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올해 초에 소해했고 169에 43키로 멸공으로 공익온 케이스임(씹멸공일지도?..)    

  이처저차해서 대학교 1년하고 휴학 1년후 공익 갔는데 본인은 선복무로 공익을 간 케이스임.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모르겠다만 2월초에 바로 근무지 발령이 났음.

      발령받은 근무지가 치매요양원인데 근무지 위치도 편도로 1시간 40분이 넘었고 한술 더 떠서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느지막한 오후 한번 밖에 없었음. 선복무 공익이면 알겠지만 발령 받는 근무지는 알더라도 처음에는 시청간 후에 다 모여서 대충 브리핑 받고 근무지 직원이 대리러 옴.    

처음에는 대중 교통도 없고 차도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대리러온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알고보니 워낙에 깊은 산속에 있어서(차타고 가는데 논밭만 10분 넘게 봄)  요양원 직원이 다같이 타고가는 통근버스가 사거리에 있다고 말하더라. 본인 집에서 버스타면 그 사거리 까지10분이면 갔는데  쉬는 날이 불규칙 적이라서 가끔은 요양원 가는 사람 차를 얻어타고 가야했고 여름에는 차막히면 6시에 마쳐도 9시에 집 오는 경우도 많았음.

    처음에는 그냥 뭐 그냥 다니지 했는데, 알고보니 근무지에 본인 집 근처에 사는 선임공익이 있는데  금수저까지는 아니고 은수저나 동수저 정도인데 외동인데 징징대서 산 것 같다만 본인 명의의 차도 있더라고.  어린 마음에 돈 굳었다 이 생각하면서 몇 번 얻어탔는데 내가 눈치가 보여서 그냥 버스타고 간다고 했고 필요할때만 얻어탔고 그렇게 2월부터 시작해서 3~6월 까지는 그저그래 지나갔고 적금도 하나둘 넣으면서 공익 생활을 시작했음.  이때 실 근무시간은 점심 제외하고 6~7시간이었음.(설거지, 문서 정리, 각종 심부름에 기저귀 정리. 목욕 지원 등)  

      문제의 발단은 6월이었나 7월에 시작됐는데 여름에는 사람들 바캉스가고 휴가간다고(본인은 집돌이라 그런거 없음)  일주일에 한 번씩 요양원 어르신들 20명 정도씩 밖으로 모셔서 바베큐 한다는 거였음(총 인원 80~90 정도).  언뜻보면 이게 뭐 대수롭냐하겠지만 한여름 야외 온도 33~35도가 넘는 땡볕 아래서 매주 천막 꺼내서 펼치고 탁자 세팅하고 삼겹살 굽고 음식 가져다주고 옮기고 뒤처리하고 설거지하는 거라서 매우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심지어 이걸 8월 말까지 계속 했음.  

   TMI. 본인은 한의원에서도 체질적으로 땀을 많이 흘리면 안되는 타입이라고 했고 워낙에 말라서 땀흘리는 것이랑 피흘리는 것이랑 같다고 봐도 된다고 했긴한데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그만큼 수분 보충을 자주 해줘야한다는 뜻이었다고 봄.    

각설하고 집 근처에 던 선임이 알고보니 개씹 꼰대였음. 나보다 1살 많은데 자기가 요양원와서 사람들 죽는거 보고 본인 주둥아리로 본인이 철들었다느니, 내가 니보다 사회생활 더 해봤느니 이러더라고. 심지어 내(선임)가 니(나)가 아는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수 있다 이러더라. 그렇다고 학력이 좋은것도 아냐. 지거국도 아니고 그냥 지방 국립. 근데 진짜 어이없는건 선임 공익은 사회생활이라 해봤자 대학교 과대가 다야. 알바 경험도 전무함. 공익 사유가 습관성 탈골이었고 키도 180에 몸무게도 90은 되서 공익처럼 보이지도 않는 공익의 대표적인 케이스였고 어디 누구 밑에서 일해본 경험이 1도 없는게 나한테 그런소리 하는 것 보니 진짜 같잖더라고.

    그냥 겉멋이랑 허세만 든게 가득한게 아닌가 했는데 이걸 확신하게 된 계기가 내가 영어로 공부할때는 한번 써보니 필기체가 편해서 필기체로 공부하는데 이걸 가지고 여자에게 잘보이려고 이렇게쓰냐 이러는거야. 그러면서 취미가 뭐냐고 하길레 그냥 기타 치고있다고 하니까 이것 마저도 여자에게 작업 걸려고 배우냐면서 모든걸 여자에게 엮으면서 나를 깎아 내리고 허세 가득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손절 각을 잡을까 고민 했어. 그러다가 차가 없는 날 좀 태워달라고 단톡방에 요청을 했는데 니가 싸가지가 없다느니 이러면서 다른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쪽을 주더라고   그때 손절각과 재지정 각 잡고 이 단톡방 내용도 혹시 모르니 증거자료로 캡쳐해 놨었지.    

