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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지켜라




인신족(忍辰族)이 아후라제국(Ahura帝國)을 공격하면서 첫 번째로 한 일은 지옥을 정복하고 10대 염라를 복속시키는 것이었다.


인신족은 본디 황천과 지옥의 간수 최상위층 노릇을 하던 종족이다. 때문에 인신족 중에 지옥인간(地獄因間) 칭호를 가진 이는 슈라반과 아가스차 2명이었다. 남녀추니이고 그 같은 몸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슈라반과, 언제나 긴 로브를 쓰고 큰 낫을 든 아가스차는 죽이 잘 맞는 파트너였다.


지옥인간 아가스차가 지옥의 행정권을 더 강력하게 장악하는 동안 지옥인간 슈라반은 지옥 깊이 내려가 죄수들을 살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인신족들이 지옥을 헤집고 다녀 지옥이 시끄러워졌다. 슈라반은 이런 혼란을 용납했고 담담하게 감당했다. 슈라반은 무서운 열기와 냉기를 한꺼번에 내뿜어 지옥을 공포에 떨게 했다. 겁화 보다 매서운 열기와, 절대 0도 보다 차가운 냉기를 슈라반은 겸비했기에 지옥이라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옥 죄수들의 왕인 악마왕 사탄은 이런 인신족들의 행패가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상태였다. 사탄은 인신족들에게 대항하고 싶었고 최소한 훼방이라도 놓고 싶었다.


사탄은 한 번도 싸워 보지는 않았지만 한 번 지옥인간 슈라반에게 도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슈라반은 악마들이나 지니들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강한지 측량할 수 없을 만치 강대한 극초인간(極超因間)이었다. 슈라반 보다는 아가스차가 더 뛰어난 무력을 갖췄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었고, 그들 뒤에 있는, 수도 많고 막강한 인신족들은 더욱 두려웠다.


그렇기에 사탄은 다른 간계를 생각해냈다.


사탄은 지옥의 마녀 가운데 지체 높은 귀부인인 멜티티를 찾아갔다. 저택 로비에서 멜티티는 사탄을 맞이했다.


“소녀 멜티티, 악마 군주 사탄을 영접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멜티티는 사탄을 꺼리는 기색이었다. 멜티티는, 언제나 분탕만 치러 들고 사기와 협잡과 강압을 사랑하며 잔인한 사디스트인 사탄을 좋아하지 않았다. 멜티티는 비록 마녀였지만 지장보살에게 마음이 있는 영혼이었다.


지장보살은 지옥 가장 깊숙한 곳을 떠돌면서 선행과 공덕과 공즉시색을 설파하고 다니곤 했는데, 이는 모든 영혼을 부처로 만든 뒤에 자신도 성불하겠다는 지장보살 자신의 의지를 실천하는 바였다. 지장보살은 언제든 성불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자신을 번뇌에 휘둘릴 수 있는 보살 상태로 두었다. 지장보살은 쉴 때면 인신족에게 가서 편하게 지냈고, 때문에 멜티티는 인신족을 신뢰했다.


멜티티의 저택엔 거대한 마굿간이 있었는데 단 한 마리의 말만 있었고 숨겨져 있었다. 사탄은 멜티티와 함께 한가롭게 저택을 거닐다가 말을 살폈다. 멜티티는 말의 매끄러운 살결을 매만졌다. 말은 거대한 몸집의 눈부시게 흰 백마로서 갈기와 꼬리만은 황금빛이라 찬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사탄은 멜티티와 차를 마시면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사탄도 멜티티도 정기적으로 다가오는 지옥의 형벌을 모든 존재를 통해 견뎌내야 했지만 지금이 그때는 아니었다.


사탄은 멜티티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아후라제국이 지옥에 준 말을 보호할 건가? 이제 지옥의 실세는 온전히 인신족이니 아후라신족의 명령은 따를 것이 없도다. 아후라신족의 하수인이던 10대 염라도 그 밑의 무수한 판관들도 이제는 지옥인간 아가스차에게 복종했다. 지옥을 인신족이 접수했듯 그 말도 접수할 테니 이제 자유롭게 놓아둠이 좋도다.”


멜티티에게 그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말로는 무슨 짓을 못 하겠는가라는 격언도 있지만 멜티티는 사탄의 술책에 말려들었다.


멜티티는 말을 옭매던 각종 도구를 풀어 던졌다. 멜티티는 인신족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사탄이 광소를 터뜨리곤 사라졌다.


