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품

대체할 사람 좀.






특히 조금이라도 흠을 보이는 관리는 곧바로 파면하고, 후임자를 바로 임명했기에 많은 관리들은 얼마든지 자신을 대신할 존재가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비리가 너무나도 심한 관리나 지주의 경우엔 배상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처형했다. 적자로 적자를 메우는 편법을 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41] 이러한 정책들은 끝내 성과를 내어, 옹정 10년차에는 원래 적자에 시달리던 하남성[42]이 70만 냥의 은을 보유하며 완연한 흑자로 돌아섰다. 뒷날의 역사학자 장학성(章學誠)은 이렇게 말했다.
"옹정제가 관료 사회를 개혁하여 기강을 바로잡은 일은, 실로 천 년에 한 번 있을 만한 쾌거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