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 수면욕

 

편의점.... 편의점에 들러야 해

 

취기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가로등을 지탱하고 걷는다.

 

그런 날이 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플라시보 효과처럼 취해 가는 날.

 

붉은 보름달을 월병 안주삼아 그저 걸어간다. 신발등이 땀으로 축축히 젖었다.

 

끔찍한 구역질이 몰려온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너무나 멀쩡했던 내가

 

뽕맞은 청나라 상인마냥 기어갈 기세로 편의점을 향해 걸어간다.

 

가기 전에 속에 있는 것을 비웠다. 짬뽕 국물인지 감자탕인지 시뻘건 게

 

헛구역질을 연달아 유발시켰다. 비릿한 것이 동태찌개인 것 같기도 하고..

 

의식이 흐려지는 게 아무래도 필름이 끊길 것 같다.

 

전에 아빠가 뇌수막염 증세 좀 나아지라고 나에게 스트레칭을 시켰던 기억이 난다.

 

쌀쌀한 늦가을 날씨에 길거리에 드러누워 자기 전에 스트레칭 좀 해놔야겠지.

 

하나 둘, 하나 둘, 흐려지는 앞의 잔상에도 불구하고 몸을 쉴새없이 움직였다.

 

집에서 나온지 20분만에 마주친 사람이 갑자기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가 끌고 나온 치와와도 컹컹대며 비명을 질렀다. (치와와인지 족제비인지 알게뭐람)

 

하긴 이 스트레칭은 좀 기괴하긴 하다.

 

하지만 그녀의 비명은 쉽사리 끊기지 않았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곤 드러누웠다. 그제서야 나의 몸을 살필 여력이 생겼다.

 

축축한 신발등에서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뱃속이 뜨끈한 이유가 술기운이 아니었다.

 

어쩐지 씨발 동태찌개에 선지를 넣었을 리가 없지.

 

눈을 감으면 난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할 것만 같았다. 떠, 눈 떠 이새끼야!

강풍이 불어와 두 눈을 때렸다. 내 눈꺼풀은 닫혔고 나의 의식은 그대로 깊은 심연에 빠져버렸다.

 

내 망상의 공간 속 바다로 가라앉으며, 많은 것을 보았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이 보랏빛의 미지에서, 나의 인생이 해류처럼 몰려왔다.

 

심해에 빠지기 전, 최대한 많은 것들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까지 떠올리려면...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바닥에 닿기 전까지는 생각해내야되..

 

 

 

 

 

2 - 재물욕

 

"담배 좀 한 대만 빌릴 수 있을까요?"

 

그가 안경을 치키며 물었다. 담배를 어떻게 빌리냐? 쌍대가 강조된 담배갑을 내밀며 나는 생각했다.

 

"오늘은 이만,,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다 설계해 놓았으니까요."

"그러니까 3주내로 끝내주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2달하고도 반이 지났습니다.."

 

그는 참을성 없는 불독이 개껌을 탐내는 것 마냥 주름을 잔뜩 쥐어보였다.

 

나는 그에게 내 담배갑을 내밀어야 했다. 그가 막 내가 아끼는 화분을 재떨이로 쓰려 했기 때문이다.

 

"이번 건은 너무 힘들다는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깡패새끼들도 연계되어 있고 까딱하다간

사장님이나 저나 깜방에서 도란도란 콩밥 콩 수 세게 될 거 뻔히 아시면서.."

"그러길래 제가 원래 액수에 밥값 하시라고 3 더 붙여주지 않았나요? 운호 씨를 굉장히 신뢰해서

이렇게 두 발로 찾아온 거잖습니까. 제발 최대한 빨리 끝내주십시오.."

 

거 진짜 돼지새끼가... 넓직한 얼굴에 맞지 않게 조그만 뿔테 원형 안경을 쓴 이 사장은

 

3년째 내 단골이다. 하지만 올때마다 역겹고 불편하다. 난 내 신념과 지조를 지키며 일하는 스타일인데

 

이 돼지는 올때마다 빨리 끝내달라고 아우성이다.

 

과학수사니 뭐니 하는 시대에 탐정놀이한다고 부모, 친척, 친가, 친구들한테까지 모조리 한 소리

 

들었었던 나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시무룩해질 정도였으면 이 짓거리 안했다.

 

근데 이 피글렛만 오면 멘탈이 깨질것 같다. 나의 스타일도 모르고 항상 돈이면 오케이라는 식으로

 

찔러넣고 보는 놈.

 

"알겠습니다. 내일 제가 조수와 브리핑을 해보지요."

"일주일 내로... 꼭 처리해 주십시오. 항상 믿어왔습니다."

 

형식적 악수를 끝내고 그는 클린 웜 코튼 향수내를 풍기며 자리를 떳다. 하지만 나에겐 그저 비계냄새

 

일 뿐.

 

"걔 갔냐? 아이고 진짜 말많다.."

 

화장실에서 앳된 얼굴의 남자가 웅얼댔다. 내 사촌이긴 하지만 싸가지가 너무 없다

 

"니 삼촌한테 냐가 뭐냐 ... 냐가.. 일이 좀 복잡하게 됬다. 저번에 오사카에서 왔다는 재일 교포가

죽었댄다. 배를 수십차례 난도질당해서 시신이 이틀만에 부패가 되버려 부검도 힘들다고 하네.."

"뭐? 그사람이 죽었다고? 그럼 이 사건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니야? 유일한 증인인데."

"장돌아.. 내 조카 장돌아... 이 삼촌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책갈피가 끼워져 있지 않아.. 너도 알잖아.

큰 돈 걸린 사건은 웬만하면 포기하지 않는다고. 이 시발 구닥다리 사무실 좀 둘러봐라.

화장실 갔다 왔지? 휴지살 돈이 없어가지고 그저께 수건으로 닦았다 임마..."

"아니 방금 세수하고 나왔는데 물 나오는데 왜 수건으로 똥을 닦고 그래 , 시발.."

"형 항문 민감한 거 알잖아.. 제발 우리 형편 생각해서 이번 사건은 죽어도 해결하자.. 진짜 니 머리가

필요하다 ,,"

 

말없이 조카는 마지막 담배를 집어갔다. 그 돼지가 갑 안에 가래침을 뱉었다고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