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는 것마다 말아먹은,


그 새끼는,


올해 안에 뒤지면 국익에 도움됨.ㄷㄷ





동탁의 머리와 사체는 저잣거리에 내걸렸는데, 후한서에 따르면 뚱뚱한 몸의 배꼽에 누군가가 심지를 꽂고 불을 놓자 며칠씩이나 계속 탔다고 한다.[37] 동탁의 시신은 그 뒤로도 수난을 겪은 통에 동탁은 죽어서도 전혀 편하지 못했는데, 여포가 장안에서 도주할 때 동탁의 머리를 챙겨서 도망갔다는 기록도 있다.[38]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가 장안을 탈출하면서 원술에게 의탁하기 위해 선물로 동탁의 수급을 보낸 모양이다.


[37] 이 때문에 살아서는 장안을 통치하던 동탁이 죽어서는 장안의 등불이 되어 며칠 동안 장안의 불을 밝혔다고 하는 농담이 있다.






아무튼 주상순은 황제가 되진 못했지만 복왕(福王)으로 책봉되어 그 이름대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만력제는 주상순이 결혼할 때 혼인비용으로 황금 30만냥을 썼고 왕부도 다른 왕자들보다 더 화려하게 꾸며 주었으며 낙양과 많은 토지들을 영지로 하사하면서 후하게 대우해 주었지만 주상순은 사치와 탐학질이 너무 심한 나머지 그 넓은 땅에서 나오는 세금에도 만족하지 못해 백성들을 쥐어짜고 다녔고 명나라에서 손꼽히게 부유하던 하남과 낙양의 백성들이 끼니 걱정을 하며 주상순을 증오하게 만들었다. 조정 대신들도 주상순의 탐학질이 극심함을 알았지만 숭정제의 숙부로서 그의 즉위를 지지하여 공을 세운 주상순을 직접 공격하진 못하고 다만 백성을 구휼하라고 말만 할 뿐이었지만 말을 한다고 들어먹었을 인간이면 처음부터 착취를 안 했을 것이다. 그의 탐욕은 사그라드는 법이 없었다.

1627년 이자성의 난이 일어났고 1641년 이자성군이 낙양을 포위했다. 당시 낙양성은 견고하고 병사의 수와 군량도 충분했기에 이자성군도 초반에 공성을 시도하다 피해를 입어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지만 주상순은 낙양의 병사들을 열악하게 대하고 자기 재산 지키기에만 골몰했다. 병사들이 처우에 불만을 품고 위로금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주상순이 준 위로금은 고작 은화 4천 냥이었고 이 돈조차 부장들이 3천 냥을 횡령하여 병사들에게는 1천 냥만 전달되었다. 이 때문에 분노한 병사들이 폭동을 일으켜 군관들을 죽이거나 체포한 다음 성루를 태우고 성문을 열어 이자성군을 맞이하였다. 주상순은 낙양이 함락될 때 성 밖으로 도주했는데 몸무게가 300근(150kg)이나 되는 몸이라 지쳐서 영은사(迎恩寺)란 절에 숨어 쉬던 중에 추격해온 이자성군에게 붙잡혔다.

이자성이 주상순의 재산을 조사해 본 결과 쌀이 수만 석에 셀 수 없이 많은 금은보화를 가져 이를 본 이자성과 반란군이 놀랐으며 낙양 주민들도 놀라면서 하나같이 분노했다. 그래서 이자성이 주민들한테 끌려온 주상순을 어찌할까 물어보니 모두들 '죽이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자성은 주상순을 참수하여 목을 효수한 뒤 복록연(福祿宴)이라는 연회를 열어 사슴고기와 함께 주상순의 고기를 술안주 삼아 먹었다.[2]


[2] 반란군이 주상순을 잡은 뒤 능지처참해서 가마솥에 넣고 고깃국을 끓였는데 그 몸에 어찌나 기름과 살이 많은지 그곳에 있던 군중들 모두가 기름이 뜬 국물 한 사발에 고기 한 점씩은 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주상순은 복왕(福王)이고 사슴은 한자로 록(鹿)이라 하는데 녹봉 록(祿) 자와 발음이 같다. 복록(福祿)이라고 하면 '하늘이 내린 복과 나라가 주는 돈(녹)'이란 뜻인데 부귀영화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그래서 주상순의 고기(복)와 사슴의 고기(록)를 함께 먹음으로써 복록을 얻는다는 주술적인 뜻을 부여한 것이다. 주상순의 피와 사슴의 피도 술에 섞어 복록주(福祿酒)라고 부르며 마셨다. 황제의 아들로 태어나 말 그대로 복록의 끝이 보이지 않던 자의 최후는 이처럼 비참하였다.

위처럼 이자성군에게 잡아먹혔다는 기록이 유명하지만 다른 기록도 있는데 주상순이 이자성에게 붙잡힌 뒤 연회 자리에 끌려가긴 했지만 연회 자리에서 잡아먹힌 게 아니라 이자성에게 사슴 요리를 대접받은 뒤 주살당했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시신도 요리된 게 아니라 주상순을 모셨던 환관들의 간청을 들은 이자성이 장례는 치르도록 허락해 주었고 결국 간소한 장례와 함께 묻혔다고 한다. 바이두 백과는 잡아먹혔다는 설은 야사고 이 설이 정설인 듯 설명한 데 반해 중국어 위키백과나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잡아 먹혔다는 설을 정설로 설명하였다.

아예 주상순을 산 채로 삶아서 그대로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핏물, 내장, 체모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삶으면 도저히 먹을 만한 물건이 나오지 못할 것이므로 믿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주상순이 이자성군에게 잡아먹혔던 아니던,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주상순이 이자성군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고 착취에 시달리던 낙양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기뻐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