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종말] 경자유전 어떻게 변해왔나② - 1994년 제정된 농지법의 변질

https://www.vop.co.kr/A00001606056.html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발행2021-12-26 10:48:12 수정2021-12-26 10:48:12
27101539_KakaoTalk_20210827_101403860.jpg윤희숙 의원 부친이 매입한 세종시 농지.ⓒ민중의소리

지난 8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부친이 세종시에 논을 매입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였다. 윤 의원의 부친은 농민이 아니기에 농지를 소유할 수 없으므로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그런데도 농지를 매입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농사짓겠다는 거짓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부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다음 헌법에서 금지한 소작을 주는 불법을 저질렀다.

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미 LH사태로 인해 공직자들의 농지 불법소유 실태를 조사하면서다. 윤희숙 부친의 건은 불똥이 튄 정도에 불과하다. 사태가 이러니 정부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한답시고 서둘러 고위공직자의 농지 소유 현황을 정리하여 발표했다.

조사 결과, 전체 공개대상자 1,862명 중 38.6%인 719명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중앙부처는 200명으로 10.7%, 지방자치단체는 519명으로 27.9%를 기록했다. 이들이 소유한 총 농지면적은 311ha(약 942,050평)이고, 총 가액은 1,359억 원이었다. 1인당 평균 농지 소유 규모는 0.43ha(약 1,310평), 1인당 평균 가액은 약 1억 9천만 원 정도다.

이런 현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실제 경작을 하는 농민들의 경우 농지의 평균 평당 가격이 7~8만 원이고, 최대 15만 원 이상이 되면 농지를 구입하여 농사를 짓기 힘든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2018년 벼농사의 소득은 10a(0.1ha; 300평)당 68만 3천 원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이자율이 연 3%라면 농업수익으로 환산한 농지 가격은 2,276만 7천 원으로 평당 7만 6천 원이 채 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전체 농가의 48%에 해당하는 487,118호가 경지가 없거나 0.5ha 이하를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고위공직자들의 농지 소유 현황은 면적이나 금액 모두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24044034_noname01.jpg경실련발표자료 월간경실련 2020년 11,12월호ⓒ경실련

국회도 부랴부랴 국민권익위에 이와 관련한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여야를 막론하고 25명의 국회의원이 부동산 소유 과정에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다. 이에 따라 각 당은 제명, 출당 등의 징계를 했지만, 의원들이 억울하다며 버티다가 흐지부지되어 버린 상황이다.

이렇듯 지금 대한민국에선 농지와 관련한 헌법적 가치인 경자유전의 원칙이 파괴된 지 오래고, 그나마 지키려는 경자유전 원칙을 떼어내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에 너무 집착하여 농업이 산업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걱정과 우려는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 농민이 경자유전에 집착하고 싶어도 집착할 농지조차 없는 소유구조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인식이 이러니 농지법은 농지를 투기의 대상물로 만들고 말았다.

우루과이라운드를 시작으로 농업 개방의 불가피론과 경쟁우위설의 도입으로 농촌 경제가 어려워지자, 그간의 농지개혁법과 관련 법들로 운영되던 법 체계를 단일화한 농지법이 1996년부터 시행되었다. 새로 만든 농지법에서는 헌법 상 경자유전의 원칙을 재확인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6조 제1항에서 농지소유 자격을 농업인과 농업법인으로 확대해 자본의 농업 참여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농지 소재지 거주 요건을 폐지하고 도시에 사는 사람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으면 농지를 사들일 수 있게 됐다. 1999년엔 임차료 상한제 등 임차농가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폐지됐고, 농지 소유의 상한은 약 5만㎡(1만5125평·5㏊)로 확대됐다.

2003년엔 주말 영농을 목적으로 도시민도 1000㎡(302.5평·0.1㏊) 미만의 농지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그 이후로도 농업을 연구하는 바이오·벤처 기업 연구소, 직업 탐색을 하는 대학생에게도 농지 소유의 길이 열렸다. 농지 소유 규제를 풀고,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확대해오며 누더기가 된 농지법의 현주소가 이렇다.

그 결과 현재 농지의 경우 60% 이상 소작농이 농사를 짓고 있으며, 15년 후에는 전체 농지의 84%를 가짜 농민을 포함한 비농민이 소유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다. 엄연히 경자유전의 원칙을 명시한 헌법이 존재함에도, 농지법을 통해 온갖 예외 규정을 두어 국민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24044146_noname02.jpg농업인 농지소유 및 이용현황ⓒ통계청

농지를 지켜야 할 ‘농지법’은 1996년 이전의 소유 관계는 아예 덮어두고 그 후에도 예외 규정을 통해 비농업인의 농지소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 또 농지법 이외의 다른 법률에서는 농지 전용이 무분별하게 허용되는 실정이다. 특히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농지법의 상위법률처럼 작동했다. 농지법 제정 직전인 1994년에는 7개 법률에서만 용인될 정도로 농지 전용이 엄격히 관리되었으나, 2019년 6월 기준으로 농지 전용 의제 법률은 78개로 크게 늘어났다. 이로써 비농민 농지소유가 경작농민 수준을 넘어섰다.

