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도 수능 시험 망쳤다.
대구지역 사립 Y대 기계과 겨우 들어갈까 말까한 성적이었다.
근데 육사에 지원해 놓은게 있어서 Y대 원서접수날 합격통보받았다.
들어가 보니 성적이 뒤에서 세번째. 운이좋았다.
2001년 졸업하고 소위임관해서 강원도에서 근무했다.
특전사에서도 근무했다.
육사나오면 중령대령까지는 단다는데 난 5년차에 제대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나보고 멍청한 놈 이라고 욕했고 사람들은 내가 군에서 사고친줄 알았다.
2005년 12월 결혼했는데 다음해 2006년 3월 전역이니 처가댁에 얼굴도 못 내밀었다.
전역하고 보험회사 들어갔다. 군출신이 전역하면 보험회사 밖에 오라는데 없다.
육사? 사회나오면 더 대접 못받는다. 오히려 문제아 취급당한다.
생보 들어가서 열심히 했다. 한 3개월.
한달만에 커미션 월1200도 받아봤다. 근데 매니저가 거짓말한게 속속 드러났다.
믿을사람이 없어 그냥 때려쳤다.
내가 한 계약 다 물리면서 받았던 수당 다 토해냈다.
사람만나면서 선물사면서 다니면서 쓰던 돈 이것저것 다해서 한 천만원 버렸다.
어설프게 주식하다가 또 천만원 날렸다.
군에서 5년동안 모은돈, 19년된 아파트 전세금 3000 말고는 다 날아갔다.
그새 첫 애기가 나왔고 분유값때문에 입이 바싹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2006. 7 애기엄마랑 애기는 친정으로 보냈다. 혼자 집에있으니 담배만 펴댔다.
그때 참 많이 울었다.
2006. 10 작은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한달봉급 100만원.
그때 당시 통장엔 현금이 딱 50만원 남아 있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데 감사했고,
내 능력으로 처자식 먹여살릴 수 있다는데 감사했다.
아내를 집으로 불렀고 아내는 애기분유값하며 살림 다해서 70~80만원으로 한달 버텼다.
난 어떻게든 교통비 아끼려고 노력했고 애기엄마는
동네 엄마들 모임에 나가서 천원 쓰는것도 벌벌 떨었다.
인턴으로 들어가서 비서실 일을 도왔는데 딱히 정해진 일이 없었다.
복사하고,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화분나르고, 선물돌리고...
그러다 가끔 페이퍼 웍 떨어지면 밤 새서라도 논문 찾아가며 만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그냥 처음 직장이라는 델 들어온 신참인 줄알았지
육사출신 대위전역자에 애기아빤지 몰랐다고 했다.
그렇게 한달봉급 100만원으로 7개월을 버텼다.
나는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2007년 4월 작은 광고회사 영업직에 면접을 봤다.
연봉 2400만원에 수습 3개월이란다.
대위로 전역할 때 그래도 연봉 3000 정도는 유지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달랐다.
그래도 더 나는 여건을 기대하면서 인턴직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런데 광고회사 수습 3일차, 먼저 근무하던 회사의 다른부서에서 전화가 왔다.
누가 나를 유심히 봤는지 같이 일하자고 했다.
연봉 3000정도는 줄 수 있다는 말에, 그리고 광고영업이 너무 생소한 탓에
다시 그 회사로 복귀했다.
2007년 5월, 작은 회사에 정식직원으로 들어갔고 정말 코피터지게 일했다.
늦게퇴근한다고 혼자 애기만 보던 아내가 많이 울었다.
2007년 10월, 같은 부서내 내 위엤던 고참이 성깔부리고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내가 메꿨다.
그사람 업무를 도왔던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평가되었다.
연봉에 3000에서 4000으로 뛰었다.
2008년 5월 회사가 문을 닫았다.
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바다여행도 가고 친정에 놀러갔다.
한 열흘 쉬었을까?
그 전에 만나던 거래처 사람들,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한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2008년 6월 모 회사에 들어갔다.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그것도 몇명이 추천해 줬단다
연봉은 4000에서 5000으로 올랐다.
