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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분 끗









첫인상은 대체로 차갑게 느껴지긴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곱게 생긴 외모와 달리 투박하고 거친 손가락은 특히나 손마디가 툭툭 불거져있어서, 보기에도 멋있긴 하나 조금 다른 의미로도 좋았어. 두꺼운 마디가 꽉 다문 구멍을 비집고 들어가 빠져나올 때 마다 후거의 아래턱이 바들바들 떨렸지. 고작 한 달 좀 못한 건데 이렇게 까지 좋은 건 이상하잖아. 세운 무릎이 자꾸 바깥쪽으로 벌어지고 헐벗은 허벅지가 허옇게 드러나. 녹아내린 젤이 투명하게 그 위로 떨어지고 손가락 두 개를 문 엉덩이가 쉴 새 없이 들썩였어. 민망하다거나 창피하다는 생각도 모조리 녹아내려 사라지고 없었지. 진짜 미치겠어. 평소엔 안 그러더니 오늘따라 건화의 손은 느릿느릿 거북이 마냥 느린 속도로 뜨겁게 달아오른 안으로 밀려들어오는데, 너무 느려서 들어오는지 마는지도 안 느껴져.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흐느끼던 후거가 도톰한 아랫입술을 혀로 축이곤 그를 재촉했어.


“빨리...”


목이 멘 터라 어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건화는 고개는 끄덕이지만 영 시선은 다른 곳에 있고 거의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뿐이었어. 제 딴엔 본인은 흥분하지 않으려 하는 건데 귀를 막을 순 없으니 청각으로 오는 자극에 이미 한참 전에 벌떡 선 건화의 또 다른 주니어 때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아. 끝 까지 하면 안 돼. 안 되는데.


“흐으윽... 아, 아으.. 그냥 손가락 말고..”

“안 돼.”


온 몸이 찌릿찌릿하고 등허리에 간지러운 감각이 치고 올라가지만 아무래도 부족한 기분이 들어 더 넣어달라고 칭얼대. 건화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곤 미세하게 떨림이 느껴지는 허벅지를 매만지며 손가락 두 개가 삽입 된 구멍에 약지를 밀어 넣었어. 그것도 고민 끝에 결정한 건데 그래도 부족한지 후거는 손가락 말고 다른 걸 넣어 달라 애원했지.


“흐읏, 아, 아으응, 흐, 앗, 아, 넣, 어줘..”

“안 돼.. 다음 주에 물어보고.”

“몰라, 몰라 흐으, 아 넣어줘, 넣어줘, 흑 손, 가락으로 부족하단 말...” 

“며칠만 참자. 응?”


다정한 목소리를 내면서 자세를 고쳐 앉아 허리를 숙여 가쁘게 일렁이는 목울대 위에 입술을 내렸어. 후거는 그에 만족을 못했지. “싫, 어 손가락 말고.. 아흐, 아흐으.” 톡 튀어나온 목젖 위를 핥는 혀가 간지러워 뒤틀면서도 아래에 힘을 바짝 주며 아래를 발씬거렸어. 손가락을 꽉꽉 죄이는 감각에 입술을 다문 건화는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던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위로 미끄러져 올라가. 아직 판판한 배를 지나 낮은 둔덕에 손끝이 걸려. 다문 입술 끝이 움찔 떨리고 잠시 망설이다 손가락을 더 밀어 올렸지. 바짝 선 유두가 손가락 사이에 걸리고 곧 체온이 오른 건화의 손바닥이 완전히 후거의 가슴을 감싸더니 몽글몽글 커지기 시작한 살 둔덕을 살살 움켜쥐어. 그에 헐떡이던 후거에게 우는 소리가 튀어나왔지.


“아파, 만,지지 마아, 흐윽..”


사실 임신하고 나서 배는 아직 안 나왔는데 가슴은 자꾸 커지는 것 같아. 원래도 남자치곤 좀 커서 스트레스였는데 요즘 티셔츠 입은 자신을 거울로 볼 때 마다 계속 가슴라인이 신경 쓰이는 거야. 임산부들 임신하면 제일 좌절감 드는 게 몸매 망가지는 거라던데. 벌써부터 자기도 곧 그렇게 될 거 생각하니까 앞날이 막막해. 그런 와중에 건화가 가슴에 손을 대니 쾌감에 노곤 노곤해진 몸이라도 바로 반응이 왔지. 진짜 아프단 말이야.


