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서커스단의 '난쟁이 단원' 하늘색, 아니 이제는 무대 이름 '리틀 스카이'로 불리는 그의 하루는 땀과 흙먼지로 시작되었다. 160cm의 키는 이제 콤플렉스가 아닌, 관객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무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작은 체구로 거대한 외발자전거를 타며 저글링을 하는 묘기를 연습했다. 과거 A+ 학점들로 세상을 내려다보던 오만함은, 이제 외발자전거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려는 처절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연습은 고됐다. 수십 번 넘어지며 무릎과 팔꿈치는 성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키보드 위에서 숫자로 사람을 짓밟던 손가락은, 이제 굳은살이 박인 채 세 개의 공을, 네 개의 공을 허공으로 던져 올렸다.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터져 나올 때, 그는 잠시나마 과거의 영광과 비슷한 희열을 느꼈다. '이곳이 나의 새로운 무대다. 학점이 아닌, 이 땀으로 나를 증명하리라.'
욕심이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필살기를 만들고 싶었다. 외발자전거를 탄 채, 불타는 횃불 세 개를 저글링하는 묘기. 단장의 만류에도 그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과거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학점을 쟁취했듯, 이번에도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결전의 날, 스포트라이트가 그의 작은 몸을 비췄다. "자, 세상에서 가장 작은 거인, 리틀 스카이가 선보이는 아슬아슬한 묘기!" 사회자의 우렁찬 소개와 함께 그는 외발자전거에 올랐다. 점화된 횃불이 손에 들리자, 관객석에서는 탄성과 함께 불안한 침묵이 흘렀다.
하나, 둘… 횃불은 그의 손을 떠나 아름다운 불꽃의 포물선을 그렸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보아라, 이것이 나다!' 스스로에게 외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횃불 하나를 더 높이 던져 올리고, 그 정점을 바라보던 찰나, 외발자전거의 바퀴가 무대 바닥의 작은 홈에 살짝 걸리고 말았다.
"앗!"
짧은 비명과 함께 그의 몸이 중심을 잃었다. 허공에 떠 있던 불타는 횃불 하나가 그의 어깨 위로 떨어졌고, 나머지 횃불들은 무대 바닥을 뒹굴었다. 외발자전거와 함께 넘어진 그는 극심한 고통에 신음했다. 왼쪽 다리가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그는 똑똑히 들었다. 어깨에 붙었던 불은 동료들이 황급히 달려와 껐지만, 살이 타는 고통과 꺾인 다리의 아픔에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현실의 좌절은 병상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그를 덮쳐왔다. 복합 골절. 다시 외발자전거를 타기까지는 최소 1년이 걸릴 것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서커스단의 수입은 공연 횟수에 따라 결정되기에,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그에게 돌아오는 돈은 거의 없었다. 변변한 보험도 없던 터라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과거, 컴퓨터 화면 앞에서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며 남들을 비웃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최고 학점으로 무장했던 그의 지식은, 부러진 다리의 고통을 1그램도 줄여주지 못했고, 당장 내일의 끼니를 해결해주지도 못했다. 병문안을 온 동료 단원들은 서툰 위로와 함께 쌈짓돈을 건넸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동정심은 늘색이의 남은 자존심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는 깁스를 한 다리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숫자로 사람을 찍어 누르던 '하늘색'이라는 거인은 죽었다. 이제는 침대 위에서 옴짝달싹도 못 하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진짜 '난쟁이'만 남았을 뿐이었다. 고전게임 갤러리에 울려 퍼지던 그의 학점 자랑은, 이제 텅 빈 병실의 소독약 냄새 속에서 희미한 메아리로만 맴돌았다. 그의 세상은, 불타는 횃불과 함께 무대 아래로 처참하게 추락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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