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육군의 초반 고전은 전력의 열세도 열세지만 조선인민군 육군의 엄청난 행군능력도 대한민국 국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 원인 중 하나였다. 조선인민군은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야간에 산악으로 빠른 속도로 은엄폐유지를 하며 이동해 순식간에 국군의 주요 방어거점을 무력화시키면서 전진했다. 이때 북한군의 주력부대는 국공내전 당시 중국 강남을 휩쓸었던 중국 인민해방군 제4야전대 소속 3개 조선족 사단이었다고 한다. 이들 제4야전대 출신의 인민군은 중국의 쓰핑, 창춘, 진저우, 잉커우를 탈환한 경험이 있었고 2백만 강남 주둔군을 잿더미로 만들었던 백전노장들이었다. 김일성은 6.25 전쟁 발발 직전 마오쩌둥에게 이들 조선족 사단이 고향을 지키도록 귀국하기를 요청했고 마오쩌둥은 이를 수락했다.다시 말해 실전으로 잔뼈가 굵은 병사들이니만큼 그 정도의 행군 역시 가능했던 것이다. 출처
실제로 낙동강 전투 때 방호산(方虎山)은 발로만 하는 기동력으로 마산을 기습하여 유엔군의 측면을 노렸고 인천 상륙 작전 이후 순전히 행군만으로 자력으로 편제를 유지하여 산줄기를 타고 북으로 귀환, 와해되거나 지리산에서 빨치산이 된 다른 부대와 달리 북에서 재편성되어 전력을 보존하여 이중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호산은 연안파였던 탓에 전쟁 후에 김일성에게 걸려서 종파주의자로 숙청된다. 북한에서 방호산의 전과는 모두 '위대하신 수령의 백전백승의 전공'이 되어 있으며, 방호산이라는 이름은 북의 문건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다. 남한에서는 인민군의 전공은 국군의 흑역사기도 하기에 방호산의 이름은 한국 전쟁 밀덕후에게나 알려져 있다. 다만 중국에서는 이렇게 남북한에서 외면받는 방호산을 높이평가하고 있으며 그의 국공내전 시 활약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중국웹을 찾아도 방호산에 대한 자료는 꽤 나온다.
1951년 여름에 북한 육군 경보병들의 후방교란은 미국을 경악시킬 정도였는데 일명 걸어다니는 공수부대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였다. 인민군 경보병 사단은 그 밀집된 동부전선을 뚫고 동해안을 타고 안동까지 내려오기도 했다.[4] 미군도 1차대전 등에서 보병의 험지주파력을 겪어놓고도 잊었다며 반성하는 보고서가 있다.
게다가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은 2차대전 당시 평지가 많던 유럽에서 차량이동을 많이하였고 병사들을 태우고도 남을 정도의 덤프트럭이 있던지라 차량에만 의존해 행군하는 걸 싫어한 점을 이용해 중국군은 차량이 못 다니는 길 + 배낭이 아닌 보따리에 소량의 식량과 탄약을 메고 다녔기에 가벼워 몸이 가벼웠던 만큼 빠른속도로 보병을 우회시켜 미군을 제압한 적이 있다. 이는 중국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내리 지적하던 미군의 약점이었고, 아프간에서도 차나 여타 이동수단이 불가해서 행군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육군 제101공수사단을 따라다니며 취재한 다큐멘터리 영화 <The Hornet's Nest>를 보면 작중 내의 주인공 격인 101공수부대원들이 작전을 위해 군장에 방탄복까지 입고 산악행군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이 경우는 전투행군이 아닌 행정행군에 가깝다. 더 단순히 말한다면 전투할 걱정이 없는 단순 이동이다. 6.25 전쟁 이후 6.25 전쟁을 교훈삼아 전술행군을 경시하며 설렁설렁 했던 것을 뜯어고쳤고 미 육군 훈련소에서도 전술행군을 중요시 여기는 것[5]은 물론 각 미군 부대들도 야간에 영지를 도는 것으로 전술행군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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