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이게 말이야 방구야 이런 생각이 듦...
다 그런건 아니고 그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 확실히 많아지긴 한 것 같아요.
현대시라는 이름하에 감각적인 이미지만 줄줄 나열해 놓은 시들이 너무 많은데
전 그걸 읽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읽는건지 아니면
그런가보다 하고 읽는건지 궁금...
소통이 전혀 안 되고 시인 자신의 세계에만 갇혀 있는 폐쇄적인 시들을 읽다 보면
그러니까
뭔가 어렴풋한 느낌과 이미지만을 전달하는 시들을 보다 보면
아 그래서 시가 그들만의 리그란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 전공한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문학 안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에 대해 더 알고 싶지도 않을듯
그들 사이에서만 소통하는, 그런 문학이었나요 시가..
아님 내가 무식해서 이해를 잘 못하는 건지 몰라도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시인 본인의 자위행위 같은 시들을 읽다보면
울화통 터질 때가 한두번이 아님...
나도 저런 식으로 써야 등단하나 싶고...
그래서 나름 흉내내보면 작위적이라는 느낌만 들고...
그냥
그냥 회의감 들어서 주저리주저리 써봅니다
절대 한국문학 전체를 비판하는건 아님
님도 자위하면 되는 거여 뭘. 글로.
이른바 모더니즘 시의 고질적인 문제로 나타난다는 '소통의 어려움' 요즘 시 뿐만 아니라 역사가 꽤 깊은걸로 알고있음. 하이데거씨가 말하길 시는 사물의 본질을 꿴다고 함. 본질을 꿰는것은 철인과 시인의 공동임무라서 자연스럽게 존나 어려운, 복잡한 시가 나타나는게 아닐까.
하이데거 글 한 편이라도 읽은 이는 없다고 봐 한국에서도. 사물의 본질을 어떻게 꿰겠다는 건지. 하이데거는 난해 그 자체걸랑.
어려운 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시를 쓴 본인들도 본인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면서 감각적인 단어들, 있어보이는 단어들 끌어다 놓고 정신분열 환자처럼 주절주절거린단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요. 정말 원하는걸 쓰는게 아니라 있어 보이는 시, 등단을 위한 시를 쓴다는 느낌... 문학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소통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더니즘 시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하시니 뭔가 암울....사물의 본질을 꿴다라...ㅜㅜ 아직 어렵네요 저에게는..
사물 본질을 꿴다는 건 이런 이미지. 닭꼬치 같은 거. 아니 다이아몬드도 텅텅 비어 있는데 어떻게 양꼬치구이를 먹겠다는 건지.
하이데거의 시론은 1.언어가 말한다. 2.언어가 존재를 말한다. 3.언어는 세계와 사물로서의 존재를 말한다. 라고 정리해둠. 언어는 알 수 없는 본질을 투영해주는 창... 이라는 좀 애매한 설명 계시성, 불립문자, 불리문자, 언어모순, 역설논리 하... 진짜 존나게 어렵네
난 개인적으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설명이 마음에 들더라 '시는 일상어에 가해진 조직적인 폭력이다.'
기표와 기의의 일대일 대응관계에 익숙해있으면 소설을 읽으시면 됩니다. 시는 일대다 대응이죠. 사과가 사과가 아니고 손이 손이 아닌 겁니다. 발화 형식도 다 다르죠. 대표적으로 황병승은 다중화자를 씁니다. 사건 같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김언은 사건 자체를 제로베이스로 되돌립니다. 이장욱을 보시죠. 그의 시에서 저는 아무런 의미나 내용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의미가 필요없는 그림과 음악들이 있듯이 시도 그런 거죠. 꼭 의미를 찾아야 하고 이해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시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무의미 자체가 의미를 만들 때가 있어요. 가령 황현산이 말했듯이 황병승은 퀴어들의 고통을 시어 자체가 발화하게 합니다. 이는 황병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겁니다. 그렇습니다. 황병승의 시를 읽다보면 정작 시인 자신은 아무런 말을 안 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정서가 있지 않습니까? 우울 파괴 혐오...읽다보면 어떤 슬픔 같은 감정에 도달합니다. 이장욱의 시도 보십시오. 거의 모든 문장이 아이러니입니다. 그런데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삶은 그의 말마따나, '아이러니에 대한 격조 높은 희극'이지 않은가요? 황인찬의 시는 어떻습니까. 써클라인 같은 시를 읽어보면 솔직히 별 의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거기서 어떤 의미가 발생합니다. 지하철의 노인을 담담히 서술하는데 '선릉역 하면 선릉역에서 서는 것'이라는 끝문장은 의미심장합니다. 저 노인은 누굴까? 하는 질문이 생기지요. 시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성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구관조 씻기기에서 나는 젖은 거리를 걸었다. 라고 써놓은 걸 볼때 이상하게 그런 감정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만약 비가 내렸고->도서관에서 나온 나는 젖은 거리를 걸었다라고 쓰면 어떨까요? 우린 거기서 그저 예상할 수 있는 정서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예상가능한 의미에 도달할 겁니다. 그런데 삶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죠. 아닙니다. 불가해하고 모호하고 온통 아이러니로 가득하며 의미가 주어지기 보다는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 삶입니다. 각자의 삶의 의미는 각자가 찾는 것입니다. 각 시편들의 의미는 독자 각자가 찾는 것입니다. 그건 이미 독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를 기대하지 않아도 됩니다. 고로 시는 자유롭습니다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댓글을 읽고나니..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편협한 시각으로 시를 읽어왔구나 하는 생각에 반성을 하게 되네요ㅜ 성격 자체가 예민한데다 어떤 현상 자체에 파고 들어서 분석하고 인과를 찾길 좋아하는 성격이다보니 그런 습관들이 시를 읽는 것에도 여과없이 적용된 것 같습니다. 댓글을 읽는데 아..!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장욱 시인의 시 같은 경우는 아직 접해보지 못했지만 황병승 시인 같은 경우는 무척 좋아하는 시인 중 한명이거든요. 시집도 다 소장하고 있고...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좋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댓글을 읽고나니 그 '좋음'의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네요. 언급하신 시인분들은 한번씩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