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천(九泉)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래 이름은 황천(黃泉)이기 때문이다

2. 세상 어딜 가도 죽었는데 누런 강을 떠돈다는 이야기는 없다. 굳이 비슷한 게 있다면 그리스 신화의 스틱스 강 정도?

3. 원래 사람은 지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1. 구천을 무슨 9개의 하늘이라고 아는 놈들이 있다.

ㄴ 그게 아니라 9개의 지하에 흐르는 강을 말한다.

ㄴ 그 구천을 떠돌게 된다는 소리다.

ㄴ 그런데 이건 개구라다.

ㄴ 왜냐하면 그 구천은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만 있는 신앙적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ㄴ 비슷한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선 '황천'으로 불린다. 흔히 말하는 황천길 간다 할 때 그 황천이 맞다

ㄴ 그래서 정작 중국 무속인이나 일본의 영매들한테 '구천'이라고 말하면 못 알아먹는다.

ㄴ 하지만 언어가 곧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언어 결정론'에 따라 한국인들은 잘못 죽으면 구천을 떠돈다는 말을 믿는 이들이 있다

ㄴ 마치 7빛깔 무지개 같은 것과 같다. 실제로 무지개는 7빛깔이 아니라 월등히 색의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하도 7개의 색깔이라고 해대니까

ㄴ 진짜 무지개가 7개의 색만 있다고 믿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ㄴ 황천은 구천이라고 바꿨다는 이유로 9개의 강을 떠돈다는 식으로 믿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ㄴ 언어 하나가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는 식이다




2. 구천이 실존한다면 왜 유사한 사후세계 케이스가 없는가?

ㄴ 이게 바로 오컬트의 한계다

ㄴ 객관성이 부족하다. 객관성이 중요한 이유는 확률적 개연성에 기인한 진리적 기반이 설득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ㄴ 남들이 다 NO라고 하는데 지만 YES라고 하면 되겠는가?

ㄴ 도대체 미국 신화에 9개의 river를 떠돈다 (wandering around)라는 말이 있나, 유럽에 그런 말이 있나

ㄴ 동남아시아에 그런 개념이 있나

ㄴ 하다 못해 옆동네 일본 신화에 그런 개념이 있나

ㄴ 구천 같은 것은 없다

ㄴ 왜냐하면 똑같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오직 한국이란 나라에만 존재하는 사후세계이기 때문이다

ㄴ 같은 인간이 죄를 지어서 구천을 떠돌아야 한다면 코쟁이 백인 나라나 검둥이 아프리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ㄴ 왜 남들 나라엔 존재하지도 않는 사후세계가 하필이면 한국에만 존재하는가?

ㄴ 사후세계는 인종차별하는 곳인가? 

ㄴ 반대로, 왜 우리나라엔 '연옥'이 없는가? 죽으면 연옥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무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ㄴ 왜냐하면 무당의 세계관엔 가톨릭의 특정 분파에만 존재하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ㄴ 하지만 가톨릭 신자라면 죽어서 '연옥' 간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

ㄴ 특히 단테 알레기에르의 '신곡' 때문에 더 유명한 연옥에 갔다는 동양인을 처본 적이 없다.

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부터 구천도, 연옥도 실존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이다.

ㄴ 떠나면 강이 보인다는 식의 유사케이스는 끽해봐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스틱스 강 뿐이다.

ㄴ 하지만 그것도 강을 건넌다는 개념이지, 정처없이 떠돌아 다닌다는 식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3. 원래 사람은 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ㄴ 지금 당장 눈을 감고 5초간 '갈색'을 찾아라.

ㄴ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5초간 '빨간색'을 찾아라.

ㄴ 내가 '갈색'을 보겠다고 마음 먹었을 땐 주변에 들어오는 형형색색의 색깔이 희석되고, 오로지 갈색과 유사한 색만을 탐색하려는 뇌를 경험할 것이다

ㄴ 심시어 갈색도 아니고 베이지색에 가까운 것을 봐놓고 그것을 '갈색'이라고 여기는 뇌의 합리화 기재를 경험했을 것이다.

ㄴ 그만큼 인간의 뇌는 자신이 포착하려는 것만을 강화하고 합리화하려는 기질이 크다는 소리다.


ㄴ 즉,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는 것이 진리다.


ㄴ 내가 구천이라고 믿고 싶으니까 구천이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거고

ㄴ 내가 천국이 있다고 믿고 싶으니까 천국이 있다고 떠들고 다닐 뿐이라는 것이다.

ㄴ 자신이 보려고 하는 대상에 대한 믿음이 현상을 왜곡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ㄴ 이따구로 돌아가는 판국에서 구천이 실존한다느니, 내 말이 맞고 너는 틀렸다느니 같은 논쟁은 하등 가치가 없어진다.

ㄴ 왜냐하면 구천이 있다고 믿기 시작한 인간에겐 한낱 도랑에 흐르는 조그마한 물줄기조차도 구천의 일부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ㄴ 즉, 실존해서 구천이 있다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구천이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화된 개념이 있다는 신기루가 일어난다.

ㄴ 여기까진 괜찮다.

ㄴ 문제는 그 왜곡된 현상을 인지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있다.

ㄴ 그것이 내 믿음이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다는 자각도 없이, 단순히 누군가가 영적으로 수준이 낮거나 영혼의 질이 낮아서라는 등

ㄴ 자뻑질을 시작하니까 문제라는 것이다.





구천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있다고 '믿고 싶은' 이들의 희망사항이 왜곡된 현실 속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신기루이다.

마치 상상 속에선 악마와 예수가 떡을 치는 가능성이 성립하지만, 실제로는 귀신 봤다는 인간은 있어도 예수 봤다는 목격자는 한 명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구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상상과 망상 속에선 존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