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는 오전부터 나라시 작업으로 분주하다. 쇠스랑을 한껏 쳐들었다가 내리치면 막걸리 병이나 플라스틱 그릇 등 돈이 되는 물건들이 끌려 내려오곤 한다. 이사 온 지 2년 만에 매립장은 3층 건물 정도 높이로 솟아올랐다. 아빠는 꼭대기에서 청소차가 방금 부려놓은 쓰레기 더미들 속에서 전선을 골라내고 있다. 오후엔 검은 연기와 함께 구리 타는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엄마가 후벼놓고 간 자리 이곳저곳 먼지와 김이 피어오르고 익숙한 군내가 바람을 타고 밀려온다.
오늘은 가지고 놀 만한 물건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외팔이 로봇이나 날개 부러진 비행기 하나 건지질 못했다. 보물섬이나 소년중앙 몇 권이 손에 잡혔지만 죄다 낯익은 표지. 하루에 청소차가 열 대 넘게 들어온대도 내게 도움이 되는 물건은 흔치 않다. 쓰레기 더미의 경사면을 올려다본다. 군데군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의 일부가 눈길을 끌었으나 너무나 가파르다. 연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돛단배처럼 나는 언제나 쓰레기 더미의 가장자리를 배회할 뿐이다. 벌써 해도 중천에 다다랐다. 이제 작열하는 태양이 쓰레기 더미를 구워내면 온갖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리라. 나는 빈 그물을 거두고 숲으로 회항하기로 했다.
간간이 부는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놓는다. 가지 끝마다 날개를 잠시 쉬는 잠자리들이 일렁이고 있다. 더러는 쉬던 날개를 바짝 세우며 바람결에 실려 오는 기척을 경계하는 녀석들도 있다. 바람이 슬몃슬몃 계절의 옷자락을 들추는 이맘때면 놈들의 꼬리는 빨갛게 약이 오른 채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다. 목덜미를 타고 내리던 뜨스한 땀방울이 바람에 놀라 선득하다.
가네들 잡아죽이는 게 그래 재밌나?
경미 누나의 목소리가 스쳐 가는 듯했다. 양 날개를 잡아 등짝을 가르면 싱싱한 근육들이 햇빛에 반짝였고 그럴 때마다 경미 누나는 자기 속살이 드러난 것처럼 고개를 돌리곤 했다.
매앰~매앰~
악다구니를 쓰는 통에 도대체 집중할 수가 없다. 잠자리는 가지 끝에 앉으면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주변을 탐색하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땐 동작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등 뒤라고 해서 놈이 못 본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날개를 접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순간,
그걸 지금 들면 쓰나, 임마야.
며칠 전 거랑에서 쩌렁쩌렁 울리던 아빠의 음성이 떠올랐다. 성급하게 들어 올린 족대 그물엔 썩은 나뭇잎 몇 개와 잔 돌멩이가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아빠는 우악스럽게 족대를 빼앗아 들고 돌아 섰다. 누굴 보라고 한 건지 빈 족대를 넣었다 들었다 하면서 물소리에 산란하는 불분명한 말들을 쏟아내었다. 목구멍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식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더랬다. 지금쯤 아빠는 전선에서 구리를 뽑아내 자기 키만큼 쌓아놓고 있을 테다.
잠자리가 날개를 접었다.
날개 끝을 낚아챌지 등짝을 덮칠지 손끝이 가늘게 떨린다. 힘이 들어가면 가슴팍이 짓뭉개진다. 그런 몸통은 열어보고 싶지 않다. 싱싱하게 윤이 나는 속살을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촉감이 싫다. 그럴 땐 어금니를 너무 세게 물다가 윗니와 아랫니가 어긋나기도 한다. 눈이 질끈 감길 만큼 시큼한 아픔이 떠오른다. 뜨끔, 손끝을 거두는 순간 놈의 꼬리 끝이 크게 요동치는가 싶더니 이내 날아가 버린다.
