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옛날에 썼던 글들을 뒤져보다가 일기 파일을 발견했는데 '화재 일기'가 있더라고.


뭔가 싶어서 열보니 2013년 10월 30일 날 우리 옆 빌라에 화재가 났던 걸 기록해 놓은 거더라.


그 다음날, 그러니까 새벽에 이 일기를 쓴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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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심한 밤에 글을 쓰려다가 감이 떠오르질 않아 그냥 이불 펴고 가만히 누워 있자니, 일단은 졸음을 쫓으려고 눕기는 했지만 잠이 스르르 오기에 ‘아. 오늘 밤도 이러고 끝이겠구나.’생각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갑자기 밖에서


 “경미야! 나와 봐!”


 쾅쾅 문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에 이게 무슨 소란인가 싶기도 했고 또 금방 그치겠지, 하며 가만히 누워 있기도 했지만 소란스러운 목소리는 그치질 않고 계속 되었다. 중간 중간에 다른 남자들 목소리도 섞이고 또, 다급한 여자 목소리가 ‘그만 좀 해!’하고 들려오기도 한 것 같아서 - 자세히는 듣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자면 ‘그만 좀 해!’라고 들은 것은 잘못 들은 것 같다. - 누가 실종 돼서 애를 찾는다거나, 아니면 술 취한 남자가 옛 연인의 집에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는구나, 짐작했다. 그냥 귀 막으며 자면 그만이지 싶었는데 일이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는 물건 타는 냄새와 사이렌 소리에 급하게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옆 빌라에 불이 크게 번져서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장 처음에는 경찰차가 도착하더니 그 다음으로는 구급차와 소방차 순서대로 도착했다. 구급차는 한 대, 그리고 나중에 추가로 한 대가 더 와서 두 대로 그쳤지만 소방차는 골목마다마다 줄줄이 들어차서 어림잡아도 5~6대는 될 만큼 많은 수가 출동해 있었다.


 4층짜리 옆 빌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앞에 모여 있었다. 불은 2층에서 나고 있는 게 눈에 보일정도로 크고 선명한 불길이 방 안 전체를 태우고 있었고 시커멓기 보다는 약간 회백색이 도는 연기가 하늘로 풀풀 날고 있었다. 냄새는 캠핑장에나 가서 나뭇단을 태우던 것과는 다르게 유독성이 짙게 섞였다는 느낌의, 뭔가 기름이나 화학약품에서 나는 냄새가 역하게 슬금슬금 코를 찌르고 있었다.


 사방에서는 걱정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자세히 고개를 들어 보니 미처 건물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옥상에 올라가 손전등을 밝히고 있었다. 그 와중에 3층에는 한 사람이 집을 나오지 않고 창문을 열어 기웃거렸는데, 천만다행으로 바람이 반대편으로 불어서 그 사람이 있는 방으로는 연기가 가질 않았다. 잘 보이질 않았지만 내 나이 또래의 여고생쯤으로 보였다. 한 눈에도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약간 태평스럽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그리 긴장한 사람의 모습은 아닌 게 젊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괜히 호들갑 떨지 않고 침착하게 기다리는 모습이 현명해 보이기도 했었다.


 소방차가 도착하고 불난 장소에 보이는 사람들은 대충 네 무리 정도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당연히 소방관들이었고, 또 하나는 경찰관, 그리고 세 번째로는 남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는데 아마 소방관들의 연장선쯤 되는 일을 하는 이들로 보였다. 화재가 아직 다 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장소를 떠난 것을 보면 공무원보다는 사설 업체의 직원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무리가 바로 나와 같이 소란을 살펴보러 나온 주민들이었다. 개중에는 나처럼 호기심으로 끌려 나온 사람도 있었고 멀리 사는 이들이 지인이 걱정 돼서 쫓아 나온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한 무리만 더 추가시키자면 그들은 화재의 피해자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들의 조사를 받으며 몇 호에 사는지, 최초 신고자가 누군지를 줄줄이 조사받고 있었다. 그리고 피해자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화재가 난지 30분쯤 지나서, 그러니까 소방관들이 신고를 받고 나와 화재를 거의 진압하고 있었을 때쯤에 등장한 한 아주머니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무슨 일이에요.”


 연락을 받고 온 것 같지는 않았고 차림새도 시장에서 물건 파는 상인처럼 억척스럽지 않고 약간은 품이 귀해 보이는 게 아줌마보다는 사모님에 가까운 차림새였다. - 물론 내가 사는 동네 주변에 진짜 사모님 소리를 들을 만큼의 부유한 사람은 없다. - 화들짝 놀래면서 불이 난 집에 사는 사람인 모양으로 급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일단 말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에 나는 조금 놀랐지만, 소방관이나 경찰들도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제법 화재가 진압 되어서 그런 것이었나 보다. 아마 아주머니는 가족이 걱정되고 집이 걱정 돼서 뛰어 들어갔을 터였다. 나는 순간 아주머니가 도착하기 바로 이전에 건물에서 빠져나온 한 주민이 갓난아이를 손에 안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니, 방에 연기가 가득 차 있었는데 애가 그냥 재워져 있었다니까요.”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소방관들이 도착한지 바로 직전이었고, 같은 집에 사는 주민이 불이 나서 걱정되어 옆집이나 어디 주변에 들렸다가 아이를 보고 구출해 온 듯싶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상황이 떠올라 방금 들어간 아주머니가 걱정한 가족이 그 갓난아이는 아니었나 싶기도 했지만 바로 앞에서 서로를 지나친 것도 그렇고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였기에 갓난아이가 있어 보일 것 같지는 않아 그냥 귀띔 하지 않고 가만히 얼척스럽게 서있기만 했다.


