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중북부의 사막. 면적 77,600km2의 이란 최대의 사막으로, 이란 고원 한복판의 저지대에 형성된 소금 사막이다. 동남쪽의 루트 사막과 달리 주로 모래 사막이고, 셈난 주와 이스파한 주에 걸쳐 있다. 사막 변두리의 도시들은 쿰, 사베흐, 카샨, 나인, 메이보드, 바라민, 셈난, 샤루드, 담간, 사브제바르, 타바스 등이 있다. 입지상 서부 이란 (지발)과 호라산 지방을 분리하는 자연 장벽의 역할이고, 기원전 1000년까지는 광활한 호수였다. 카샨 부근 테페 시알크에서는 야즈드 방면의 여왕을 알현하기 위해 배를 타고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란 동부의 사막. 세계 최대의 소금 사막 중 하나로, 과거 해저에 있던 곳이 상승하여 형성된 호수가 말라 육지가 된 경우이다. 지리적으로 케르만, 밤 (이상 케르만 주), 비르잔드 (남호라산 주), 자헤단 (시스탄오 발루치스탄 주) 사이의 저지대에 형성되어 있다. 면적은 51,800km2로, 남한의 절반 크기이다. 이란에서는 카비르 사막에 이어 2번째로 큰 사막이며, 세계에서 33번째로 큰 사막이다. 페르시아어 지명인 다슈테 루트는 '헐벗은 평원'이란 의미이다. 중세 들어 호수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는 인류가 거주하였고, 사막 변두리 쪽에는 고고학 유적지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에서 가장 더운 곳이 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다.
사막 곳곳에 있는 소금 바위(야르당)는 장관을 자아내며, 풍식 작용의 대표 사례로써 2016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지구 상에서 지면 온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고담 베르얀에서는 70.7도가 기록된 바 있다. 다만 이렇게 더운데도 간혹 비가 내리면 사막 한 가운데에 호수가 형성되고, 수개월간 유지되어 감탄을 자아낸다. 바위 사막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막 중심부로 들어가면 흔히 생각하는 모래 사막 형태의 사구도 볼 수 있다. 방문하려면 겨울인 11월 ~ 4월 중이 적절하며, 법적으로 가이드를 동반해야 여행이 가능하다.
이란에서 이런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란에서 똥오줌같은 오물을 이 사막에 분뇨차가 가서 그냥 뿌리고 온다는 것. 워낙 덥다보니, 자연적으로 알아서 분해되고 말라서 해결된다고 한다.
바빌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는 기원전 6세기 유다 왕국이 신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에게 멸망 당하고 1차로 여호야긴 왕이, 2차로 치드키야(시드기야) 왕과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억류되어 약 70년간[2] 포로 생활을 했던 사건을 일컫는다. '유수(幽囚)'는 '유배되어 갇히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적국의 수도로 끌려가 지옥같은 노예 생활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이를 위해 유대교 신앙 강화와 더불어 자신들을 해방시킬 메시아에 대한 희망에 의지하게 된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아케메네스 왕조의 샤한샤 키루스 2세였다.[3] 쿠루쉬 2세가 기적처럼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수도 바빌론에 입성하니 거기에는 바빌론인만이 아닌 유대인이라는 처음 보는 이민족이 있었던 것. 이 유대인들은 바빌론인들의 소유물이었고, 고대 사회에서 전쟁에서 이긴 측은 패배한 측의 모든 것을 가지고 지배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키루스 2세는 유대인들을 전리품으로 취하지 않고 무조건으로 해방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유대교 경전이나 제구들까지 손대지 않고 고스란히 돌려 보냈고 예루살렘 성전까지 재건한다.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멸망 50년 만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키루스 2세가 유대인들에게만 특별히 베푼 것은 아니었고, 모든 바빌로니아의 피정복민에게 똑같은 정책을 시행했다. 유대인들이 겪은 일이 성경에 특별히 남았을 뿐이다.
메시아 신앙[4]이 실제로 성사되자, 피지배 시기부터 강해진 야훼 신앙은 이후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대인=유대교의 공식이 완성되었다.
가장 특징적인 영향은 조로아스터교의 절대적인 유일신 신앙이다. 바빌론 유수 이전까지 야훼(Yahweh)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족신이었고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신을 숭배하는 관습도 인정했다.[6] 이는 당시 다른 종족들의 종교관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교 성구들 속에서 이방인의 신들을 숭배하는 행위가 죄라고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시대였다.
예언자 중 한 사람인 이사야(바빌론 유수 전 이사야와 구분을 위해 제2이사야라고 불린다.)는 "하느님이 '나 이외에 신은 없다' 고 말했다" 라고 기록한 첫 예언자다. 바빌론 유수 이후 열렬한 민족주의자로 무장된 당시 예언자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야훼의 은총이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을 섬기면 야훼께서 은총을 거두어들일 것이라고 주장하며 온갖 형태의 배타성을 드러냈다.[7]
이거 저거 다 치우고, 젖과 꿀이 흐르던 땅, 인류문명의 발상지이자 이원론적 세계관, 유일신 종교의 진짜 발상지, 이란이 왜 개쳐망했냐하면, 기원전 1,000년전 초거대 내륙호수가 말라 카비르 사막, 중세까지 호수 루트 사막. 낮기온 70도. 레알?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석유판 돈이나 이란 이라크 전쟁 전비 당시 200조 달라로, 내륙 사막 녹지화 이란판 리비아 대수로 건설했으면, 지금 저 지경 절대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