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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당거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아는가?
식물에 물을 주는 것과 거미가 무슨 관계인지 의문스럽겠지만, 어쨌든 당신은 이 관계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다리길이 포함 약 7cm 길이의 노랑-검정 줄무늬 거미를 눈앞 약 30cm 거리에서 마주하면 누구라도 8살 먹은 초등학생처럼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긴 했다.). 이것이 언젠가 어떤 거미가 창밖에 집을 지어놓았을 때의 감상이다.
한편으로 정말 다행인 것은 이 녀석이 창밖에 집을 지었다는 것이었고,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상황을 동물원 곤충관에 온 것이라 가정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 두려운 생물을 직접 치워야 했으니까. 구경거리가 자유로운 외부에 있고, 관람객이 내부에 갇혀 있는 웃긴 상황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왜 하필 내 눈앞 창가였을까 생각해 보면, 거미가 집을 짓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처마가 있어 비와 햇빛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고, 밤이 되면 켜놓은 형광등 덕에 온갖 날벌레들 중 몇 마리가 빛에 취해 거미줄에 날아들곤 했으니까. 날벌레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졸업논문을 작성하던 터라 불을 꺼놓을 수는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사육사가 되고, 거미는 길들여지는 동물의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혹은 비자발적 스파이더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창밖을 볼 때마다 안전경고표시같은 색배합의 거미 때문에 항상 시야를 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눈에 띄다보니 꽤나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뭘 쳐먹었는지는 몰라도 거미줄의 색이 노란색이었던 것. 그건 내 신경에도 꽤나 질척거려서 찾아볼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 녀석을 결국 무당거미라 부르게 되었다.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니 이름의 유래는 노랑-검정-빨간반점의 색배합 때문에 무당 같다고 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아마 나였으면 경고표시판거미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무당거미는 사실 한국에서 꽤 흔한 종이지만, 노란 거미줄은 거미들 사이에서도 꽤 희귀하다고 했다. 거미줄의 성능은 문제가 없었는지, 내가 밥을 줄 때마다 벌레들을 잘 돌돌말아대고는 했다.
가끔은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외부 유리창을 살짝 덮어두고는 했다.
어느 날은 거미줄 주변에 작고 갈색인 거미가 있었는데, 그 녀석은 수컷 무당거미였다. 무당거미는 암컷이 수컷보다 굉장히 커서 4-5배까지 차이 날 수 있다고 한다. 그 놈팽이는 몇 날 며칠을 주변을 서성였고, 암컷이 그 끈기에 결국 허락했는지 교접하는 것까지 봐버렸다. 약간 심란하긴 했지만 어쨋든 수컷도 잘 도망가고, 암컷도 평소보다 많이 벌레를 먹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 어딘가 알도 잘 낳았겠지 싶었다.
지겨웠던 논문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 자연은 자연스럽게도 무당거미를 누런색으로 동결 박제해버렸다. 근래에는 기후변화 때문에 날씨가 오락가락 하지만 어쨋든 겨울은 왔다. 박제 관람은 시간제한이 있어 금방 끝났고, 창밖의 금색 드림캐처도 회색 실밥 마냥 나풀거릴 뿐이었다.
늙고 연구 노예인 나에겐 여우도 장미꽃도 없었지만, 무당거미와 금전수는 있었다. 동화같은 결말대신 현실 관계의 끝맺음은 항상 이런 법이다. 아마 어른이 되지 못한 왕자를 버릴 수가 없는 것은 어쩌면 내 천형일지도 모른다.
이번 달에도 하릴없이 식물에 물을 주고, 별수 없이 눈길이 간다.
나는 여전히 식물에 물 주기가 싫다.
여전히 식물에 물주기 싫으나 여전히 물을 주며 별수없이 눈길을 주는 글쓴이의 천형은 어쩌면 식집사일도.이번에도 잘 읽고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