“아프, 아프다니까..! 으, 아파..!”

“많이 아파?”


세게 쥐지도 않고 살짝 만진 것뿐인데도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내니 건화도 결국 오래 만지진 못했어. 금방 손을 떼고 미안하다고 속삭이며 귓불을 핥아 올리면서도 만지던 것을 잃은 손에는 계속 감각이 남아있어. 여운처럼 길게. 

허공에 손만 든 채로 느린 속도로 손을 쥐었다 편 그는 손바닥에 가시지 않는 감촉에 눈을 질끈 감으며 허탈하게 숨을 뱉으며 후회했지. 이럴 줄 알았어. 이래서 애초에 처음부터 성적인 접촉을 줄인 건데. 

허무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후거의 아래에서 손가락을 빼지 않은 채 귓불만 잘근잘근 씹어대는데, 후거는 엄살이 아니라 정말 아프긴 아픈지 만지던 손이 떨어져도 가슴께를 부여잡고 끙끙대다 가슴통증보다 아래의 감각이 우선순위가 되자 아픔이 좀 가신듯 건화의 뺨에 입술을 비비며 이불위로 몸을 바르작거렸어. 느슨하게 풀렸던 구멍이 손가락이 빠듯할 정도로 조여댔지. 매끄럽게 수염이 깎인 턱가에 닿던 후거의 입술이 곧 침에 번들거리는 건화의 입술에 닿아 문질러졌고, 마음 같아선 삽입은 아니라도 후거 다리사이에 비비기라도 하고 싶은데... 자기가 정말 참을 수 있을 확신도, 자신도 없어서 불룩한 앞섶을 애써 무시하고 머릿속으론 월요일 아침부터 병원에 가봐야겠다 생각했지. 해도 되냐고 물어봐야겠어.



***



“그래서 하얀 곰은 까만 곰이랑 결혼했어요. 근데 까만 곰이 핑크색 곰이랑 바람나서 이거 보라색 리본 한 까만 곰을 낳은 거예요. 얘가 학교에 들어가서 땡땡이무늬 곰이랑 친구가 되는데 땡땡이 무늬 곰은 하얀 곰이랑 까만 곰 사이에서 태어난 곰이고요. 이해해요?”


저녁을 직접 차리겠다는 명대를 붙잡아 말리고, 다행히 집에 밥과 반찬들이 그대로 있어서 그걸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명대가 주방을 점거하지 못하게 했어. 물론 청명이 명대의 요리에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저나 명대나 도긴개긴일 걸 아니 억지로 먹고 실려 갈 일은 최대한 배제하고 싶어.


요리하지 말라는 말에 조금 삐졌던 명대는 늘 그렇듯 혼자서 금방 극복하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떠들어댔어. 휴대폰을 꺼내 청명이 사줬던 인형들 사진을 보여주기에 또 뭐로 괴롭히려고 이러나 긴장했는데 그를 놀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인형에 관한 이야기였지. 다소 막장에 가까운 이야기.


“..모르겠는데.”

“아! 교수님은 교수님인데 왜 이걸 이해를 못해요! 쉽게 해줄게요. 하얀 애랑 까만 애 얘랑 부부인데 까만 애가 핑크색이랑 바람나서 낳은 애가 보라색리본인데 얘 친구가 땡땡이 곰돌이에요. 근데 땡땡이는 하얀까망부부의 애라고요. 이제 알겠죠?”

“대충...”


줄줄 설명해줘도 눈썹만 꿈틀대더니 모르겠다는 말에 답답해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제 나름대로 최대한 줄이고 줄여서 설명했어. 두 번 들으니까 좀 이해가 가는 것 같아 알겠다곤 했으나 청명은 영 아직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어. 왜 내가 사준 곰 인형들이 저런 내용의 주인공이 되어있는 건데.


“땡땡이랑 보라색 리본은 그것도 모르고 둘이 좋아하게 되는 거예요.”

“둘이 형제지간이잖아.”

“그게 중요한 거죠. 그리고 땡땡이랑 보라색이랑 막 이렇고 저런 것도 해요.”


휴대폰에 띄운 사진을 확대해 보여줘. 세로로 길쭉한 화면 위에 보라색 리본을 한 까만 곰돌이와 그 옆에 딱 붙어 앉은 흰 바탕에 까만 무늬가 있는 곰 인형이 있었지. 그냥 인형이고 명대가 꾸며낸 소설이란 걸 알면서도 왜인지 둘을 떨어뜨려 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청명의 눈가가 찌푸려졌어. 이렇고 저런 것을 했다는 부분에선 찌푸려진 눈가가 바로 펴지더니 코끝을 찡그렸지.


