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그 이후, 우리는 3년에 걸쳐 지금의 카시미르, 파키스탄, 이란 그리고 인도의 여러 지역들을 여행했습니다.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나는 사람들이 예수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것을 지켜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초대를 받아, 사람들의 집에 머물거나, 가족의 행사, 예를 들어 결혼식이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가 지닌 영적인 빛으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에게 마음이 끌렸지만, 예수 역시도 마음을 열고, 행복해했으며, 사람들이 예수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예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예수가 사람들을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면서, 마을에 살고 있던 부자와 마찬가지로, 길거리를 떠도는 집 없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대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 찾아오는, 오늘날의 선술집 혹은 바와 같은 곳에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예수는 종종 포도주를 마시기도 했지만, 나는 예수가 조금이라도 취해 있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의식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술, 마약 혹은 독약처럼 효과를 빠르게 나타내는 물질도 몸에 영향을 전혀 줄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오후 내내 그리고 초저녁까지, 선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우리는 그곳을 떠나, 마을의 주변에 있는 작은 산속으로 들어갔으며, 예수는 작은 호숫가의 나무 아래에 앉았습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으며, 그런 다음 “있잖아, 사람들의 마음이 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갇혀 있어, 내가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지 못할 때가 종종 있어. 선술집에 앉아 하루 종일 술을 마시는 사람들, 그것도 날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한 번 살펴봐. 이들이 술을 마시는 직접적인 동기는 그들의 삶이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야, 이들은 물질에 반응할 수 있는 두뇌의 능력을 이용해서, 그러한 슬픔과 고통을 잊으려고 하는 거야. 하지만 이들이 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들의 이면(裏面)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훨씬 더 깊은 주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모든 인간은 정말로 영적인 존재이며, 우리 모두는 하나님(God)과 함께 하는 공동 창조자가 되도록 창조되었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알고 있으며, 마음이 지니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우리는 삶의 형태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하지만 물질의 세계를 보이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가 마음을 이용해서,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없게 돼. 바로 이 때문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삶이 낭비되고 있으며, 희망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거야.


이와 같은 전체적인 상황, 즉 우리의 마음이 물질적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야. 그러한 상황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가 집단적으로 그리고 인위적으로 창조해놓은 거야. 하지만 추락한 존재들은 이러한 상황을 유도 및 통제해오고 있어.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추락한 존재들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거야. 다시 말해, 추락한 존재들이 사람들의 내적인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뜻이야. 추락한 존재들이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힘은 갖고 있지 않지만, 어떠한 상황을 만들어냄으로써 간접적으로는 영향을 미치고 있어. 다시 말해, 추락한 존재들은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카르마를 짓게 만들고, 그 카르마가 되돌아와, 이들을 제약하도록 만든 후, 이러한 상황들이 외적인 힘에 의해 창조되었으므로, 이러한 상황들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사람들이 지니고 있지 않다는 거짓된 믿음을 퍼뜨림으로써,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야.


따라서 추락한 존재들은 사람들을 조종해서, 현재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이러한 내적인 고통을 느끼도록 하고 있는 거야. 그런 다음, 추락한 존재들은 사람들이 일시적이나마 내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으로, 마약과 술에 손을 대도록 만들고 있어. 사실, 진정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하도록 되어 있는 것, 즉 공동으로 창조를 하는 것뿐이야. 하지만 추락한 존재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도록 되어 있는지(창조된 목적)조차 알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 그 대신에, 사람들은 추락한 존재들이 제공해 주는 것을 받아들여, 고통을 무디게 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는 거야. 술을 마시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위안이 되겠지만, 술 뒤에 숨어 있는 악마들에게 자신들의 에너지장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결국 사람들은 중독될 수밖에 없어. 따라서 내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위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된 술이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는 거야.


내가 알게 된 패턴은 추락한 존재들이 어떠한 문제를 만들어내고, 마치 해결책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사람들에게 제공해 주는 거야. 하지만 그러한 해결책은 오히려 사람들의 의식을 더 아래로 떨어뜨릴 뿐이야. 과거 생들에서, 너와 내가 겪었던 것들을 한 번 살펴봐. 우리는 추락한 존재들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했으며, 추락한 존재들이 사람들을 더 이상 학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같은 것을 느꼈어. 그 후부터, 우리는 추락한 존재들의 교묘한 논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어. 다시 말해, 더 심한 폭력을 막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된다고 믿게 된 거야. 따라서 이들이 어떤 문제를 만들어내고, 그런 다음 이들이 내놓는 “해결책”이라는 것은 이원성적인 투쟁으로, 우리가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 우리 둘이 체험했던 것처럼,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으며, 해결책으로 인해, 우리와 추락한 존재들이 더 단단하게 묶이게 되어, 우리 스스로를 제약하는 카르마만 짓게 됨으로써, 개인적인 고통만 불러왔을 뿐이야. 결국,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 후 추락한 존재들과 묶여 있던 의식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우리는 많은 생들을 보내야 했어. 내 말은 현재 상황에 이르기까지, 즉 추락한 존재들과 개인적으로 묶이지 않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여러 생들에 걸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살펴보라는 거야.


예를 들어, 오늘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을 한 번 살펴봐.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의식에 있어,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들의 삶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 뿐만 아니라, 그러한 문제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너와 내가 따랐던 것과 동일한 길을 따르기 위해,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정확히 알고 있어.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가 없어. 왜냐하면 그들과 나 사이에 의식의 차이가 너무 커서, 내가 하는 말을 그들이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야. 추락한 존재들이 만들어놓은 거짓말들로 인해, 사람들의 인생관이 아주 교묘하게 영향을 받고 있어, 그들은 내가 말해줄 진리, 즉 그들을 자유롭게 해줄 진리를 거부하게 될 거야. 내가 말해줄 진리는 사람들이 삶에 대해 지금 믿고 있는 것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을 개선하기 위해, 그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들의 사고방식, 혹은 행동양식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어.


따라서 나는 추락한 존재들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길고도, 힘든 길을 따라왔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데에는, - 지금 당장 내가 보기에 - 나는 조금도 더 나아지지가 않았어. 문제는 【내가 알고 있는 이러한 해결책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느냐?】 하는 거야. 만약 이러한 해결책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없다면, 어떻게 내가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겠어? 내 사명은 나 자신이 해방되어, 상승하는 것이 아니야. 내 사명은 인류에게 뭔가를 전함으로써, 다음 영적인 주기(週期 : 쌍어궁 시대의 2000년간) 동안, 사람들이 추락한 존재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걷도록 돕는 거야. 하지만 추락한 존재들이 아주 많은 거짓말, 즉 온갖 속임수들을 만들어냈으므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는데, 내가 어디에서부터 먼저 시작해야 할지 때로는 알지 못할 때가 있어. 나는 그야말로 이 행성을 변화시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이 일이 내 능력으로는 너무 벅찬 것이 아닌지 이따금씩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


이 시점에서, 예수는 시선을 돌려,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그의 두 눈에서는 연민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나는 이 눈물이 내적인 깊은 아픔을 나타내는 거라는 사실을 앞으로 몇 년에 걸쳐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면, 나는 예수에게 나의 가장 깊은 사랑을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예수가 아주 힘주어 설명했던 딜레마에 대한 답을, 나는 당연히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