2021년 7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농지법,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 한국농어촌공사 및 농지관리기금법 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이들 개정법률안 3건은 모두 농지제도를 강화하는 법으로 ‘농지 투기방지 3법’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LH사태가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을 잠재우기 위한 농지법 개정이었다.

개정 농지법은 농지 취득자격 심사를 강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런 조항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지자체가 농지 취득자격 심사 과정에서 신청인의 농업 경영 계획 실현 가능성을 면밀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을 의무화한다거나 농업경영계획서 작성 시 직업·영농경력·영농거리를 반드시 기재해야 하고, 관련 증명서류도 의무 제출해야 하는 등 강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 것이다.

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라고 선언하고,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서만 인정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4044523_1111.jpg2021년 6월 24일 농지법 개정안 국회 상임위 처리를 앞두고 열린 ‘농지투기 근절, 경자유전 원칙 제고, 농지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호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과 농민의길 소속 농민단체 대표들이 제대로 된 농지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뉴스1

이러한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전체농가 중 임차 농가가 51.4%로 자경농가를 초과하여 경자유전의 헌법정신은 사라지고 예외적이어야 할 임차농이 주류를 이루는 비정상이 횡행하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현행 농지법령에 따르면 비농업인이라도, 상속인 또는 8년 이상 농업경영에 종사했던 이농자는 상속 또는 이농 당시 소유하고 있는 1만 제곱미터 이내의 농지를 아무런 제한 없이 소유할 수 있고, 이 경우에는 농업경영이나 농지처분 의무도 없어, 임차농 증가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농촌인구는 급격하게 고령화되고 있으나, 자손들 대부분은 도시에 거주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간이 흐를수록 비농업 상속인 및 이농자의 농지 소유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나, 그들의 농업경영은 기대하기 어렵고, 일선 행정기관이나 인근 농지경영자 등 이해관계인들의 소유자ㆍ임차인 등 현황 파악과 사후 관리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농지 상속은 민법에 따라 피상속인 사망으로 자동 개시되고 등기 여부와 관계없이 소유권이 이전되어 농지의 상속과 취득 현황 파악이 어려우며, 상속인과 이농자 소유 농지의 휴경이나 불법 임대차 등에 대한 적절한 관리 수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에 상속인 및 이농자 소유농지도 농업경영에 이용되어야 하는 농지임을 명확히 하고, 상속 농지나 휴경 농지 현황을 행정기관과 이해관계인들이 파악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 및 연계 정보 관리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일본식 용어를 우리말 어법에 맞는 표현으로 순화하려는 것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인용)

농지법의 문제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 사회가 그것에 대해 어디까지 합의 할 수 있는 것인가의 판단이다. 그러기에 농지법에는 경자유전에 입각한 농업과 농민 그리고 국민의 지속가능한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1950년 농지개혁법에서 1994년 농지법으로 전환되면서 농지의 공공적 성격이 많이 침해되었다고 판단된다. 농지법 제정 당시 통작거리 8km를 삭제하고 비농업인 상속 1만평방미터 소유로 한정했다. 그후 2002년 농지법 개정시 비농업인이 농업회사를 통해 농지소유를 가능하게 하고 비농업인이 1000평방미터를 주말 여가용으로 소유하도록 했다. 이때 농지관리위원회를 폐지하는 등 농지의 투기를 부추키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 뒤 2005년에 비농업상속인 소유가능범위를 2만평방미터까지 확대하고 2009년엔 아예 이 조항을 폐지했다. 거기다 경사도 15% 이상 진흥지역 외 농지를 비농업인이 얼마든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뿐인가. 농업회사법인 대표가 농업인이 아니어도 된다는 규정까지 만들었으니 가히 농지투기의 천국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번 농지법 개정은 단지 LH사태로 비롯된 농지투기를 막아 보겠다고 취한 임시 조처에 불과하다. 그도 현재 공직자들이 보유한 농지는 그대로 유지한 채 소급적용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그대로 노출했다. 농지법을 만지작거리며 기존의 재산권이 침해받지는 않을지 먼저 고민한 정부안이나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국회도 딱할 뿐이다.

10034959_J5UC3177.jpg전농을 비롯한 농민의길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2021년 3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농지 투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3.10ⓒ김철수 기자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농지법에는 농지 투기 방지 내용만이 아니라 농지가 가지고 있는 공익적 가치인 식량 안보와 건강한 먹거리 제공, 환경 생태 보전을 위한 내용도 담겨야 한다. 그렇게 개정돼 농지가 가진 본연의 공익적 목적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법 제도가 구성돼야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본다면 농지법은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 1994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법이다. 그 간의 한국 사회는 개발을 최우선으로 하며 성장을 말하던 시대였다. 그동안 농지 변화가 극심했고 이로 인한 농업 농민의 기본권이 많이 훼손되었다. 이제는 시대의 변화와 기후변화, 식량 위기, 지속가능한 개발, 인권의 신장 등이 반영된 새로운 법으로 대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농지법이 가지고 있는 절대가치는 농산물 증산과 시장원리, 사유재산권 등에 매여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환경, 새로운 가치들이 중심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