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엽편 경연 때 맞춰 올렸어야 했는데, 게을러서 늦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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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문은 어디로 통하는 문이에요?
내 물음에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뺨은 웃음기로 들썩였고, 단춧구멍 같은 눈맵시 안짝으로 동자가 반짝였다.
할미네 보물창고지.
불현 듯 빼꼼 열어젖힌 미닫이문 새 쿰쿰한 어둠 속을 더듬더니, 할머니는 오색 고운 바퀴모양 사탕봉지를 꺼냈다.
먹어라, 아가.
나는 짐짓 엄하게 도리질 쳤다.
이 썩으면 엄마가 치과엘 데려갈 거예요. 치과는 무섭잖아요.
할머니는 씩 웃으며 사탕 한 알을 꺼내들어 보란 듯이 반쪽을 우쩍 깨물어냈다.
할미 건 괜찮혀. 이런 건 느 집에 읎잖냐?
스멀스멀 혀 밑에 고이는 침을 삼키며 나는 괜히 뒤통수가 가려워 굳게 닫힌 새김문을 돌아봤다.
니 엄니는 읍내 장터엘 갔으야.
할머니의 손바닥 위에는 여전히 반쪽짜리 사탕이 얌전히 올라앉아 있어, 그 탐스런 자태를 견디다 못해 나는 낼름 그걸 집어 먹고야 말았다. 또록또록 알을 굴리면서도 내 귀는 문지방을 넘어설 발소리를 가늠하고 있었다.
엄마한텐 비밀이에요?
입술을 불퉁 내민 채 나는 힘주어 말하고, 할머니는 킬킬 웃었다.
내 입은 걱정 말어라. 느 혀만 안 보이면 된댜.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해거름의 뒤꿈치가 게으르게 장판지를 기어 다니는 동안, 나는 검질긴 단 침을 머금고서 할머니의 광에 대해 연거푸 물었다.
이런 것 말고, 저기엔 또 뭐가 있어요?
요 쥘부채도 거기서 나왔어야. 저기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도 그렇구. 느 엄니가 너 만할 적 사진들도 있지.
사실 사진들은 마루 벽 시렁에도 줄줄이 얹혀 있었다. 집 안에 들어서려면 액자에 고이 끼워둔 큼지막한 얼굴들과 한 번씩은 시선을 마주쳐야 했다. 그 얼굴들의 주인 중 유일하게 자리를 비운 이는 할아버지였다. 어린 내가 아는 한, 할머니가 손수 꺼내놓은 할아버지의 기억은 그것 하나밖엔 없었다.
그럼 그 나머지는 다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저 광 안에 있겠지. 엄마는 이따금씩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엄마 어렸을 적에 과일이랑 야채만큼은 푸지게 먹었지. 할아버지가 과수원을 돌보셨거든. 포도는 곧바로 씻어서 따먹고, 복숭아는 설탕에 절여 통조림으로 보관해 두고 먹었단다.
어쩌면 그 녹슨 깡통이 몇 개쯤은 들어 있을지도 몰라. 엄마나 이모, 외삼촌의 배냇저고리에서부터, 학생 시절 타왔을 상패나 어버이날 달아드렸을 카네이션, 누렇게 낡은 교과서들이며 공책들 더미 사이 어디엔가, 함께 먼지를 덮고 웅크린 채 부둥켜안고 있겠지.
멀찍이서 싸르르르 싸르르르, 매미 울음통이 저녁 공기를 부드럽게 더듬고 있었다. 할머니 넓적다리를 베고 누운 나는 점차 졸음이 몰려왔다.
할머니.
왜야.
저긴 보물창고인데 열쇠가 없잖아요. 도둑이 들면 어떡해요?

할머니는 가만가만 내 등을 두드리며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뜨며 보챘다.
네? 그럼 어떡해요, 할머니?
걱정하진 말어라, 아가. 누가 봐도 다 구닥다리 밖에 없응께. 그리구 진짜배기루다 무서운 건 도둑이 아녀.

마지막 말은 속삭임에 가까웠지만, 나는 분명 똑똑히 모든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듣자마자 까무룩 잠들어버렸더랬다. 허나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에조차 나는 아직도 그 말을 온전히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아직 정정하시다. 그럼에도 세월이란 건 참 무심하고도 잔혹해서, 이제 외갓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가 되었고, 할머니는 홀로 해를 거꾸로 보내고 계신다. 대문만 잠가뒀지. 짐을 채 다 비우지도 못했어. 엄마가 내게 언젠가 했던 말이다. 그러니까 아직 그 광 역시 숨겨진 보물들로 가득 차 있을 게다. 할머니 말씀처럼 그 반짝임을 탐낸 도둑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때를 떠올리면, 검질긴 단 침을 머금은 듯 다소 느른한 설움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