2008년 12월 현재. 또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쫒겨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최대한의 융통성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다.
그것은 연봉을 1200을 받든 5000을 받든.
공무원이든 일반인이든, 인턴이든 정규직이든 아르바이트든
크게 상관이 없다는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대학나온놈이 아르바이트 하는게 아니라
육사 대위출신이 100만원받고 인턴하는게 아니라
세상을 탓하며, 날 먹여살려 줄 누군가를 막연히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대구지역 사립 Y대 기계과 겨우 들어갈까 말까한 성적이었다.
근데 육사에 지원해 놓은게 있어서 Y대 원서접수날 합격통보받았다.
들어가 보니 성적이 뒤에서 세번째. 운이좋았다.
2001년 졸업하고 소위임관해서 강원도에서 근무했다.
특전사에서도 근무했다.
육사나오면 중령대령까지는 단다는데 난 5년차에 제대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나보고 멍청한 놈 이라고 욕했고 사람들은 내가 군에서 사고친줄 알았다.
2005년 12월 결혼했는데 다음해 2006년 3월 전역이니 처가댁에 얼굴도 못 내밀었다.
전역하고 보험회사 들어갔다. 군출신이 전역하면 보험회사 밖에 오라는데 없다.
육사? 사회나오면 더 대접 못받는다. 오히려 문제아 취급당한다.
생보 들어가서 열심히 했다. 한 3개월.
한달만에 커미션 월1200도 받아봤다. 근데 매니저가 거짓말한게 속속 드러났다.
믿을사람이 없어 그냥 때려쳤다.
내가 한 계약 다 물리면서 받았던 수당 다 토해냈다.
사람만나면서 선물사면서 다니면서 쓰던 돈 이것저것 다해서 한 천만원 버렸다.
어설프게 주식하다가 또 천만원 날렸다.
군에서 5년동안 모은돈, 19년된 아파트 전세금 3000 말고는 다 날아갔다.
그새 첫 애기가 나왔고 분유값때문에 입이 바싹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2006. 7 애기엄마랑 애기는 친정으로 보냈다. 혼자 집에있으니 담배만 펴댔다.
그때 참 많이 울었다.
2006. 10 작은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한달봉급 100만원.
그때 당시 통장엔 현금이 딱 50만원 남아 있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데 감사했고,
내 능력으로 처자식 먹여살릴 수 있다는데 감사했다.
아내를 집으로 불렀고 아내는 애기분유값하며 살림 다해서 70~80만원으로 한달 버텼다.
난 어떻게든 교통비 아끼려고 노력했고 애기엄마는
동네 엄마들 모임에 나가서 천원 쓰는것도 벌벌 떨었다.
인턴으로 들어가서 비서실 일을 도왔는데 딱히 정해진 일이 없었다.
복사하고,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화분나르고, 선물돌리고...
그러다 가끔 페이퍼 웍 떨어지면 밤 새서라도 논문 찾아가며 만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그냥 처음 직장이라는 델 들어온 신참인 줄알았지
육사출신 대위전역자에 애기아빤지 몰랐다고 했다.
그렇게 한달봉급 100만원으로 7개월을 버텼다.
나는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2007년 4월 작은 광고회사 영업직에 면접을 봤다.
연봉 2400만원에 수습 3개월이란다.
대위로 전역할 때 그래도 연봉 3000 정도는 유지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달랐다.
그래도 더 나는 여건을 기대하면서 인턴직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런데 광고회사 수습 3일차, 먼저 근무하던 회사의 다른부서에서 전화가 왔다.
누가 나를 유심히 봤는지 같이 일하자고 했다.
연봉 3000정도는 줄 수 있다는 말에, 그리고 광고영업이 너무 생소한 탓에
다시 그 회사로 복귀했다.
2007년 5월, 작은 회사에 정식직원으로 들어갔고 정말 코피터지게 일했다.
늦게퇴근한다고 혼자 애기만 보던 아내가 많이 울었다.
