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 효(孝)라는 것은 채무 상환을 의미함.

낳아주고 길러준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는 것.

즉 은혜라는 '빚'을 갚아야 한다는 채무 상환의 윤리가 바로 효(孝)임.

채권채무관계를 부모자식관계에 그대로 적용한 것임.


그렇다면 이 관계가 과연 성립할 수 있느냐?

서구 윤리에서는 성립할 수 없다고 봄.

이유는 다음과 같음.


1.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다.(무조건적 사랑, 아가페)

2. 채권채무관계는 당사자 간의 자발적인 합의에 의해 성립될 수 있다.

- 즉 한쪽이 빌려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강제로 돈을 건넨 것은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


유교의 효(孝) 개념은 부모가 낳아주고 길러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채권채무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이 관계는 자식이 부모에게 낳아달라고 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즉 자발적인 합의에 의해 성립된 것이 아니므로 상환의무가 성립될 수 없음.

미성년자의 노동이 법적으로 금지되므로 부모가 미성년자 자식을 길러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의무임.


그래서 개화기 때 어떤 조선인들은 효(孝)를 가리켜 자식을 부모의 노예로 만드는 윤리라 했고,

루스 베네딕트 등의 인류학자는 이 동아시아의 효(孝) 개념을 가리켜 '채무의 윤리'라 했음.

그리고 서양과 대조했음.


1. 서양에서는 대가를 바라고 뭔가를 해주는 것을 나쁜 것으로 여기며(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익명 기부)

2. 상대가 나에게 갚지 않고 타인에게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일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3. 따라서 서양인들은 이런 채무감을 극단적으로 경시한다.


라고 했음.

그래서 서양의 자녀들은 자신의 전공이나 직업에 대해 부모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그다지 구속되지 않음.


반면에 동아시아에서는 어머니 마음이니 아버지의 어깨니 등등으로 기회만 있으면 자식에게 엄청난 채무감을 심어주는데,

이 때문에 자식이 자유를 누릴 수 없고 부모의 요구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채무의 윤리가 성립하게 됨.

부모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 곧 죄책감의 성립으로 이어지게 됨.

진정한 사랑이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다라는 개념을 제대로 장착하지 못했기 때문임.


그래서 부모 이외에도 스승의 은혜니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느니 등등으로 선생에 대한 채무감도 강조했고,

그래서 촌지 안 줘서 두들겨 맞아도 저항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 했음.

교무실 청소도 해줘야 했고. 그 어린 애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스승의 은혜 같은 건 없지.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아먹는데 뭔 은혜가 있으며,

그 스승이란 것들의 인격 수준이 얼마나 쓰레기였는지도 커서 알게 되지.


이 '은혜'라는 말이 얼마나 악질적인 말인지는 북한을 봐도 알 수 있음.

수령님의 은혜, 장군님의 은혜 등등으로 기회만 있으면 채무감 심어서 주민들의 목에 개목걸이를 채우고 있지.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배은망덕한 놈이 되도록 죄책감이란 개목걸이를 채우고 있음.


이러한 '은혜' 타령들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윤리와는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결국 부모의 사랑이든 스승의 가르침이든 지도자의 통치든 모든 것이 대가를 전제로 하게 됨.

그래서 동아시아의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에게 개목걸이 채워진 상태로 노예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임.


부모가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자식이 뭘하든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면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며,

자식의 진정한 행복을 기원해줄 것임.

하지만 한국 부모 중에 그런 부모가 얼마나 있나.

공부로 지랄하고 대학 전공, 직업조차 자기 마음대로 선택 못하는게 한국의 자식들인데.


하지만 한국 언론조차 저게 나쁘다는 걸 인식 못함.

왜냐하면 "사랑이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다"라는 개념이 희박하기 때문임.

또한 논리적 사고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가르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맹모삼천지교"를 미담으로 들려주므로써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가르치고 자빠졌음.


아무튼 이 나라, 이 지역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노예로 태어난다는 것이며,

타인의 간섭과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함.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독립을 누릴 수 없기에 자아를 성립시킬 수 없고,

따라서 독립주의(individualism)가 성립될 수 없음.

한국에서 개인주의라고 악의적으로 번역하는 바로 그것.


그래서 집에선 가장에게 종속되고, 직장에선 장(長)에게 종속되며, 국가에선 정부에게 종속됨.

'종속'을 당연하게 여김.

자기 스스로 뭔가를 판단하고 결정하지 못함.

그야말로 꼭두각시 인형들의 집합이 됨.


개인이 스스로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려 하면 배은망덕한 놈, 지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 됨.

그러니 몰개성 사회가 되고 어떤 혁신과 창발도 할 수 없게 됨.


그 시발점이 바로 효(孝)임.

태어나면서부터 복종을 훈련시키고 길들여서,

성인이 되어서도 복종을 미덕으로 알게 하는 아주 악질적인 개념임.

사채꾼, 고리대금업자의 윤리라 할 수 있음.


"낳아주고 길러준 은혜는 너무나도 큰 것이서 죽을 때까지 효도해야 한다"

= "엄청나게 큰 빚을 졌으니 죽을 때까지 노예로 살면서 상환해야 한다."

= "빚 액수가 크니까 염전 노예를 해서라도 갚아야 한다."

= "빚이 엄청나게 많으니 몸을 팔아서라도 갚아야 한다."


이런 악질 고리대금업자의 윤리를 처단하지 않으면 이 나라 국민들의 불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