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들어줄 의무는 없는거고.
1950년, 총선거를 통해 온건 사회민주주의자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모사데크는 취임 직후 이란의 석유를 국유화하기로 결정했고, 당시 이란의 지하 자원을 쥐락펴락하는 실세였던 앵글로-페르시안 석유 회사를 폐쇄시켰다. 영국은 서아시아에서 자국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한 축이자 재정수입의 큰 원천이었던 회사가 축출된 이 조치에 크게 반발했으며, 반공을 빌미로 미국에 협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트루먼 행정부 당시 미국 정계의 이란과 모사데크 내각에 대한 주된 입장은 '자원 침탈의 피해자와 그에서 탈피하기 위한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영국의 제안은 무시될 수 있었다.
그러던 1952년,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정권이 교체되자 미국의 대이란 정책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공화당 행정부는 이란 왕정의 전복 가능성과 소련의 개입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했고, 영국과 모사데크 축출 계획을 재논의하는 데 이른다. 1953년 7월, 이란을 방문한 CIA 공작원 커밋 루즈벨트 주니어는 샤와 비밀리에 만남을 갖고 미국과 영국의 모사데크 축출 계획에 대해 보고, 샤의 재가를 받아내기에 이른다.[8] 샤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 소라야 왕후의 회고에 따르면 샤는 모사데크의 집권 기간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무척 괴로워했다고 하는데,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정세를 읽는 나름의 시각이 잘 잡혀있던 그가 전형적인 입헌군주국의 국왕이 되는 것에 느꼈을 회의감도 쿠데타의 촉발에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53년 8월 16일, MI6와 CIA의 지원을 등에 업은 파즈롤라 자헤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모사데크 내각은 실각한다.
운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