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맥 이하~한반도에 고립되어 있던 47z 와는 다르게 말이지...
게다가, 이땐 한반도의 면적이 지금보다 더 좁았음.
Proto-Koreanic 에서
오스트로네시안/크라다이어 요소의 흔적을 찾으려 드는 시도가 없으리라 믿는다.
반면, 일본어를 오스트로아시안 제어의 하위어족 혹은 피진→크레올로 분류하려는 시도는 있는 듯...
이후, 윤가촌 유가초 대전자 사가가 정백동 상보유형
장백산맥 이하~한반도에 고립되어 있던 47z 와는 다르게 말이지...
게다가, 이땐 한반도의 면적이 지금보다 더 좁았음.
Proto-Koreanic 에서
오스트로네시안/크라다이어 요소의 흔적을 찾으려 드는 시도가 없으리라 믿는다.
반면, 일본어를 오스트로아시안 제어의 하위어족 혹은 피진→크레올로 분류하려는 시도는 있는 듯...
이후, 윤가촌 유가초 대전자 사가가 정백동 상보유형
L682의 쌍둥이인 F940의 경우, 뭔가 좀 휑해 보인다. 대부분이 지나국에 있는 것도 그렇고... 중간 단계가 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뭔가 부자연스럽다. 전란의 영향인가...? 나의 착각일 수도...
다뉴경(多鈕鏡)의 형태는 원래 기원전 1000년경, 요하(遼河) 서쪽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는데 무늬가 거칠고 정교하지 못한 거친무늬거울 즉 조문경(粗文鏡)이 정문경보다 먼저 제작되었다. 중국 동북 지방과 한반도의 여러 지역 즉 길림, 연해주, 대동강 유역, 아산만-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여러 유형의 조문경이 제작되었다. 이후 청동기 후기인 기원전 3~2세기로 넘어와 정문경이 한반도의 고유한 양식으로 정교하게 발전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대동강 유역, 금강,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견되며 일본 열도에까지 전파되었다.
초기 세형동검(A식) 중 일부만이 전형적인 세형동검(B, C식)과 관련없이 요동지방이나 길림지방에서 별도로 만들어졌다고 보여진다.
이 細形銅劍은 요동지방을 비롯하여 길림지방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細形銅劍 중 A式이 출현하는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5-4세기로 보고 있으나 B, C式이 대동강유역에 출현하는 것은 대체로 기원전 4-3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 기원지는 충남이 유력) 그런데 이들 細形銅劍의 분포지역은 요동지역에서 한반도 지역까지로 비파형동검의 분포에 비하면 축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吉林 集安縣 五道嶺溝門무덤에서는 세형동검·동모·동부 등이 출토되었다. 북한학자들은 이 돌무지무덤이 이 시기 이전의 강상·루상무덤(요동 대련 지역)을 계승하고 후대의 고구려 積石塚과도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
기원전 4~5세기, 만주, 세형동검 A 式 출토지역심양시 우흥구 정가와자 1,2호 : [움무덤], 검파두식, 갈색단지, 방추자요양현 양갑산 이도하자 1-3, 5-7호 : [웅무덤], 단지, 바리여대시 윤가촌 12호 무덤 : [돌곽돌무덤], 곤봉대가리, 단지, 굽접시수암현 대방신 서방신 : [돌관무덤], 검파두식, 동촉동구현 합릉 대방신 : [?]본계시 고대자양가촌 2호 : [돌관무덤]관전현 쌍산자 조가보 : [돌무지무덤], 동모봉성현 제형산 소진가 : [돌무지무덤]길림성 집안현 오도령구문 : [돌무지무덤], 동모, 동부, 동자귀, 조문경, 철촉
당시, 중원지역은 춘추~전국시대였고 동이족들이 몰락해 가던 시대였다. 중원 수도작의 전성기는 산동성 이남에 자리잡고 있던, 초나라로부터... (초나라가 동쪽의 양자강과 회하 하류지역까지 손에 넣은 때는 기원전 350~300년 경)
杨家圈 大嘴子 4500 3000
前 : 세장방 中 : 장방+원 後 : 방(점토대) 화덕 : 농업기술과 문명의 발전으로 인한 세대분화 때문. 중기 이후로는 X 이 원형주거지의 중앙에는 노지가 아닌 집수시설 혹은 석기작업공과 같은 공간으로 보고 있다.
청동기시대 중·후기의 송국리형 집자리에는 화덕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집자리 외곽에 설치된 야외 화덕에서 공동취사를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형구덩이는 저장용, 원형 구조물들은 깊이가 깊다.
6500~6000B.P.에는 한반도 동해안과 연해주, 아무르강 하류까지 고고문화상에서 관련성이 보이지만 5000B.P.후에는 한반도 동해안에는 한반도 중서부 지역의 신석기문화양상이 들어오게 되고, 두만강과 연해주 일대의 동해안 북부에의 평저토기는 더 이상 한반도 동해안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한반도 동해안은 더 이상 평저토기문화권이 아니다.
