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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승동의 독서무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칼 마르크스 지음, 최형익 옮김비르투·1만3000원

1799년 11월18일(프랑스 혁명력으로 봄의 두 번째 달인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부를 세우고 결국 황제가 된 삼촌 나폴레옹 1세를 흉내낸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의 1851년 12월2일 쿠데타를 두고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헤겔은 어딘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

읽는 데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마르크스는 보나파르트가 1848년 2월혁명으로 들어선 제2공화정의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요인의 하나로 나폴레옹에 대한 기억·향수를 들었다. "그들은 혁명의 위험에서 벗어나 이집트의 고기냄비 곁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했으며, 그러한 갈망에 대한 답변이 1851년 12월2일의 사건으로 나타났다." 마르크스는 당시 프랑스 국민의 나폴레옹 향수를 이집트 탈출 뒤의 고난 속에서, 노예신세였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탈출 전의 시절을 그리워한 이스라엘 민족의 그것에 비유했다.

옮긴이는 보나파르트의 대통령 당선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나폴레옹 신화를 맹신하는 분할지 소농민의 압도적 지지 획득과 함께, 6월 학살(3000명 이상이 희생당한 블랑키파 민중봉기) 진압 공적에도 자유주의 공화파로부터 찬양은커녕 아무런 반대급부조차 획득하지 못한 군부, 왕정복고를 공공연히 원했던 대자산가계급, 6월 학살 희생자들인 하층 소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특히 이들에게 '적의 적은 친구'라는 속담에나 합당한 심정적 반발, 이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 우연한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혁명에 놀라거나 지친 나머지 향수에 시달리며 주춤거린 혁명세력을 보고 마르크스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저 유명한 말을 떠올린다. "이곳이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바로 지금 여기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걸 보여 달라'는 것인데, 이런 단말마의 외침이 터져나올 때까지 혁명의 후퇴는 계속된다고 마르크스는 얘기한다.

결국 혁명은 갈 데까지 간다. 부르주아지마저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배반한 채 공화정과 보통선거제를 폐지하고 보나파르트의 황제 등극, 즉 왕정 복고에 협력한다. 그 결정적 이유는 당시 유럽을 배회하던 사회주의 유령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마르크스는 분석했다. "가장 단순한 부르주아적 재정개혁에 대한 요구와 가장 평범한 자유주의, 가장 형식적인 공화주의, 가장 협소한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요구는 '사회에 대한 도발'로 단죄당하고 '사회주의'로 낙인찍힌다." 그리하여 왕당파와 부르주아지는 "재산, 가족, 종교, 질서"의 이름으로 예전 독재자의 평범한 조카를 대통령으로, 황제로 세우는 데 반대하는 세력을 모조리 사회주의자, 즉 '빨갱이'로 몰아간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북방한계선(NLL) 관련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논란 속에 국정원과 집권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어버이연합' 등이 다시 '종북좌파'라는 흉기를 휘두르고 있는 모양이다. 이 또한 유신체제라는 비극의 소극(희극)적 반복인가. 그게 유신 복고라면 차라리 종북좌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