경미 누나는 보충 수업을 마치고 오후 늦게 돌아온다. 벌써 일주일째인데 아직도 일주일이 더 남았다. 그리 생각하니 등짝에서 삐질삐질 부아가 솟는 것만 같다. 장난감도 잠자리도 죄 허탕을 치고 오후까지 뭘 한담. 볼멘 시선으로 경미 누나네 돌담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따금 표독스러운 칠면조 울음소리가 담을 넘어 왔다. 우리 장닭을 후달굴 때마다 저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곤 했다.
한번은 부예가 있는 대로 치밀어서 우리 장닭을 후달구는 암놈한테 몽둥이질을 한 적이 있다.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는 암놈을 보면서 씨익 웃고 있는데 눈에 불이 번쩍했다. 벼슬에 약이 잔뜩 오른 수놈이 푸드득 날아오르는가 싶더니 누가 우악스럽게 머리카락을 잡아 뜯는 것 같기도 하고 뺨따구를 마구 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그러고는 혼자선 저 돌담 안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경미 누나에겐 꼼짝을 못하는 것들이…
2.
늦은 점심을 먹고 매립장 끝자락을 서성이고 있었다. 책등이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몇 월 호인지 알 길이 없는 소년중앙이 눈에 띄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이래로 번번이 이미 본 것만 걸리고 있다. 기대감이 실리지 않은 손길로 책귀를 세게 잡아당기자 검은 비닐봉지며 깡통 따위가 와르르 밀려오면서 먼지와 군내가 일었다. 몇 월호인지 볼 것도 없이 익숙한 모델의 익숙한 포즈.
책을 던져놓고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눈에 들어온 그 형상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기묘한 전율이 어깨로부터 팔꿈치를 지나 손가락 끝으로 몰렸다가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것이 책에 실린 사진의 일부라는 사실과 동시에 벗은 여자의 다리 부분이라는 점이 퍼뜩 인지되었다. 왼 다리가 오른 다리 위로 살짝 포개져 있는 모양으로 볼 때 그 여자는 모로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장면만으로는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책은 활짝 펼쳐진 상태였다. 왼쪽 페이지에는 사람이라는 것만 간신히 구분이 가는 흑백사진 아래 역시 어떤 문장이라는 것만 짐작 가는 문자열이 제법 큼직하게 인쇄돼 있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저 까만 점과 다를 바 없는 글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여자의 다리 사진은 오른쪽 페이지 밑에 놓인 낱장들 중 하나였다. 여러 겹으로 접혀 있던 페이지의 끝 부분이 삐져나온 모양이었다. 매립장에 널브러진 잡지책 중에서 가끔 저런 상태의 것들을 본 적이 있지만 한 번도 이처럼 길게 눈길을 사로잡은 적은 없었다. 마른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뜨거운 숨을 밀어 올렸다. 불현 듯 저 다리를 숨겨야 한다는 느낌이 솟구쳤다. 알 수 없이 불안해진 시선을 매립장 여기저기로 돌렸다.
그걸 보면 쓰나 임마야.
아빠의 우악스러운 손이 어깨에 닿는 촉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무의식의 저 편으로부터 익숙한 냄새가 실려 왔다. 밥을 먹고 나왔을 때부터 줄곧 매립장 전체를 휩싸고 있던 냄새. 아빠는 지금 매립장 꼭대기 공터에서 전선을 태우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기 쭈그리고 앉아 여자의 상반신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주위를 황급히 둘러본 다음 책을 집어 들고는 집 쪽으로 걸었다. 부채꼴로 퍼져 있는 쓰레기 더미의 끝자락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않으면서 매립장 부지의 왼쪽 끝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에 다다라서야 여자의 다리가 아직도 삐쭈룩하게 페이지 밖으로 나와 있음을 알아챘다. 내 아랫도리가 드러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자의 다리를 페이지들 속으로 집어넣고 책을 덮자 표지 상단을 장식한 큼직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선데이 서울.