“학생이라며. 몇 살인데.”

“곰이니까 생후 오개월이요.”

“....”


생후 오개월은 너무 아기인가? 잠깐만 기다려봐요. 곰 성년이 언제인지 찾아보고.. 정말 진지하게 사실을 담아 말해줄 작정인지 인터넷을 켜서 검색하는 걸 보며 고청명은 자기가 명대의 저 이야기에 진중하게 대답을 해줘야 하는 건가 고민이 됐어. 곰 인형들로 드라마 쓰는 거에 진지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명대는 정말 좀 알 것 같다가도 바로 모르는 면을 보여줘서 어려워.


“못 찾겠어요. 왜 안 나오지? 그냥 생후 7개월 할래요.”


청명도 곰이 몇 살부터 성체인지는 모르겠는데 대충 명대가 설정하고 싶어 하는 나잇대를 알 것 같아 그냥 입을 다물었어.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엄두도 안 나. 


“근데 반전은요. 사실 보라색이랑 땡땡이가 형제가 아니에요.”

“그럼?”

“까만 애가 사실 생식불가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까만 애 새끼라고 생각했던 보라색이랑 땡땡이랑 다 딴 곰 자식인거예요. 엄청 반전이죠?”

“이거 다 언제 생각했던 거야. 지금?”

“아니요. 열두 살? 그 쯤 인데.”

“그게 제일 반전이다.”


멀뚱하게 대답하는 모습에 바로 기함했어. 열두 살에 저런 생각을 하다니. 애초에 처음부터 본인이 어린이 명대가 곱고 착하게 바르게 자라길 바랐던 게 너무 큰 바람이 아니었을까... 새삼 과거에 했던 일이 부질없다는 걸 깨닫고 애써 미소를 지었어. 그래.. 네가 재밌으니까 그랬겠지..


“왜 까만 곰은 생식 능력이 없어.”

“이 곰은 작은형이 사준 건데 들고 놀러 다니다가 길가에 개가 뜯어먹어서 누나가 고쳐준 거예요. 근데 가까이서 보면 티 나요.”


까만색 곰 인형만 화면 가득 채워 다리 사이를 보여줘. 어차피 원래부터 그곳엔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고 통통한 배만 있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괜스레 기분이 이상해져서 슥 눈동자만 옆으로 돌리고 고개를 끄덕였어. 그렇구나.


“근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곰은 얘예요. 회색. 귀엽죠.”


다른 인형은 웬만하면 옆방에 넣어두고 가끔 생각날 때 한 번씩 들여다보거나 가끔 한 두 번 방에 들고 오는 게 다인데, 유일하게 회색 곰 인형만 명대의 침실에 자리 잡았어. 그것도 책상이나 선반 위가 아니라 베개 맡에. 크기도 제법 큰 편이라 거추장스러울 법도 한데 그 인형은 처음 택배로 받을 때부터 명대의 옆자리를 지켰어. 특별히 퀄리티가 뛰어나거나 화려한 장식이 달려있지 않은데도, 제일 마음이 향해. 


“왜. 옆에 인형이 더 귀여운데.”


옆에 레이스가 잔뜩 달린 핑크색 모자를 쓰고 있는 인형을 손으로 가리키며 묻자 명대가 자기는 공주님이 아니니까 이런 인형은 그냥 장식용이래. 글쎄. 명가네 형들이 끔찍하게 아끼는 걸 보면 굳이 공주님이 아니라고 할 수만은 없어 보이지만 굳이 티내지 않고 잠자코 명대가 이어 하는 말을 들었지. 들으면 들을수록 청명의 귀 끝이 시뻘겋게 타오르고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아 티셔츠를 잡아 펄럭거렸어. 


“이거 교수님이 재작년에 보내준 거잖아요. 그 때부터 교수님이 이름 안 바꾸고 그냥 보냈는데. 그리고 색깔이 마음에 들어요. …교수님 군복색깔이랑 똑같아서.”


군복 입은 건 딱 한번 봤지만. 