    그런데 웃긴건 바베큐 행사 도중에 그 꼰대 선임 나한테 하는 말이 "나는 여기(요양원)올때 여기가 내 첫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왔다"는 거야. 수첩 들고다니면서 해야할 일 적어놓고 기록하고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고 나한테 직접적으로 말하더라. 그러면서넌 왜 바베큐 행사하는데 설렁설렁하냐고 윽박지르니까 나는 내가 몸이 이렇다 하고 한의원에서 했던 말고 하니까 아니  힘든건 힘든거고 왜 못하는건데 이러면서 다른 사람 보는데 오히려 더 윽박지르더라. 그때부터 나는 자발적 노예 밑에서는 못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재지정각을 키울 증거자료 하나 둘 모았음. 아마 이때부터 나를 윽박 지르는 모습을 보고 근무지 직원이랑도 거리가 멀어진것 같긴하더라.      

   나도 그랬고 현재 다른 공익들도 알았으면 하는게 신문고는 징징댈때 쓰고 복무 지도관 호출만하는 어중간한 수단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증거가 모였다면 최고의 수단임. 어중간한 증거나 준비없이 징징댄다면 복무지도관들에겐 그냥 지방 출장거리 밖에 안됌.    

   나도 처음에는 그냥 거리가 멀었으니 사회복무메뉴얼 보고 재지정해달라고 병무청에 전화했는데, 그동안 잘 다녀왔지 않냐고 반박하더라고. 물론 내가 여기서 실수한게 초장에 바로 거리가 멀다고 재지정 각을 잡고 나섰어야하는데 그동안(약 6개월) 그냥 다닌게 문제였더라. 그래도 메뉴얼을 들먹이면서 4번인가 5번 이틀 간격으로두고 전화를 복무지도관에게 어느날 갑자기 시청직원하고 근무지 찾아 온다고 했음. 나는 선복무라 10월달에 훈련소 가서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싶었거든. 그렇게 9월이었나 그쯤에 시청 직원하고 복무지도관 2명해서 총 3명이 왔다. 물론 그 당시 공익 담당자랑은 사이가 그나마 괜찮아서 미리 말해놨고 담당자도 상황판단했는지 도와주겠다고 했고 이때 정말 진짜 고마웠었다. 시설 담당자와도 따로 말하면서 나에게는 재지정 도와주겠다고 말했는데 복무 지도관 왔을때는 말을 바꿔버려서 아주 뭐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더라.  

     나는 위에서 말한대로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2시간 정도 대화를 계속 했는데 시설 담당자가 말을 바꿔버린 상태라서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 그동안 잘 다녀왔냐는 말부터 똑같은 말만 반복이었고 재지정이 아닌 보직 바꾼다고 말하면서 서로 지치기 시작했어. 더 물고 늘어지려고 했는데 시간이 늦어지고 그렇게 어영부영 끝나버렸는데 그냥 이렇게 가면 다행인데 기분이 매우 더러웠던게 같이 있던 직원이 어차피 니가 그렇게해도 못나간다고 시설 관리자(시설 담당자 윗사람)가 얼마나 대단한데, 주윗사람 피해주지말고 그냥 다니라고 말하니까 오히려 내 기분을  더 기분을 더럽게 만들더라고. 그렇게 10월에 훈련소에가서 11월에 다시 나왔어.

     11월에 훈련소에서 나와서 다시 복무지도관에게 똑같은 이야기하면서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공익 사이랑 직원사이랑 불화가 있다고 말을 하면서 인권위 공익위 병무청 다찌르니까 며칠뒤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더라고. 여기서가 재지정하려면 가장 중요한데, 재지정 각 잡을때, 녹음기는 항상 필수지만 복무지도관이랑 시청 직원이 왔을때가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수단이 됌.

알고 있듯이 사람이하는 말에는 실수가 있을 수 밖에 없어서 어느정도 준비를 하고 복무지도관이랑 시청 직원이랑 면담할때, 약점 하나 잡고 물어늘어지면 분명히 말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더라. 녹음은 당연히 하면서 이때를 잊지 않는게 중요하고.  그리고 복무지도관과 통화할때는 항상 휴대폰 통화 녹음(본인은 아이폰이라 못했음)을 켜놓고 약점을 찾아서 신문고 찌르던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계속 전화를 걸면서 신문고 몇 번 찌르면 무조건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95%정도) 찾아온다고 보고 있음.        

