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맨슨은 클라투의 sir army suit 앨범에 실린 mr. manson의 주인공이자 마릴린 맨슨 밴드의 \'맨슨\'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클라투와 마릴린 맨슨의 차이라면 mr. manson 노래는 찰스 맨슨에 대해 조롱하고, 비판하는 입장이며(음악 자체는 무거우면서도 경쾌하다) 마릴린 맨슨은 찰스 맨슨을 대단한 인물로 보는 것 같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마릴린 맨슨 같은 스타일이 위험하다고는 보지 않지만 \'유치한 짓\'임에는 틀림없다.
찰스 맨슨은 1934년 매춘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맨슨이 아기일 때 무장강도 행위로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맨슨은 어린 시절을 고아원과 소년원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러한 환경 탓인지 13세때 이미 무장강도가 되었으며, 17세때의 범죄로 인해 \'호모로 공격적인 경향을 가진 위험인물\'로 경찰의 주시를 받았다.
1954년엔 로자리라는 웨이트레스를 만나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지만 1958년 이들은 이혼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범죄로 끊임없이 감방을 드나들다 교도소에서 기타를 배웠으며 프로급 기타리스트 정도의 수준까지 올랐다.(\"신바람이 나면 비틀즈보다 내가 한 수 위야\"라며 맨슨은 자랑하곤 했다.)

1967년 교도소에서 출소했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의 인생의 절반을 교도소에서 보낸 뒤였다.
하지만 플라워 무브먼트가 넘쳐 흐르던 1967년 그는 일단의 히피들을 사귀면서 그룹을 형성하고 리더가 되었다.
맨슨이 이끄는 히피 패밀리에는 맨슨을 만나기 이전까지만 해도 너무도 평온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맨슨은 머리와 수염을 길러 \'선지자\' 같은 이미지를 연출하였고, 패밀리 내부에서는 lsd와 혼음이 성행하였다.
맨슨은 난잡한 섹스와 약제의 마력을 이용하여 그가 명령하면 모두가 주저않고 살인이라도 저지를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인 지배력과 카리스마를 쌓아올렸다. 패밀리 최초의 플라워 파워가 어느덧 살인 의식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맨슨은 캘리포니아의 여러 도시를 돌면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에게는 예능적인 재능이 있어 레코드와 영화도 제작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 무렵 그의 패밀리에는 아레이스터 크롤리의 숭배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1968년경, 맨슨은 팝뮤직의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려고 발버둥쳤다.
한때 패밀리 전원이 비치 보이스의 호화저택에서 살기도 했지만 맨슨은 뮤지션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불어난 패밀리로 인하여 결국 조지 스판이라는 노인이 소유한 목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부터 맨슨의 강력한 지배력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망상, 그리고 폭력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대전에 대비해서 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총과 나이프를 구입하도록 하였고, \'운명의 날\'을 위한 히트 리스트도 작성하였다.
워렌 비티, 쥴리 크리스티, 도리스 데이의 아들 텔리 멜커 등이 그 대상이었으며, 패밀리의 탈퇴자들도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맨슨은 \'운명의 날\'의 작전명을 비틀즈의 노래에서 따와 헬터 스켈터라고 이름지었다.
또한 그는 \'이지 라이더\'로 알려진 폭주족과도 우호 관계를 돈독히 했으며 그 수단으로는 패밀리 내의 여자들이 성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리하여 맨슨 패밀리는 40여명을 넘어서면서 전성기를 이루었다.
강력한 지도자와 안전한 장소, 이미 정상적 사회생활을 포기한 패밀리 등으로 폭력과 살인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었다.

1969년 7월 드디어 그들의 행동은 시작되었다.
패밀리는 겔리 힌만이라는 사람의 집을 강탈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그를 죽였으며, 그의 피로 \'정치 돼지\'라는 말을 갈겨 썼다.
이때부터 패밀리는 경찰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맨슨은 \'헬터 스켈터의 날이 왔다\'고 공언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집을 급습하였다.
당시 폴란스키는 유럽 여행중이었고, 집에는 폴란스키의 아내인 샤론 테이트와 제이 세브링(테이트의 옛 애인),
아비게일 폴거(헤어 디자이너이자 갑부의 딸) , 워지시에치 프라이코스키(폴거의 애인) 등이 있었다.

패밀리는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시중드는 소년을 총으로 쏘아 죽였고, 그들이 집으로 들이닥쳤을 때 테이트 일행은 마약에 취한 상태였다.
맨슨 패밀리는 이들의 돈을 전부 빼았고, 모두 죽였다.
살인에는 남녀가 모두 가담했으며 샤론 테이트는 16차례나 찔린 끝에 사망하였다. (당시 그녀는 임신중이었다).
살인 행위가 있을 당시에는 이들이 유명인사임을 몰랐던 맨슨 패밀리의 수잔 애킨스는 나중에 tv를 통해 그들이 죽인 사람들을 알게 되자 \"기분이 후련해!\"라고 말했다.

얼마 뒤에 패밀리는 여섯 사람이 마약으로 기분을 돋군 상태에서 한 슈퍼마켓의 주인 가족을 제물로 삼았다.
(주인의 부인은 41군데나 찔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남편의 시신은 칼과 포크로 엉망이 되었으며, 그의 배에는 war라는 글자가 씌여 있었다.
또한 방의 벽에는 돼지들에게 죽음을, 일어서라, 헬터 스켈터 등의 글자가 피로 적혀 있었다.
살해자들은 그들 가족을 죽인 후 그 집에서 샤워를 하고, 식사를 마친 다음, 세 마리의 개에게 먹이를 주고 집을 떠났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있은 뒤 일주일 후 쯤 패밀리는 다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1969년 12월 무렵 경찰은 이전에 탈퇴한 멤버인 키티 루트싱거에 대해 조사하다 맨슨 패밀리의 범행에 대한 단서를 잡았고 패밀리는 모두 체포되었다.
맨슨은 사랑 때문에 살인을 범하였다고 강변하며 사회로 책임을 돌리려고 발버둥쳤다.
재판 도중에 수잔 에킨스는 사람을 8명씩이나 살해한 것이 중요한 일이라 생각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반박하였다.
\"네이팜탄으로 수천 명을 죽인 일은 중요했나요?\"

재판에서 맨슨을 포함한 4명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다른 3명은 종신형이 선고되었으며, 여타 멤버들 역시 중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몇몇 패밀리는 검찰측에 증거를 제공함으로써 기소되지 않았다.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던 사람들도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리고 맨슨은 미국 서해안 암흑가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경찰은 맨슨 패밀리가 행한 살인의 건수를 정확하게 밝히지는못했지만 대략 35명 정도를 죽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맨슨은 몇 차례 보석을 신청했으나 모두 기각되었으며, 또한 몇 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결국 맨슨 패밀리는 마약과 섹스를 통한 찰스 맨슨의 강력한 지배력에 의해 움직인 집단이었으며, 그들 패밀리는 자신의 힘을 온전한 곳에 사용하는 데 사용하는데 실패했던 셈이었다.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이 우익에 대한 혐오감을 사회에 조성하였듯 맨슨 패밀리의 사건은 좌익에 대한 반발심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미국 사회에서의 \'혁명\'의 의미를 최악으로 격하시킨 사건이었다.

* 존 레넌과 관련된 범죄자로는 마이클 X가 있다.
그는 레넌을 포함한 유명인사들의 성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했으며
살인을 저질렀으나 결국 그 자신도 살해당했다




출처 가생이닷컴 통통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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