아... 뭐지... K10* ~ L682가 먼저 선주해 있었던 것인가... 하지만 '농경'이야말로 진정한 선주세력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7번 유정동 유형 3160 ybp~ 동쪽의 서단산문화(西團山文化)와 돈화(敦化) 일대의 돈화권 청동기문화, 북쪽의 앵가령상층유형(鶯歌嶺上層類型) 등과 구별되는 독특한 지역 유형을 보인다. (北)옥저 선조의 문화 유형으로 인식되는 이러한 유형을 유정동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정동유적은 유정동유형의 대표적인 유적인 셈이다. - 위치는 布爾哈通河
앵가령유형 하층은 4000 ybp, 상층은 3000 ybp 무렵, 숙신족의 문화라는 의견도 있음. (晉대의 기록이므로, 동이 같은 범칭에 불과함.) - 위치는 黑龙江省 宁安县 镜泊湖, 옛 상경용천부 동남 인근.
숙신(肅愼, Suk-chin)-주대(周代) 주신(朱申, Su-shin)-전한대(前漢代) 읍루(挹婁, Dyūr)-후한(後漢)·삼국시대(三國時代)
이도하자 유형의 기술적 중심 지역은 요양현 일대이다. 그러나 기원전 6~4세기 심양시 일대에 십이대영자 문화(十二臺營子文化) 정가와자 유형(鄭家窪子類型)의 중심이 형성되면서 천산 산맥 서측 지역과 요양현 일대가 정가와자 유형의 분포 권역으로 변동되었고, 이도하자 유형의 중심지는 태자하 중상류역의 본계 시현 일대로 이동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기원전 4~3세기 본계 시현 일대에 이도하자 유형의 직계 후행 문화인 유가초 유형(劉家哨類型)이 형성된다.
마성자 문화~이도하자 유형~유가초 유형으로 이어지는 요동 북부의 동일 문화 계통
대이수구 유형은 청동기~철기 시대 요동 동부 지역의 물질 문화로 대전자 유형, 망강루 유형(望江樓類型), 초기 고구려 문화로 변동된다.
주몽과 송양왕
서단산 문화는 마성자 문화(馬城子文化) 말기에 마성자 문화의 일부 유물 요소가 길림성 중부 지역으로 북상하여 현지의 토착적인 유물 전통과 결합하여 형성된 청동기 문화이다. 또한 서단산 문화와 병행했던 요동 북부의 후기 청동기 문화인 이도하자(二道河子) 유형에서 이도하자형 비파형 동검 등을 비롯한 청동기 제작 기술을 수용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관계를 통해 이 문화가 청동기 시대 예맥(濊貊) 문화권에 속하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0. 신흥동 유적의 토기는 팽이형토기 대체로 민무늬토기시대 초기인 서기전 1000년경에 출현해서 후기인 서기전 3세기경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릇 형태는 독모양과 항아리모양의 두 가지가 있으며,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독모양이다. 항아리형태는 변형 팽이형 토기라고도 한다. 출토수량은 적지만 초기 유적에서 이미 독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되고 있어 시기적인 차이에 따른 변화형식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후기 유적에서는 항아리모양 토기의 수가 증가되고 있다. 항아리모양 토기는 곧 선송국리형 토기, 각형토기조차도 송국리 유형과 흡사하다. 따라서, 10번 신흥동 또한 47z의 유적.
團結주거지(77F1) “북옥저인들은 挹婁인들이 배를 타고 와서 노략질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여름철에는 산속 바위굴에서 지내고, 뱃길이 통하지 않는 겨울철이 되어서야 마을에 내려와 살았다”고 하는≪삼국지≫의 기록과 부합한다고 하겠다. 함경도지역에서는 아직 단결유적과 비슷한 주거지유형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함경남도 동해안 일대에 분포하는 금야-토성리형문화는 단결유적보다 연대가 앞서는 주거지유적이기는 하나 이는 두만강유역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와는 구조가 다르며 오히려 대동강·재령강유역의 팽이형토기 주민들의 집기둥 배치와 같다고 한다.
團結 - 이른 시기의 문화층은 한대(漢代) 옥저시기의 것, 옥저의 위치가 생각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을 것이다.
북옥저는 치구루라고도 불린다. 남옥저에서 8백여리의 거리에 있으며, 그 풍속은 남과 북이 같으며, 읍루와 접하였다.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으로 큰 바다(大海)를 접하였다. 그 지형은 동북은 좁고, 서남은 길어서 천 리나 된다.
읍루족은 부여(夫餘)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읍락 별로 공납을 납부했는데, 3세기 초에 가혹한 징수에 저항해 이탈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목단강(牧丹江) 중·하류 유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목단강은 송화강의 지류 중 하나이다. 중국의 지린성 목단령(牡丹嶺)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헤이룽장성 무단장시를 통과해 하얼빈시의 이란 현 부근에서 송화강에 합류한다.
함경남도 함흥 근처까지는 세형동검 혹은 마한 문화권, 그 이북으로 남옥저, 두만강 이북에서 아무르 강 하류지역까지 북옥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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