  그러다가 복무지도관이 왔고 저번처럼 똑같은 이야기 반복하는데 갑자기 복무지도관이 선넘었다싶은 발언을 했음. "정 그렇게 힘들면 병원가서 정신과 5급받고 바로 의가사 제대를 하는 방법도 있고 다른사람에게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 솔직히 그때 저게 지도관 자질이 있나 생각이 들었고 당연히 녹음기는 켜져 있었으니 이걸 바탕으로 신문고에 찌를 내용을 2주일에 걸쳐서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고 여러 친구들에게 어떤지 봐달라고 하면서 녹음 파일과 함께 다듬었다. 그렇게 다음어서 신문고에 찌르니까 며칠뒤에  답변이 달렸는데 바꿔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때 처음으로 내가 혼자서 뭔가를 해냈다는 희열감을 좀 느꼈고 ㅈ같은 헬무지 탈출한다는 기분이 좋았고 어차피 안된다고 말하던 그 ㄴ도 암말 안하더라고.  

근데 너희가 알아야하는게 시청이랑 병무청 마음 맞고 너가 제대로 약점 찔러서 공략하면 재지정 원서 그딴거 없어도 신문고로 재지정 가능함. 그냥 알아서 재지정해주고 복돌복 이딴거도 없음.

   그렇게 재지정이 됐는데 신기한건 공익 시작한 날짜를 기점으로 정확히 1년하고 바뀐거였어. 근데 재지정 근무지가 특수 어린이 집이더라고. 나는 속으로 아 또 고생인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처음 근무지에 가자마자 진짜 신세계였는게 알고보니 예전부터 집앞에서 봐왔던 집앞 어린이 집이 내 근무지가 되어버렸더라고. 위치가 알고보니 집 앞 대문에서 엘레베이터 타고 근무지까지 1분 컷. 엘베 시간 빼고 보면 30초 컷이더라. 그냥 너희들이 집앞 편의점 간다고 털레털레 걸어가는 곳이 근무지였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더 좋았던건 특수 어린이 집이라고 해도 내가 해봤자 하는 일이 청소 약간하고 애들 등하교 지원 깔짝 하는 건데 그 사이에도 폰질하면서 놀아서 실근무 시간은 30분도 안됐다.

일과를 말하면 아침 등교 지원한 후에 무려 "집"을 가서 5시간을 다시 자거나 게임하고 다시 어린이집 가서 하원 지원하고 다시 집에와서 놀고 공부했다. 실근무 7시간 ->  30분 으로 바뀌고, 출퇴근시간이 편도로 1시간 20분 -> 30초로 바뀌는 드라마틱한 생활의 변화가 찾아온거지.  근무지 환경도 좋았던게 내가 왜소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애들이 나를 좋아해 주더라고. 그래서 가끔 근무하다가도 놀아주고 그렇게 1년 보내면서 공익 끝냈다. 오히려 전에 너무 고생했었는지 할 일만 딱딱시키는게 고맙더라.  

그리고 등원 지원하고 어린이집 들어가면 전부 고생했다고 눈 마주치거나 말로라도 해줄때 그것만큼 고마운게 없더라고. 그나마 힘들었는걸 말해보라면 1년에 한 번 10평쯤 되는 발판과 창고 페인트칠하고 잡초제거하는 거고 특이한 경험이라면 원생 한 명이차에서 실수에서 그냥 그거 뒤처리 한 것 그게 다야. 근데 저번 근무지였으면 그냥 넘어갔는데  새로 온 곳은 전부 고생했다고 말해주더라. 거기서 사람 대우를 받고 사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었고. 그렇게 소해하고 적금 몇 개 깨서 소해기념으로 컴퓨터도 좋게 맞추고 겜창짓도 좀 하는 중 (feat. 황회장 ㄱㅅㄲ야).      

  근데 집앞이다보니 소집해제하고 나서도 산책하다가 걸려서 놀아준 적도 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글재주도 없는데 긴글 다 읽어준 사람은 고맙고 스킵한 사람도 있을건데 그래도 재지정한 사람 경험담이니 읽어봐도 좋을 것 같음.   여담인데 병가? 그거 3일인가 그정도 아니고 하루정도는 담당자 재량으로 서류 없이 가능함.    

  요약  

1.재지정하려면 '니가 할 수 있는 한 제대로 근거자료 모아서' 신문고 한 번 찌르고 복무 지도관 왔을때 녹음하면서 약점 잡고 물고 늘어지자. 약점 잡고 물고 늘어지거나 확실한 사유를 계속해서 찌르면 근무지 바꿀 수 있음.

2.똑같은 돈받는데 개척해서 꿀빨자

3.노예 공익되기 싫다면사회복무포털에서 사회복무 메뉴얼 정독하자

4. 재지정 이후, 실근무 7시간 ->  30분
출근 시간 편도 1시간 20분 -> 30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