말고 다른 말은 안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음란한 부정한 불과 여러분의 죄의 진흙을 없애서 깨끗하게 하시오.’하고.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함께 율법을 공부합시다. 율법에서 참 하느님의 온정 넘치는 목소리를 다시 들읍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마음에 내려오기 바랍니다.’하고 영원하신 분께 함께 기도합시다, 하고 말입니다.


지금은 우중한 겨울입니다. 그러나 멀지 않아 봄은 올 것입니다. 죽은 영은 결냉으로 인해서 잎이 떨어진 수풀보다도 더 초라합니다. 그러나 겸손과 의지와 회개와 믿음이 여러분 안에 스며들어가면, 봄이 되면 숲이 그렇게 되는 것과 같이 생명이 여러분에게 돌아와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위하여 활짝 피어나고 그 다음에는, 영원무궁세의 내일에 참 생명의 영원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생명에게로 오시오. 이제는 존재하기만 하는 것을 그만두고 ‘살기를’ 시작하시오. 그렇게 되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것입니다.



황혼이 보이는 하루의 시작, 권태도 없고 한도도 없는 기쁨의 시작일 것입니다. 죽음은 육체 이전부터 살고 있는 것의 승리일 것이고, 내가 참 하느님의 이름으로 약속하는 그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을 육체의 승리일 것입니다. 이 생명을 나는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생명’을 ‘원해서’ 하느님의 아들들의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관능과 정욕을 짓밟는 모든 사람에게 약속합니다.가보시오. 날마다 이 시간에 영원한 진리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