2007년 10월, 같은 부서내 내 위엤던 고참이 성깔부리고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내가 메꿨다.
그사람 업무를 도왔던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평가되었다.
연봉에 3000에서 4000으로 뛰었다.
2008년 5월 회사가 문을 닫았다.
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바다여행도 가고 친정에 놀러갔다.
한 열흘 쉬었을까?
그 전에 만나던 거래처 사람들,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한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2008년 6월 모 회사에 들어갔다.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그것도 몇명이 추천해 줬단다
연봉은 4000에서 5000으로 올랐다.
2008년 12월 현재. 또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쫒겨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최대한의 융통성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다.
그것은 연봉을 1200을 받든 5000을 받든.
공무원이든 일반인이든, 인턴이든 정규직이든 아르바이트든
크게 상관이 없다는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대학나온놈이 아르바이트 하는게 아니라
육사 대위출신이 100만원받고 인턴하는게 아니라
세상을 탓하며, 날 먹여살려 줄 누군가를 막연히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좋은 글이네요!!
니가 사는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지는 마라.... 세상에 많은 사람이 너같이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니가 사는 방식도 썩 좋아보이진 않는다
소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근래 읽은 소설중에 가장 스펙터클하네요.
211.215.15.33// 난독증 쉐키야.. 그러니 니가 여적까징.. 방구석 뒹구는 백수 쉐키인거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대학나온놈이 아르바이트 하는게 아니라 세상을 탓하며, 날 먹여살려 줄 누군가를 막연히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가슴에 문신 뜨고 살아가라.. 막장아..
니가 올린 쓰레기글 같은거 읽지도 않았다.. 그리고 난 지방직 7급 현직자다... 지금 이른바 백수들이라 하는 사람들도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서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한테 뭐라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이런 씨부랄 닝기리 철밥통 쉐키야.. 내가 처낸 세금으로 밥벌어 먹는 쉐키가.. 근무시간에 인터넷 것도 디씨질을 처해쌌냐.. 너 시부럴 쉐키.. 어느 시청이냐 구청이냐.. 공무원 윤리위원회에 꼬질러야것다.. 내 시부럴 피같은 월급에서 꼬박꼬박 세금 뗘가믄서 근무시간에 디씨질 하는 쉐키 월급으로 처 준다니 ㅅㅂ 뚜껑 지대루 열렸다.. 개 씨부럴 공무원 쉐키..
ㅇ.ㅇ님아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일단 IP 추적부터 해보세요. 그리고 민원제기 합싣다
ㅉㅉ 지방직 7급 어디가셨수? 똑같은 백수주제에 기고만장하지 맙시다. 남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건 알겠는데 너무 소설삘이 강해서 ...
IP추적해서 꼭 잡으셈...그런 놈들은 매장시켜야함
테클은 아니고..내가 저때 수능봐서 그런데(지역도 같은 대구) 사립 Y대라함은 영남대이겠고 거기 간신히 들어갈 정도라면 수능 백분위 10~14%정도 그러니까 당시 점수로 320~315사이였을것임. 그런데 육사를 합격했다? 이거 좀 이상한듯...왜나면 당시 IMF막 터지고 해서 육해공사 엄청 커트라인 높았음. 테클은 아님...그냥 그런거 같다고
아..쏘리 97학번이면 이야기가 다르구나....내가 싸질러 놓은건 97년에 시험보고 98학번으로 입학한 이야기임
장교출신 들은 저런 긍정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있으니 회사에서 좋아하는 것임.
내가 이글을 퍼온건.. 이글이 사실이던.. 소설이던가 하는것이 중요치가 않는겨.. 좌절만 하면서 세상탓.. 부모탓.. 쥐쉐키탓 만 하덜 말고.. 일단 움직여서 세상에 나오라는거다.. 한달에 100만원을 벌어도.. 열씨미 일한다면.. 좀 더 나은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니까.... 방구석을 떠나 세상으로 나와라..
아이피 추적해서 찌르세요. 저 7급 색퀴 대가리에 총 맞았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