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뵐 만 쯤 하면 잠적해버리는 나의 월급 때문에
미루고 미뤄왔던 부모님 보기를 오늘에서야 성사시켰다.
추석은 아직 10일 남았지만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말을 아꼈다. 외갓집에 가는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더웠던 78월이 지나고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하며 천천히 걸었다.
걷다보니 예전에 많이 보이던 담배 피던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도 않았다(아예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자아가 성장한 것인가? 아니다. 정부의 규제가 늘어나서 욕구를 참고있을 뿐이었다. 물론 대개는 늘어난 세금의 액수때문에 자신을 달래는 힘을 부여받았다고 자평할테지만 그것도 금연의 한 방법이라면 나는 100가지라도 다 필요했다.
2.
오늘 드린 전화에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득 부풀은 마음으로 월요일 회사를 나간다.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생이어서 아무것도 모를테지만 그래도 추석만큼은 알고 있다는 듯이 있는 폼을 잡고 있다고 상상을 하곤 했다(집에선 바로 보고)
이건 아직 새 사람이 되기 위한 교육적인 로망을 거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문서작성에서만큼은 basic of masterical한 기분을 가지고 있었다(한컴 쓸 줄도 모르는 주제에 말이다.) 오늘같은 가벼운 월요일은 바깥바람을 쬐며 좋은 담배를 피는 느낌만큼 좋았다.
3.
추석이 오고 아이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같이 가야할 물품들과 선물을 아내와 아이들과 직접 구하기로 했다.
전통시장이 좋다지만 역시나 마트의 선물이 나는 더 기분이 좋다. 마트에서는 고급화된 것들을 많이 제작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배, 감을 골랐고 마누라는 포도를 골랐다. 아이들은 딸기를 먹고 싶다고 해서 나갈즈음 요맘때 딸기 아이스크림을 1개씩 나누어 주었다.
4.
빌어먹을 교통체증은 언제 끝날런지 갈 생각도 없고, 졸리지도 않는데 발로 밟지 못하니 이건 뭐 앞차를 뛰어넘을 수도 없는 상태여 답답했다.
그렇고 그런 계절이 오면 모든 사람들이 고향 생각이 나는 것도 아닌데 이동하는 것은 어른에 대한 예의의 표현이렷다.
우리 민족의 혼을 짓밟히지 않으려면 우리 민족이 가진 것들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한다고 느끼고 그걸 실천하려고 한다.
빌어먹을 교통체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5.
추석이 오고 나는 밖에서 기다리는 중이었고 춥고 떨리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아버지는 문 밖에 나와 있었다.
추석 전전날이기 때문에 음식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고 햇밤 햇과일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문득 '상품권'이나 살걸...그랬는데, 언뜻 스친 생각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냥 현금을 주는게 낫다고 넘겨짚었다.
6.
아이들이 추석날 준비해온 한복을 입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뱃돈을 받는다. 무려 20년 전에는 나도 세뱃돈을 받았지만 그것과 지금 것을 보니 참 감회가 새롭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도록 해주시는 어머니(할머니)와 덕담을 나누던 우리 마누라와 나와 아버지는 까치가 지나갔나 안 지나갔나 재어볼 틈도 없이 이야기 꽃을 피웠다.
7.
추석날엔 어떤 영화를 볼까, 아니 추석특집 방송을 볼까. 감감무소식이던 여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일 때문에 못왔어요. 죄송해요 아버지께 내년 설날엔 꼭 뵙겠다고 말해주세요."
여동생의 스마트한 일거리가 대체 추석의 무엇보다 소중했던 걸까,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이해해줘야겠지.
나같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스타일로서는 이해가 안가지만 드물게 이해가 가는것은 여동생이 같은 핏줄을 타고났기 때문이겠던가(설상 "입양"했더라도 말이다.)
8.
집에 오는 길, 오후 쯤부터 억세게 내린 비로 가득찬 혼잡길을 지나 겨우 뚫고 들어간건 저녁 9시가 되어서였다.
내일은 다시 일을 해야겠지만 역시나 미련을 못버리는건 명절 증후군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던 생각에 준한 것이었을까.
무튼, 나는 일을 한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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