군복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조심스러워 조금 고민하다가 으음, 하고 덧붙여 말하면서도 눈을 굴려 청명의 눈치를 살폈어. 불편한 기색을 보일까 걱정했는데 그와 달리 고교수는 군인 생각이 떠올라 침울해하긴 커녕 부끄러워 죽는 것 같았지. 군복 이야기에 마음 아파하거나 괴로워하는 기색이 없자 안심한 명대는 엉덩이를 옆으로 밀어 바짝 달라붙었어.


“말해 주면 안 돼요? 왜 갑자기 이름 원래대로 보냈어요? 그냥 말고. 오늘 듣고 내일 잊을 테니까 말해 주면 안 돼요?”

“안 돼. 내가 기억이 안 나.”

“교수님 기억 엄청 좋다면서요. 세달 전에 누가 몇 번 문제 틀렸는지도 기억한다면서.”


전혀 신빙성 없는 변명에 명대의 얼굴이 찡그려졌어. 고청명 교수가 학교에서 유명한 게 얼굴 때문만은 아닐 텐데. 답 없이 깐깐하고 빡빡한 성격 때문에 유명한 건 데 헐렁하게 기억을 못 할 리가. 검지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대답해달라고 부추겨도 찔릴 때마다 눈 끝을 일그러뜨릴망정 절대로 입은 안 열어. 독하네.


“말해줘요오. 네? 네?”

“안 돼. 기억 안 난다니까.”

“진짜 치사하다. 교수님은 저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데 왜 저한텐 안 알려줘요. 제가 열두 살 때 만든 소설도 들려줬으니까 이제 교수님 차례예요. 사람이 어떻게 받아먹기만 해요?”

“그건 예시가 잘못됐잖아. 내가 말해달라고 한 게 아니라 네가 먼저 말 한 거니까.”

“그게 그거지.”

“어떻게 그게 그거야.”


어쩌다 대화가 또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르겠어. 명대의 요리를 막아내고 식사 후에 TV 채널 돌리다가 고청명 기준으로 다시 곰 인형을 사고 싶지도 않아지는 곰 인형이 나오는 영화를 보다 대뜸 명대가 휴대폰을 꺼내서 자기 인형들을 보여줬고.. 그러다 지금이 된 건데... 영 낯 뜨거운 주제라 머릿속은 당황해서 정상적인 사고가 이뤄지지 않고 더워서 계속 티셔츠를 팔락거리고 있자 회피하는 그에 뚱해져 있던 명대가 흘끗 고개를 옆으로 돌려 청명을 보며 물었어.


“아까부터 왜 자꾸 노출을 해요.”

“뭐?”

“다 하고 씻고 난지 얼마나 지났다고. 교수님도 은근히 엄청 밝혀.”

“......”


너무 기가 막히고 할 말이 없어서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머리도 안 돌아가고. 그냥 말없이 고개만 내젓고 대답을 않았어. 명대도 계속 놀리거나 장난칠 생각은 안 드는지 밝히는 고청명에 대한 주제를 이어가진 않았는데, 대신 다른 쪽으로 생각이 옮겨졌어. 핏줄이 곤두선 손등과 팔뚝을 보다가 아까 쿡쿡 찔렀던 옆구리를 보는데 그 때야 청명이 아직 허리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에 간다는 게 떠올랐지. 아까 옆구리 찔렀을 때 아파하진 않았는데... 미처 허리 아프단 생각을 못했었어. 


시선은 tv화면에 고정시켜두고 걱정은 내내 청명의 허리에 닿았지. 하고 싶은 말이 계속 입 안을 맴도는데 지난 2년간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인데 그 2년 동안 내내 숨겨온 이유가 있으니 꺼내는 게 쉽지 않아. 리모컨 위만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초조하게 굴던 명대는 청명의 눈이 자신에게 닿는 게 느껴지자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들어 올렸어. 떠들다가도 얌전히 있는 명대가 의아해 눈을 둔 건데, 꼭 눈치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 보고 미간을 좁히며 말했지.


“왜?”

“...교수님.”

“어.”


무슨 사고라도 쳤나. 리모컨을 고장 낸 건가 청명은 반들반들한 윤기가 남은 명대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어. 음인은 원래 다 저런 걸까. 하지만 본인이 아는 남자 음인들은 안 그랬는데.

명대 가방에 립밤이 다섯 개나 되고 거울 보는 횟수만큼 립밤을 바른다는 걸 모르는 고교수는 헛다리를 짚은 채로 계속해서 명대의 입술을 쳐다보고 있었어. 명대의 말이 나름대로 맞긴 한 편이었지. 은근히 밝히는 고교수님. 

