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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 (눅 10:22)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때로 매우 무섭고 잔인해 보이는 방식으로 행동하십니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 하시거나, 아간과 그의 가족을 모두 돌로 쳐 죽이라고 하시는 장면, 혹은 우사처럼 단순히 궤를 잘못 만졌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경우들이 그 예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는 혼란을 줍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잔인하다고 싫어할것입니다.”
인간 중심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재단하려는 태도, 곧 자신의 의를 기준으로 하나님의 판단을 거절하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행한 바로 그 일입니다.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마음, 즉 “내가 옳고 하나님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타락의 본질이었습니다.
반대로,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이 내 이해를 초월해도 그분이 선하시며 의로우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욥이 그 예입니다. 모든 재앙을 당하면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 앞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고 순종하려 했던 것도 그런 신뢰의 표현입니다.
성경은 단지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읽어야 합니다. 올바른 해석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바른 마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 없이, 그리고 바른 길을 걷지 않으면서 말씀을 읽으면 왜곡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악할수록 하나님은 두렵고 엄격하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왜곡된 부분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점 더 깊이 알게 됩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 (사 6:9-10)
"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 (막 4:11-12)
겉으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옥이 두렵고 벌이 무서워 겉으로는 흠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해 보였지만, 속은 탐욕과 외식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시며, 겉은 깨끗하나 속은 죽음으로 가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악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선하심이 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선하고 사랑이 많으신 분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어찌하여 선한 것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마 19:17)
“하나님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일에 “왜?”보다 “주님, 나는 이해하지 못해도 당신을 신뢰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때로 인간의 눈에 '잔인해 보이게' 행동하신 이유는, 누가 정말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는지를 드러내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진짜 믿음은 고통과 오해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데서 드러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자기의 사람’이라 부르실 것입니다.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의롭다고 하며 하나님을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싶어하십니다.
에덴과 하늘 천사들의 반란은 그러한 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자는 것이고 깨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고통을 이야기한다면 그리스도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아픔에 참여하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은 사람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단 12:2)
하나님께서는 슬픔과 괴로움이 없는 완전한 세상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합당한 백성으로 우리를 훈련시키고 계십니다.
성경 속 잔혹해 보이는 장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신 이유도,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더럽히지 않도록 반역하는 자들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시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깊이 감춰진 마음을 알게 된다면 적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미리 판단하였음을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그 사랑도 크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사랑을 보여주셔도 그 마음을 아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자녀들은 베푸신 일들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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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롭지 않은 자' 즉 죄인이 되는 내러티브를 짜놓고 말을 하는데 그게 맞냐?. 그런 방식의 사고방식이 극단으로 발현된게 이슬람처럼 사람 죽이기를 밥먹기듯이 하는 놈들이야, 기독교도 당연히 현재 성경기반으로 많은 만행을 저질렀고.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어떤 조건에서라도 타인을 '희생양' '죄인'으로 만들 수 있는 사고방식으로는 이 세계의 고통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사탄이고 의인이고 찬양이고 반역이고 이런 서사에 갇히지 말고 그 사고방식을 보라고 구약성경의 하느님이 때로는 두려워서 때로는 혼란을 준다고? 그건 구약의 하느님이 악한 행동을 하니까 당연히 그렇게 느끼지 그걸 상징으로 분석을 하고 앉았어.
죽음과 고통이라는 상징 자체가 없는 세상을 만들면 되는데, 왜 만들었어? 자유의지를 줬기 때문에? 타락천사들 때문에?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사람의 영의 한계를 보기 위해서? 하나님의 절대선이라면 이런 개념자체에 넘어서는 분이라야만 그게 합당하지. 만약에 구약에 나와서 스스럼없이 치열이 고르지 않다고 사람 돌로 쳐죽이라는 존재로 기록되어있는 존재가 만약에 진짜 하나님이라면, 지옥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바로 여기가 지옥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렵고 힘든 시험을 주셨지만 이를 극복하고 이긴 사람들에게는 영광을 주시게 될 것입니다.아담은 그 자격이 안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하셨기 때문에 만물위에 높게 세우신 것입니다.사람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깊은 지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 생각엔 '누군가는 영광을 받는다' '누군가는 자격이 안되었다' '나는 이해할 자격이 없다' 이런 생각의 공통점은 모두 위계질서에 대한 순응임. 기본적으로 군대나 주인/노예, 지배자/피지배자의 사고방식에서 있음. 절대선의 하나님이 성립하시려면 지배자/피지배자, 특별함, 위계질서라는 개념에 넘어서야하는 분이겠지. 그래야만 이런 세상을 만들고도 그걸 넘어서는 어떤 설계가 가능하지 그게 아니라면 그냥 우주독재자 밖에 안되는 거임. 또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선민의식 심어주는 것도 똑같고. 그 사고체계 자체가 루시퍼적인 생각임. 넘어서려면 모든 존재에 대한 완벽한 아낌과 사랑으로 가야지, 이런 수천년동안 사람죽이는데 오용되어왔던 논리로는 부족해.
마지막으로 스스로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믿고 있는데 왜 아이디는 상징과이해 라고 함? 상징과믿음 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겠어? 어떤 질문을 하는데 있어서 무조건 사람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 이게 어떤 신념체계를 방어하는데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동일하게 발현되는 곳이 또 어딘줄 알아? 또 사람죽이는데 오용되어왔음. 그렇기에 난 이런 사고방식을 옹호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