멜티티와는 달리 사탄은 그 말의 진정한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말은 주춤거리더니 갈기도 꼬리도 아니 온 몸이 거무죽죽하게 볼품없이 변했다. 엉덩이가 과도하게 커지는 등 체형도 말 보다는 당나귀 비슷하게 흉물스러워졌다. 멜티티는 당황했지만 이리저리 날뛰는 말을 통제하기엔 버거웠다. 결국 멜티티는 날개를 펼치고 저택을 버리고 날아올랐다.


사탄이 자신의 궁전인 복마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외쳤다.


“똥꼬말이 각성했구나!”


똥꼬말이 눈 똥은 순식간에 멜티티의 저택을 뒤덮고 부숴버렸다. 똥꼬말의 주변에 수학 공식들이 휘몰아쳤고 이는 괴우주의 행동 원리를 교란시켰다. 똥꼬말은 질량을 폭증시켜 막대한 똥의 해일을 만들었다. 똥꼬말이 눈 똥이 삽시에 지옥을 무겁게 했다.


그 서슬에 지옥이 대마계(代魔界)를 향해서 떨어지려 했다. 정복되고 통제된 악인 지옥이, 통제 불능의 악인 대마계와 붙는다면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된다면 인신족의 무능을 드러낼 터였다. 그것은 인신족이 이번 혁명을 일으킨 이유를 무색케 하고 아후라제국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지옥인간 아가스차와 지옥인간 슈라반은 인신국(因辰國)에 연락해 지혜를 모아보자 했다.


이제 막 아귀에서 인신족이 된 먹보인간 찐돌이가 똥꼬말에 대한 대항마로 거론되었다. 아귀대왕을 먹보인간 찐돌이로 만든 물인간(물因間) 은하영(銀河永)이 찬란하게 빛나는 외모를 드러내고 당차게 말했다.


“먹보인간 찐돌이님의 혀에 블랙홀 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고 해서 그러시나 본데, 물론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찐돌이님은 인신국의 처우가 박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찐돌이님은 인신족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니 우리에게 큰 애착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애국심을 더 가진 인신족을 써야 합니다.”


은하인간(銀河因間) 운성진(運星辰) J. 그레베타가 말했다.


“내가 하리다.”


다른 인신족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은하인간 운성진은 대단한 싸움꾼이자 지략가이며 3군단장인지라 절대 아후라제국과의 전쟁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1군단장인 우주인간(宇宙因間) 운수천(運首天)도 지원했지만, 운성진과 비슷한 이유로 기각되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똥꼬말에게 급파된 이는 중력인간(重力因間) 응가라토였다. 응가라토는 이제 막 극초인간이 된 인신족으로서, 극초인간 답게 상당한 무력을 갖고 있었다. 응가라토는 지옥에 가기 때문에 악마들을 두렵게 할 필요가 있어서 송곳니를 길게 자라게 해서 입술 밖으로 날카롭게 벼려져 나오도록 했다.


응가라토는 똥꼬말에게 갔다. 응가라토는 자신의 이마 한복판에 붙은 블랙홀 발전소와 똥꼬말의 항문을 이어 붙였다. 물론 응가라토 자신이나 똥꼬말이나 생활엔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교묘한 파라탐(Paratam) 비술을 사용했다.


응가라토의 블랙홀 발전소는 손쉽게 똥꼬말의 똥을 흡입했다. 문제는 해결되었고 평온해진 똥꼬말은 멜티티의 보살핌을 받던 예전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다. 멜티티는 자신의 저택을 치웠다. 저택은 다시 깨끗해졌지만 똥꼬말의 힘을 봉인하던 아후라제국의 도구들은 거의 다 망가져서 응가라토가 계속 곁에 있어야 했다. 멜티티와 똥꼬말은 다시 친해졌다.


중력인간 응가라토는 구성원 상호간에 폭력으로 인한 압력이 없다시피 한 인신족 틈에서 나고 자라왔다. 하지만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압력은, 공동체를 위한 노동은 해야 한다는 양심과 맞물려, 지금과 같은 비루한 삶으로 응가라토를 이끌었다.


‘뭐 일이 있으면 좋은 거지.’


그렇게 중력인간 응가라토는 똥꼬말 곁에서, 아후라신족과 인신족의 전쟁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빈둥거렸다.



[2014.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