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다 특혜로 애들 조민이 처럼 조국새끼가 하듯
의대 보냄.
운동권계=본질은 이기붕. 양아치.
남이사, 지들 마눌된 년들이 돌림빵하며 물고 빨고 정액받이 되든 말든, 그건 자유라 이거다. 그런데 정의로운 척은 하지 말고. 수많은 볼셰비키들을 숙청 처형한 스탈린은 반페미니스트적이며, 반성해방적이며, 부녀보호적이며 보수적이었던것을 기억하라.
부하린이 혁명동지이자 친우였던 스탈린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코바, 왜 나의 죽음을 필요로 하지?"(«Коба, зачем тебе нужна моя смерть?»)[출처]였다. 코바는 스탈린의 애칭 중 하나이다. 스탈린이 죽고서 그의 집무실에서 발견된 3개의 편지 중에 하나라고 한다. 나머지 편지는 레닌의 아내인 나데즈다 크룹스카야과 스탈린이 전화로 심한 다툼을 벌이자 레닌이 스탈린에게 격렬히 화를 낸 내용의 편지와, 티토가 '스탈린 당신이 나 죽이려고 암살자 보내는거 족족 잡아뒀소. 자꾸 그러면 나도 암살자를 보내도록 할 건데, 난 딱 한 명만 보내면 끝날 거요.'라고 저항한 내용의 편지였다.
이에 대해 스탈린과 부하린이 개인적으로 계파 투쟁 이전까지는 친한 친구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부하린의 편지 내용 역시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는 트로츠키와 손을 잡지 않은 것"이라는 지노비예프의 유언이나 "날조하는 스탈린 학파" 등의 저서에서 스탈린을 매독 환자, 강도 등으로 묘사하며 조롱한 트로츠키와는 달리 자신을 왜 굳이 죽이려고 하는지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에 가깝다는 점[11], 스탈린이 저 유언장과 별개로 부하린이 옥중에서 집필한 회고록 "How It All Began"의 원고 또한 잘 보관해 놓고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스탈린에게 부하린에 대한 어떤 감정이 남았기에 이 편지를 간직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존재한다.[12]
[12] 실제로 부하린은 재판이 끝나고도 완전히 숙청당하기까지 1년 정도 시간이 걸렸으며 그의 유언이나 회고록이 다른 사람도 아닌 스탈린 본인에 의해 잘 보관되어서 후세까지 전해지는 등, 스탈린이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기까지 상당한 심적 갈등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할 만한 정황증거가 충분히 남아 있다. 당장 레닌의 유언장에 같이 언급된 나머지 인물들과 비교해 봐도 재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처형당한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국외로 추방하고 나서도 기어이 직접 암살자를 보내서 담가버린 트로츠키를 보아, 원한과 위협은 절대 잊지 않는 스탈린이 호시탐탐 킬각을 재고 있다가 기회가 나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보내버린(...) 셋과 달리, 체포하여 언제든지 처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동안 시간을 끈 것은 그간 스탈린의 행보와 비교하면 확실히 이질적이다.
남이사, 지들 마눌된 년들이 돌림빵하며 물고 빨고 정액받이 되든 말든, 그건 자유라 이거다. 그런데 정의로운 척은 하지 말고. 수많은 볼셰비키들을 숙청 처형한 스탈린은 반페미니스트적이며, 반성해방적이며, 부녀보호적이며 보수적이었던것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