문란한 고교수는 이윽고 도톰한 입술이 떨어지며 흘린 말에야 시선을 떼고 입술에 관한 모든 잡념을 흐트러뜨릴 수 있었어.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직도 허리 많이 아픈 거예요?”

“....”


물으면서도 자신이 없는지 명대는 청명을 향해 앉긴 했지만 시선은 그의 어깨쯤에 닿아있었어. 아직도 아프다고 하면 너무 괴로울 것 같고, 이젠 아프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더, 더 괴롭고 힘들 것 같아. 거짓말일게 분명하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당황한 그는 제때 대답하지 못하고 시선이 다른 곳에 가있는 명대를 보곤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말았지. 


“안 아파.”

“못 믿어요.”

“사실이야. 아직도 아프면 교수일도 못하겠지. 하루 종일 앉아있으면 좀 아프긴 해도 일상생활엔 지장 없어.”

“....”

“비오는 날은 좀 쑤시긴 하지.”

“..아저씨같이 그게 뭐예요?”


대답해달라고 해서 대답해줬는데 아저씨 같다니. 아직 서른두 살밖에 안 됐는데 좀 억울하긴 하나 명대 나이에서 보면 아저씨가 맞아서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입만 다물었어.


“매달 병원에 가잖아요..”

“그냥 괜찮은지 보러 가는 거야.”


푸우우-.

소파 위에 발꿈치를 올려 무릎을 끌어안고 입꼬리를 당겨 앙다문 채로 눈동자를 이쪽저쪽으로 흘겼어. 정말 괜찮은가. 정말? 정말?


“남자는.. 특히 양인은 허리가 중요해요. 알아요?”

“알아.”

“모르잖아요. 방금 내가 한 말 의미 모르면서.”

“뭘 몰라? 내가 모르긴 뭘...”


근 10년을 거의 공부만 하고 살아온 그가 모른다는 말에 은근히 발끈하며 대꾸 하다가, 말을 하는 도중에서야 명대가 말한 그 ‘의미’를 깨닫곤 정색했지. 너 설마 허리 아프냐고 물은 의도가 그거 때문이야?


“글쎄요.”

“.....그거 묻는 의도는 뭔데?”

“왜 그렇게 화를 내요?”


명대는 그냥 우중충한 분위기 계속 되는 게 싫어서 농담한 건데 청명이 과하게 반응하니까 이상해. 뭐야. 왜 화를 내? 지금 화내는 부분 아니잖아.

하지만 고교수도 스스로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 왜 화가 나지? 네가 왜 나한테 허리가 아프냐는 둥, 양인은 허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왜?


“......”

“.....”

“.....흐으음.. 교수님 설마 자신 없어요?”

“그럴 리가.”


발음 하나하나가 딱딱하고 굳었는데. 어절하나씩 띄워 대답한 청명은 자신을 어떤 각도로 보고 누가 보더라도 이상하고 의심스러워 보일 거란 생각이 들자 다시 가라앉았던 열이 오르는 것 같아. 11월에 에어컨이라도 틀어야할 기세야.


“걱정 말아요. 교수님 허리 아픈 거 저 완전 깜빡 잊고 살았어요.”

“....”

“왜 고맙다고 말 안 해줘요?”

“고맙다..”


엎드려 절 받기 같은 기분이지만.



***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명대가 자고 간다고 우겨서 방법이 없었어. 


“...마음대로 해.” 


너무 고집을 부리니 어쩔 수 없이 허락하겠다는 뉘앙스를 보였으나 명대가 자고 간다고 한 순간 바로 침실로 직행한 청명은 어디서 자야하나 침대에서 같이 자야하나 바닥에 이불을 깔아야하나 거실 소파에서 자나 갈등했어. 마음은 아주 조오금, 아아주 조금 같이 자는 걸로 기울었지만 그래도 따로 자야할 것 같은데.. 


“교수님 뭐 해요?”


누나에게 전화하고 오겠다던 명대는 그 사이에 씻기 까지 했는지 촉촉해진 뺨을 하고 나타났어. 그리곤 쉴 새 없이 이불을 접었다 폈다 반복하며 어수선하게 굴고 있는 걸 보며 입술을 벌리며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어. 뭐해요?


“어? 어?”

“이불을 왜 두 개나 꺼내요. 아직 그렇게 안 추운데.”


