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잎이 푸른 빛을 내뿜는 가을밤이었다. 빗물이 조용히 떨어지던 그날, 나는 하염없이 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 삶을 돌아봤다. 노력조차 하지 않은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피곤하다며 자꾸 핑계를 대고 빈둥거리던 모습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얼마나 멍청해 보이는가.
신이 있다면 나를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을 도피할 용기는 없다. 차라리 나를 주인공으로 세워줄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갈지도 모르겠다. 정작 나를 받아들여 줄 곳은 내가 지나치며 보지 못한 곳일 테지.
빗물은 떨어지고, 아직은 낙엽이 멀었지만 머지않아 떨어질 것이다. 짓밟힌 은행은 이미 땅에 나뒹군다. 큰 꿈을 가지고 떨어졌으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바닥에 깔려버린 은행나무 열매처럼, 나 또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내가 동정하는 은행이나 나나,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그 작은 것을 보며 한탄하고, 누군가는 더 높은 곳만을 바라본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얀 점처럼 보이는 별들이 아무리 빛나도,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와 창가에 맺힌 물방울이 내 생각을 흐리게 만든다.
어느덧 9월이 왔고, 아직도 지난 계절을 놓지 못한 나는 무기력하게 비를 바라본다. 과학기술이니 가치가 있네 없네 떠드는 사람들은 결국 그들 스스로가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무의미한 논쟁만을 벌인다.
나는 100일 동안 만났던 한 남자를 기억한다. 처음엔 똑똑해 보였지만, 사실은 겁쟁이에 불과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두려워했고, 감정적으로 서툴렀다. 처음엔 그의 침묵이 좋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답답해졌다. 그의 침묵 속에서 나는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그와의 시간이 끝났을 때, 내 안에도 같은 침묵이 자리 잡았다.
친구가 이별을 결심했다. 4년간의 사랑이 끝을 맞이하고 있다. 그 4년은 뜨거운 사랑이 아니었지만, 처음이었기에 더 아픈 것 같다. 친구가 한숨을 쉬며 가을의 이별을 맞이하려 하자, 나는 그를 응원했다. 하지만 나 역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글 메인 내용이 문단단위로 휙휙바뀌네
정신병 ㅇ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