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 오후 5시 40분, 와카야마현 쿠시모토 편의점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살이 비쳤지만, 내 마음은 이미 한밤중이었다.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낯선 타국을 떠도는 여행자라기보다, 갈 곳을 잃고 부유하는 그림자에 가까웠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누군가의 무너진 삶을 지탱하려 애썼던 20대의 시간들. 

타인의 불행을 상담하고 위로하며 정작 내 안의 둑이 터져가는 줄은 몰랐다.

부모님과의 대화는 언제부턴가 끊긴 지 오래였다. 

기대와 실망이 뒤섞인 집안의 공기는 늘 나를 질식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 숨 막히는 현실을 피해 일본의 가장 남쪽 끝자락까지 도망쳐 왔다. 


한 달간의 여정, 그리고 바닥을 드러낸 통장 잔고. 모든 숫자가 0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을 나서며 낮에 미리 보아둔 그 갯바위로 향했다. 

그곳은 파도가 거칠고 깊어, 내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에 가장 고요한 무덤이 될 것 같았다.


오후 8시 00분, 어둠에 잠긴 해안도로


숙소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걷는 이 길의 끝은 안락한 침대가 아니라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파도뿐이었다. 

사방은 지독하게 어두웠고, 띄엄띄엄 서 있는 가로등조차 죽어가는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문득,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주던 한 사람의 목소리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누나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가는 짧은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누나, 나야.”

“세준아! 별일없어?”


누나의 밝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목구멍이 뜨겁게 타올랐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아이처럼 엄살을 피웠다.


“누나, 여기 진짜 너무 어두워. 가로등도 없고 무서워 죽겠어. 그냥 좀 무서워서 전화해 봤어. 이제 숙소 거의 다 왔어.”


이건 나의 마지막 배려이자 잔인한 연극이었다. 

내가 끝까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길을 걷고 있었다는 기억을 남겨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내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누나는 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고 믿으며 평생을 자책하지 않을 테니까. 

동생이 스스로 생을 놓았다는 진실보다, 안타까운 사고였다는 거짓이 남겨진 누나의 삶을 덜 아프게 할 것임을 나는 잘 알았다.


오후 9시 33분, 갯바위 위에서의 마침표


거친 파도 소리가 발밑에서 으르렁거렸다. 낮에 점찍어둔 그 자리다. 검은 바다는 모든 것을 삼킬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마지막 온기를 머금은 휴대폰이 진동했다.


[세준아, 숙소 잘 도착했니?]


화면에 뜬 누나의 메시지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눈물이 화면 위로 떨어져 글자가 번졌다. 

이제 더 이상 거짓말을 할 기운조차 없었다. 

하지만 누나에게만큼은 내 마지막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나를 사랑해준, 그리고 나 때문에 늘 마음 졸였을 누나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인정이었다.


“엽!  고생혀.”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휴대폰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엽'이라는 말 뒤에, 나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았던 누나를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꾹꾹 눌러 담았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빗소리에 묻히고, 내 마음은 비로소 평온해졌다. 

나는 누나에게 남긴 그 한 문장을 가슴에 품은 채, 나를 부르는 검은 바다 속으로 천천히 몸을 던졌다. 


6월의 바다는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