왜 혼자서 쓸 데 없는 일을 하고 있느냐며 타박하곤 방 한쪽 구석에 있던 쇼핑백을 가져와 책상에 올려놓고 쇼핑백 안에서 화장품들을 꺼내. 자연스럽게 청명의 방에서 물건을 꺼내는 걸 보고 고청명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지.


“그건 뭐야?”

“전에 교수님 방에 일부러 두고 갔는데. 속옷이랑 화장품이요.”

“그게 거기 있었던가..”


워낙 관심이 없다보니 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어. 집에서는 가끔 밥 먹고, 그냥 잠만 자고 나가는 곳이라... 명대가 이 집에 온지도 일주일이 넘었으니 최소 일주일간은 저 자리에 있었다는 건데 정말 감쪽같이 몰랐지. 도둑이 들어서 물건을 훔쳐가도 냉장고나 침대를 훔쳐가지 않는 이상 뭐가 사라진지도 모를 거야. 새삼 무신경함에 자책하는 와중에 명대는 쇼핑백 속에 잠들어있던 화장품들을 착착 꺼내 순서대로 바르고 있었어. 스킨 에센스 크림 나이트크림...


“근데 교수님 뭐 하는 거예요?”


나이트크림 바르기엔 좀 그러니까 수분크림까지만 발라야지. 손등에 크림을 덜어내면서 침대 앞에 선 청명에게 물었어. 왜 이불을 두 개나 꺼내서 들고 있냐니까요?


“그.. 나는 밖에서 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니 뭘 또 이제 와서 밖에서 자요? 교수님 고집도 진짜 심해.”

“원래 손님은 손님방에 자야하는데 손님방이 없으니까.”

“교수님은 늘 입이랑 행동이랑 정 반대인 거 알아요? 따로 잔다면서 베개는 왜 두 개나 꺼내서 정리하고 있대.”


그러고 보니 이불을 들고 갈등하고 있긴 하지만, 분명 오후에 저기 위에서 야한거 할 땐 하나 밖에 없던 베개가 지금은 두 개가 됐는데 밖에서 잔다는 사람이 왜 베개를 저렇게 나란히 곱게 두냔 말이야. 덜어낸 크림을 양뺨에 톡톡 펴 바르며 눈을 가늘게 떴지.


“왜 또 이불 하나는 여름이불이에요. 제가 그거 덮고 자다가 감기 걸리게 할 수작이죠?”

“...두꺼운 이불은 하나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자야겠네.”

“아니...”

“하여튼 교수님 응큼하긴. 콘돔도 꺼내두고.”


턱짓으로 침대 옆 작은 서랍 첫 칸이 열려있는 걸 가리키며 말했어. 활짝 열린 서랍 속에는 뜯지도 않은 콘돔 상자가 들어있었는데, 발견한 청명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어. 저걸 꺼내려던 게 아니라.. 전에 사고 넣어뒀던 게 기억이 나서.. 아까 오후에는 잊고 있었던 터라 확인한 건데. 고개를 번쩍 든 그가 해명하려 했지.


“그건 진짜…! 그게 아니라!”

“알아요. 알아요. 나랑 같이 있다 보면 욕망이 주체가 안 되고 좋아서 미칠 것 같고 막 그렇겠지.”

“잠깐만.. 내 말 들어봐.”

“안 들어도 안다니깐. 다 이해해요. 근데 아까 해서 오늘은 더는 못해요. 허리가 안 아픈 교수님한테 많이 시달렸거든요.”


청명은 해명하고 싶은 마음이 이만큼이었지만 누가 뭐라든 본인 편한 대로 생각하는 명대는 듣지도 않고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어. 다- 이해한다는 듯. 자기가 넓은 아량으로 봐주겠다는 듯 말하곤 더 들을 것도 없다며 휴대폰에 관심을 뒀지. 결국, 겨울에 더 가까운 이 시점에 여름 이불을 든 채로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어. 남의 집에서도 본인의 집처럼 편안한 자세로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는 명대의 옆모습을 오랫동안 넋 놓고 보다가 소리 없이 좌절하며 들고 있던 이불이나 다시 이불장에 넣으려 접는데 그마저도 영 서툴렀어. 누나가 왜 청명이 혼자 나가 살겠다고 했을 때 말리는 지는 한 달까지 안 살아봐도 알아.


“근데 교수님.”

“왜?”

“곰 인형 보낼 때 이름 안 바꾼 거요.”