 어쨌든 이 아주머니는 그로부터 한참을 건물 안에 있다가 엉엉 울면서 여성 소방관에게 안내를 받고는 구급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마 그 아주머니의 가족이 구급차에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조용히 그 아주머니가 뛰어간 흔적을 따라가서 골목에 주차된 구급차에 살그머니 다가갔다. 과연, 구급차 안에서는 놀라서 엉엉 우는 아주머니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안도의 울음인지 아니면 정말 누가 다쳐서 내는 슬픔의 울음인지는 확인할 재간이 없었다. 그저 차의 뒷문에 나 있는 유리로 언뜻언뜻 보이는 아주머니의 얼굴과 비교적 무사해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띌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주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다가, 또 주변에 사람들을 인식해서 잠시 기도를 하는 척 하고 다시 불이 난 빌라 앞으로 돌아갔다. 아직까지는 주변에 서성이고 있었고 소방관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202호 사시는 분! 202호에 사시는 분 계십니까?”


 202호는 불이 나고 있는 집이었다. 아마 안에 사람이 있는지, 아니면 귀중품이 있는지를 물어보려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문이 잠겨 있어서 문을 부수겠다는 허락을 받기 위해서 주인을 찾고 있는 사정인 것 같기도 했지만, 곧이어 불이 일렁이던 창문가가 싹, 어두워진 것을 기억하자면 아마 소방관들은 집 주인의 허락 없이 급한 대로 문을 부수고 들어간 듯싶었다. 일단은 불을 끄는 게 확실히 급했을 테니까.


 그렇게 창문에 일렁이던 불길은 점차 사라지고 회백색 연기만이 건물 위로 올라가고만 있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더 쓰자면 그 즈음에 갑자기 옆 빌라에서 창문을 열고 고래고래 욕을 하던 아저씨가 한 명 있었다.


 “야이 씨발 그만 좀 하고 잠 좀 자자. 새벽 1시다.”


 일제히 온 사람들의 시선이 한 쪽으로 몰려갔다. 창문을 열고 한 아저씨가 자다 깼는지 아래를 굽어보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반응이 없으니 잠시 뒤에


 “새벽 1시라고. 잠 좀 자자.”


 한 번 더 소리쳤다. 지나다니던 소방관들도 한 번 슥 보고 말 뿐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밖에 나와 수고한다면서 물통을 건네주기도 했다. 나도 위에다 대고 ‘불이 났다잖아요. 아저씨’하고 면박할 순간만 벼르고 있었지만 4층에서 자다 깬 아저씨는 화재가 난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 같다. 상황판단을 하고는 머쓱해져서 다시 창문을 닫고 돌아가 누웠는지 그 뒤로 잠잠했다.


 “불이 났는데 지 잠 못 잔다고 지랄이고.”


 화를 내는 할머니도 있었다. 불이 났는데 웬 성화냐, 별놈을 다 봤다, 하면서.


*


 얼마 후 불이 완전히 진압되고 소방관이 건물 옥상에서 피난 가 있던 주민들을 무사히 구출함으로써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유독성 가스 흡입과 내화상이 의심되는 몇몇 환자들만이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건물 옥상에 있었던 주민들은 열 명 남짓, 어른도 있었고 아이도 있었고 겨울용 군복-일명 깔깔이-을 입고 있었던 복학생도 눈에 띄었다.


 “아이고,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방금 건물에서 빠져나온 아주머니가 - 이 분은 정말 소탈한 아주머니였다. - 몰려나온 사람들 중 한 분의 손을 잡고 반갑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


 “얘기 듣고 걱정되어서 찾아 왔지.”

 “뭣 하러 여기까지 왔어.”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서로의 이야기는 그렇게 끊임없이 계속 되었다. 또 어떤 분은 전화를 걸고


 “어. 엄마야. 지금 빠져나왔어. 짐 다 챙겨서 계속 엄마(할머니)네 집에 있어. 여긴 냄새 나서 잠 못 자.”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당장의 잘 곳을 정하기도 했다.


 “갑자기 위층에서 지지직 소리가 나더니 냄새가 확 올라오는 거야…….”


 당장에 위협이 가신 사람들은 마음을 풀고 수다를 떨었다. 당사자의 소식에 의하면 누전이 화재의 원인이 된 듯싶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안도했다. 불이 나면 타고 남을 재산, 그러니까 돈이나 가구나 집 같은 것이 걱정으로 밀려올 법도 했지만 이런 난리 통에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왠지 나는 시커멓게 타버린 베란다와 창문을 보면서 마음속 어딘가가 씁쓸해 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빌라가 아니었다. 어쩌면 사고를 낸 집 주인은 집 주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월세, 전세. 이 세상에는 자신의 것이 없어서 빌려 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몸 건사한 것은 다행이지만, 앞으로 다행일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아른 거렸다. 또 해가 하루 지고 내일에 뜨고. 하루하루를 불안불안하게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 내가 처음 본 화재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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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쓴 글이라 그런지 문장이 대부분 긴 듯... 읽기 불편하네. 좀 고쳐서 올려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