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지 않은 어둑한 하늘이다

심심한 자음과 모음에 손가락을 짓누른다

쩌리는 저의 키처럼 연애를 몽땅 모르지만

영원히 사랑 못할 찌그러진 거울이다
빛나는 유리를 보면 알 수도 있을 법한데

그의 유리는 거울을 내밀지도 못한다

기다리던 전철이 스무 고개를 지나

퇴근의 기쁨을 몰고 올 때에


쩌리의 쩌리 끼리끼리 몸 비빌 핑크빛  우산은

그냥 하나다

아이스크림도 떡볶이도 중생을 제도하진 못했고
낭만 고양이와 차디찬 족제비가 찾아 낸 야심한 밤은

차곡 차곡 봄을 봄답게 쌓아 보지만 야무지게 무너진다
시계의 뒷태는 맹인이 되었고

여기 짐승들의 슬픈 노래가 울려 퍼진다
밤은 밤길을 무서워했고

비는 내릴까 말까 궁금하던 차에 이젠 좀 왁자지껄하다
거저 받은 우산에서 옆 집 소녀의 밤 향기가 어우러지고

비를 궁지로 몰고 온 아수라왕처럼

수돗물은 콸콸 쏟아 붓는다 아주 붓는다
비광이 그쳐! 하니 그치고

내려! 하니 내리는데

포근해질 밤의 표정은 점점 눅눅해진다
또 한 편의 독립영화가 시작할 무렵

밤의 시는 숨을 거두었고

나는 비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