화장을 짙게 한 여자 얼굴이 화면 가득 들어찬 표지들은 매립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였다. 언젠가 한 번 이런 책을 펼쳐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한 페이지, 간장약이며 양주 광고 같은 사진이 들어 있는 페이지 몇 장을 넘겨보곤 던져버렸다. 그런 표지는 마음의 수집 목록에서 제외되었고 이후로 수백 번은 더 시야에 들어 왔지만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간 흘려보낸 수많은 표지들 아래에 이토록 숨 가빠 오는 사진들이 들어 있었단 말인가. 책을 발치에 놓고 매립장으로 되돌아갔다. 맨살을 드러낸 다리들이 얼마나 더 무방비로 누워 있을 것인가.
더욱, 그래서 이것은 설명이 좀 더 부족해요.. <아니?, 이 풀잎 하나, 하나 몰고서?> 는 결국 자전거를 혼자 탔지만 말예요!! 엉엉...
그래서 결국 지게를 짊고 쏘다니는 거라니까요 글쎄
하지만 안답니다. 이 일기들과 그리고 꾸준히 쌓아 올려질 아스키코드에 기반한 (아주 원초적이지만) 정보들. 그래도 이렇게 말 할 수 없다구요. 누설하면 안되요? 비밀이에요. 쉿- , 이 시각 교차가 이루어지는 매 천 분의 일 초 마다 약속되어야 해요.
A / 시인가요?ㅎㅎ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나는 언제나 쓰레기 더미의 가장자리를 배회할 뿐이다.
저 다리를 숨겨야 해! / 딱 발견했을 때 묘사 좋음. 손가락 끝으로 몰렸다가... 읽는 데 왠지 흐뭇해지는
재미있네요. 무방비로 누워있을 맨살의 다리들
오롯이 / 쓰면서..이런 게 과연 남들에게 재미있게 읽힐까..걱정했는데 일단 한 사람이라도 재미 있다니 엄청난 힘이 됩니다^^
일뤼미나시옹 / 아 이거 웃으면 안 되는데 이 댓글 읽고 빵터졌음다..악평이냐 호평이냐를 떠나서..그냥 읽는 순간 터져버렸네요ㅎㅎㅎㅎ
영화 감상하듯 읽히네요. 배경 음악도 좋고 효과음도 감칠맛 나는... 글이 입에 착착 감겨서 맛있게 먹다가 어느새 다른 생각에 젖어든 나를 발견하게 됐어요. 이상하네요. 제법 몰입해서 읽어내려왔는데 다른 상념에 젖어버린...용두사미의 흡입력은 내 개인의 문제겠지요. 여튼 맛났어요bbb 나중에 다시 음미해볼게요
허니dumb / 제가 그나마 잘 쓰는 글은 비평 쪽인 것 같고 시는 공모전 본심 커트라인 바로 아래 어디쯤일 거라고 여기는데..소설은 초보나 다름 없어서 많이 공부하고 또 준비 해오던 사람이 보기엔 여러 모로 허점이 많을 겁니다. 수준을 떠나서 완성해 보는 게 목표입니다^^;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게 심리나 풍경 묘사를 자세히 할 때와 행동묘사만으로 빠르게 전개할 때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별다른 전략없이 쓰는 순간의 느낌이 닿는 대로 가는 중인데..이러다 보면 쓸 데 없이 늘어지거나 너무 건성으로 지나쳐 버리는..양 극단의 문제가 생기지 않나 싶지만..작자 입장에선 구분이 잘 안 되네요.
인물의 심리에 이입해서 전개해야 할 때와 관찰자 입장에서 전개해야 할 때가 기분에 따라 뒤섞이고 있다는 막연한 문제의식만 드네요. 그나마 여기까진 덜한데 다음 부분부턴 그런 문제가 두드러져서 댓글 지적이 낝무할까봐 벌써부터 식은 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