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연나라)의 주류는 아닌것 같다.
1. 잘 알려진대로 동이전에 기록된 삼한지역으로 유입된 진나라 유민
2. 석탈해와 같이 고대 반도 남부지역과 열도의 교류로 반도로 유입된 왜인
3. 동성왕, 무령왕때 반도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왜계세력과 이시기에
영산강 유역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세력
( 백제로 귀국할 때 왜인 병사를 동반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고대시대에 기록으론 상세한 규모를 알지 못하고, 고고학적으로 반도내 왜계유물은 열도내 반도계유물 출토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규모인 것은 아니다.
4. 위진 남북조 시대 중국으로부터 유입.
북위의 북연정벌시 고구려가 수만의 군대를 동원해 북연의 수도인 황룡성의 북연인들을 탈출시켜 고구려에 정착시킨 기록이 있다. 규모가 상당했을것 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전란기에는 대륙으로 부터 유입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반도가 전란에 흽싸이거나 재해로 기근이 생겼을때 열도로 탈출한자가 많았다.
5. 발해 멸망시 같이 유입되었을 말갈인.
추정이지만 그당시 고려로 귀화한 발해인의 규모도 수만에 달한다고 한다.
6. 여요전쟁기 피난해온 여진인과 포로로 잡힌 거란인.
이때 거란인 포로역시 수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은 정착하지 않고 백정 및 기생, 광대 등의
천직에 종사하며 떠돌아 다녔다고 한다. 조선시대 신랑역천이 여기서 유래했을 수 있다.
7. 여몽전쟁 및 원간섭기의 인구유입.
몽골인의 경우는 제주도에 정착하여 살았다하며, 홍건적과 왜구등의 외침이 가장 많았고 그 피해가 큰 시기였다. 여진에서 귀하한 사람들의 경우도 종종 보인다. 이시기 중앙행정능력은 거의 마비상태였다.
8.이외에도 앞서 말했듯이 임진왜란기에 수년동안 경남 일부지역이 왜인의 점령지가 되었으며,
투항한 항왜의 숫자가 정유재란기엔 1만이 넘어갔다고 한다. 이들의 일부는 김충선과 같이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북방경비를 맞는 군대로 편성되었다 이괄의 난에 가담하여 참화를 입기도 했다.
이후로는 의미있는 인구의 유입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여진족귀화를 잊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