“.....”


또 그 이야기야. 곰 인형 이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그가 벌떡 일어나 이불장을 열었어. 완전히 활짝 열지 않고 두 손 정도만 들어갈 만큼 열자 두꺼운 겨울 이불이 열린 문틈 사이로 슬쩍 보이는 걸 몸으로 가려서 얇은 이불이 구겨지든 말든 순식간에 안에 집어넣고 문을 닫았어. 명대는 그 쇼핑백에 들어있던 건지 가는 빗으로 머리를 넘기며 청명의 등 뒤를 보고 말했어.


“저랑 파티장에서 만나고 나서부터 이름 안 바꾸고 그냥 보낸 거 맞죠?”

“기억이 안 나네.”

“제가 교수님 좋아한다고 따라다닐 때부터 이름 안 바꾼 거 맞잖아요. 그쵸?”

“늦었어. 자자.”

“교수님은 불리하거나 사실이면 꼭 말을 피하더라.”

“.....”


어깨를 움찔거리긴 했으나 날카로운 명대의 찌름에 내색 않고 몸을 돌린 청명은 명대를 마주보며 침대 위에 걸터앉자 명대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여. 왜 당황을 안 하지.


“왜 멀쩡해요? 이 때 쯤 엄청 당황하잖아요. 보통.”

“뭘 그렇게 많이 발라?”


너무 동요가 없어서 설마 그게 아닌가. 완전히 헛짚어서 저렇게 멀쩡한 건가 걱정했는데 말 돌리는 거 보니 불리한 거 맞네. 입술을 말며 웃은 명대는 눈썹을 들썩이며 턱 아래에 꽃받침을 만들며 눈을 빠르게 깜빡였어. 


“예뻐 보이려고요.”


청명이 아무 말 없이 보기만 하자 눈을 깜빡깜빡 하며 고개도 양 옆으로 까닥거리며 물어. 왜 대답 안 해줘요. 이럴 때 해줘야하는 말이 있잖아요.


“어떤 거?”

“너는 안 발라도 예뻐. 이런 거요. 근데 뭐.. 교수님은 그런 캐릭터 아니니까 원래 큰 기대는 안 했어요. 사람이 갑자기 바뀌어도 안 좋대요. 사람이 갑자기 바뀌는 건 죽을 때라는데 교수님 벌써 죽으면 어떡해요. 제 계획은 1년 연애하다가 결혼하는 거니까 한 35년은 더 살아야 해요. 왜 35년이냐면...”

“35년 밖에 더 못 살아?”

“저한테 잘 보이면 40년으로 늘려줄게요.”


야박하게 잘 보여도 5년 밖에 안 늘려줘. 짜도 너무 짠 숫자에 어깨를 으쓱이곤 여전히 오른쪽 왼쪽으로 까딱거리고 있는 명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어. 물기가 덜 마른 머리카락이 차갑게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지. 가는 머리카락이 손에 감길수록 샴푸 향이 짙게 퍼져가고, 새삼 명대에게서 자신이 매일같이 쓰는 샴푸향이 나자 기분이 이상해.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속속들이 생기는 것 같아.


“계속 해줘요.”


쓸 데 없는 생각만 떠오르는 것 같아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거두려는데 명대가 그의 손목을 붙잡으며 더 만져달라고 했지. 아예 눈 까지 지그시 감고 기다리는 모습에 청명 스스로도 모르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지.

말없이 다시 손으로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고 감은 눈의 속눈썹을 바르르 떨며 그의 손길에 얌전히 앉아있는 걸 보니 꼭 고양이가 떠올랐어. 명대가 고양이면 주인이 어지간히 고생하겠는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며 스탠드 불빛에 드러난 귀여운 이마에 눈을 감았다 뜨며 웃고는 허리를 숙였어. 쓰다듬던 손이 멈추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명대가 눈꺼풀을 들어 올렸지. 눈동자를 가리던 눈꺼풀이 거둬지자 코앞에 청명의 얼굴이 있어 놀라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닿았고 명대의 두 눈은 몇 번 깜빡여보지도 못하고 다시 감겨야했어.



그리고 다음날 오전. 명대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난 뒤, 명경이 굳이 아침을 꼭 먹고 가라고, 싫으면 차라도 들고 가라는 걸 힘들게 겨우 거절하고 차에 올라탔을 때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어. 청명이 아버지의 부름에 차를 돌려 본가로 향한 것도 그 때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