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병원에서 만나고 아직 네 달밖에 안 됐네?
신기하다.
나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너와 함께 보낸 듯한 느낌이야.
아마도 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면서 나름대로 충실한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지?
일기에도 썼지만, 나는 실은 그보다 한참 전부터 네가 마음에 걸렸어.
왜 그런지, 너는 알까? 네가 자주 말했던 그거야.
정답은, 실은 나도 생각했었거든, 너와 나는 분명 정반대 쪽에 선 사람이라는 거.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래서 왠지 마음에는 걸렸는데 도무지 친해질 기회가 없었어.
그러던 참에 우연히 맞부딪혔잖아.
이제는 뭐, 친해질 수밖에 없겠다, 라고 생각했지.
결과적으로 우리 둘, 이만큼 친해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요즘에는 지나치게 친해진 거 아니냐는 목소리도 드문드문 들려오더라(웃음).
뭐랄까, 연인 놀이라고나 할까.
내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봤지만, 그거 진짜 가슴이 두근두근했어.
아직 껴안은 것뿐이라서 괜찮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장난으로 키스쯤은 해버리는 거 아닌가 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얘기야(웃음)
뭐, 난 그것도 나쁘지 않아.
폭탄 발언인가?
하지만 정말 그래도 괜찮아.
연인 사이만 되지 않는다면 그래도 좋아.
잠깐 고민하긴 했는데 이제 뭐, 아무려면 어때?
네가 이거 읽고 있을 때, 나는 이미 죽어버렸을 거고(웃음), 좀 더 솔직해질래.
진짜 솔직히 말해서 나는 몇 번이나, 정말 몇 번이나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이를테면 그거, 네가 첫사랑 얘기를 해줬을 때, 나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어.
호텔 바에서 술을 마셨을 때도 그렇고, 처음으로 내가 먼저 껴안았을 때도 그렇고.
하지만 나는 너와 연인이 될 마음은 없었고, 앞으로도 연인이 될 생각은 없어.
....라고 생각해, 아마도(웃음)
어쩌면, 연인이 되었다면 꽤 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걸 확인할 시간이 없잖아?
게다가 우리 사이를 그런 흔해빠진 이름으로 부르는 건 싫어.
사랑이라느니 우정이라느니, 그런 건 아니지, 우리는.
만일 네가 나를 사랑했다면 어떻게 했을지, 그건 좀 마음에 걸린다.
너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아, 그 얘기와 관계가 있으니까 내친 김에 병원에서 내가 진실이냐 도전이냐를 하자고 했을 때, 뭘 물어보려고 했었는지 알려줄게.
나는 답을 듣지 못하니까 규칙 위반은 아니지?
내가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왜 너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라는 거야.
나, 기억하고 있어. 신칸센에서 내가 잠들어을 때, 고무밴드를 타악 튕겨서 나를 깨웠지?
이름을 불러서 깨우면 될 텐데 넌 그러지 않았어.
그때부터 줄곧 신경써서 지켜봤어.
그랬더니 너는 정말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
항상 너, 너, 너, 라고만 했지.
그때 그걸 너한테 물어봐도 될지 어떨지 망설였던 것은 혹시 네가 나를 싫어해서 이름을 부르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나는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돼.
게다가 그걸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어.
나, 자신감 같은 건 전혀 없으니까.
나는 너와는 달리 주위 사람들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 때문에 진실이냐 도전이냐에 기대지 않으면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었는데, 요즘 들어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여기서부터는 그냥 내 마음대로 해본 상상이야. 틀렸더라도 용서해줘.
너는 나를 네 안의 누군가로 만드는 게 두려웠던 거 아닐까?
네가 말했었지?
너는 이름을 불렸을 때 주위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상상하는 게 취미라고.
상상을 하고, 그게 옳건 옳지 않건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고.
이건 나한테 유리한 내 멋대로의 해석이지만, 너는 나를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 아닐까?
그래서 네가 해왔던 것처럼 내가 혼자 상상할 것이 두려웠다든가.
네가 부르는 내 이름에 의미가 붙는 게 두려웠다든가.
머지않아 잃게 되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나를 '친구'나 '연인'으로 만드는 게 두려웠다든가.
어때, 내 생각이?
정확히 맞혔다면 내 무덤 앞에 매실주라도 한 잔 따라주도록 해!(웃음)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람과 사람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지금까지의 너와 나처럼.
아차, 네가 두려워한다고 자꾸 말했지만, 그래서 너를 겁쟁이라고 비난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런 건 아니야.
나는 너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대단한 사람.
좋아, 내친 김에 네가 지난번에 했던 질문에도 대답해줄게.
어때, 서비스가 좋지?
나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
엇, 별로 알고 싶지 않다고?(웃음)
그렇다면 읽지 말고 그냥 건너뛰어도 돼.
나는 말이지...., 너를 동경했어.
얼마 전부터 계속 느낀 바가 있었거든.
내가 너 같았으면 좀 더 어느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슬픔을 너나 우리 가족에게 내보이는 일도 없이,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만, 오로지 나 자신만의 매력을 갖고, 나 자신의 책임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의 내 인생은 최고로 행복해.
하지만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단지 자신 혼자만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너를 나는 동경했어.
내 인생은 항상 주위에 있는 누군가가 없어서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라고.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나를 비교해가면서 비로소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어.
그게 '내게 있어서의 산다는 것'이야.
하지만 너는, 너만은, 항상 너 자신이였어.
너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너 자신을 응시하면서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었어.
나도 나 자신만의 매력을 갖고 싶어.
그래서 그날 네가 돌아간 뒤에 나 혼자 울었던 거야.
네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준 날, 나에게 더 오래 살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해준 날.
친구라느니 연인이라느니, 그런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네가 나를 선택해준 거잖아.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를 선택해준 거잖아.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으로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이 단 한 사람뿐인 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어.
고마워.
17년, 나는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를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벚꽃이, 사쿠라가,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 스스로 선택해서 너를 만난 거야.
죽기 전에 너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고 싶어.
.....라고 써놓고 나서 문득 깨달았어.
이런 흔해빠진 말로는 안 되겠지?
나와 너의 관계는 이런 흔해 빠진 말로 표현하기에는 아까운 관계니까.
그래, 너는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역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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