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은 돈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무작정 화폐를 찍어낸다면 인플레이션만 유발할 뿐이죠. 따라서 급속한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해외 투자가 절실합니다. 한국의 경우 해외 투자는 ‘차관’의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59년에서 1975년 사이의 17년 동안 한국에 유입된 해외 투자액의 90%가 차관이었어요. 물론 대부분 미국과 일본이 빌려준 돈이었죠. *1>
이렇게 형성된 개발자금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같은 국책사업에 투입되거나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중화학공업 분야 생산을 담당할 대기업 육성에 쓰였어요. 말이 좋아 대기업 육성이지 이는 곧 일부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어 기업 규모를 삽시간에 불리는 작업이었지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즉 현대 대우 삼성 등의 대기업들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몸집을 키웠습니다. *2> 특혜를 받은 기업들은 보은의 일환으로 정부와 권력자들에게 정치자금을 상납했는데 이것이 바로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가 형성된 배경이었죠.
정경유착은 곧 권력이 특정 기업을 비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한국에서 독점 기업이 활개를 치게 된 계기였어요. 1979년 종업원 수 500명 이상의 대기업 수는 전체의 2%에 불과했으나 이들 기업의 종업원 수는 전체의 43.5%에 달했고 이들 기업이 전체 부가가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4.4%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1977년을 기점으로 3개 대기업이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이는 이들 대기업이 독점할 수 있는 상품의 비율이 90% 이상이었음을 뜻했어요.
상품의 독점 생산은 곧 상품가격을 부당하게 설정해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이들 대기업에 대적할 만한 존재가 국내에는 없었기 때문에 독점가격은 절대로 깨지지 않아요. 게다가 박정희 정권 기 내내 이들 대기업에게는 세금을 깎아주는 특혜까지 더해져 부당하게 취득한 이익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앞서 지적했듯 이들 대기업은 해외 차관을 기반으로 육성되었습니다. 관세도 별다른 세금도 부과되지 않는 자금을 원하는 대로 가져다 쓸 수 있었던 대기업들은 온갖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지요. 그 과정에서 자금 확보의 우위에 있었던 대기업들은 덤핑 경쟁 등의 온갖 불공정 거래를 일삼으며 풀뿌리로 성장 중이던 유망한 중소기업들을 싸그리 짓밟아버렸습니다. 이처럼 박 정권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은 한국 경제의 견실한 기반을 뿌리부터 흔드는 결과를 낳았지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었지만 차관을 되갚는 ‘정상적 경영’을 하는 기업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차관 상환의 의무를 등한시한 채 사업 확장에만 열을 올리면서 더 많은 차관을 얻어낼 뿐이었죠. 이처럼 비상식적 경영이 가능했던 것은 박 정권이 제공한 또 다른 특혜, 즉 ‘지급보증’ 때문이었습니다. 국내 기업에 투자한 해외자본은 차관 상환 기일이 되면 해당 기업을 찾는 대신 한국 정부를 찾았습니다. 정부가 해당 기업들의 빚보증을 선 탓이었죠. 만약 해당 기업이 도산하거나 차관 상환능력을 상실할 경우 그들이 만들어낸 빚은 고스란히 국민 혈세로 갚아야 할 판국이었어요. 이처럼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은 훗날 대우 사태를 통해 현실화되어 국민 경제를 파탄에 빠뜨린 주범이었습니다.
어쨌든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중화학 공업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습니다. 60년대 초반까지 농업과 경공업에 치중돼 있던 한국의 경제 규모에서 이를 감당할 대기업이 존재했을 리 만무했어요. 따라서 박 정권은 특정 기업에 불법적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생산량을 단기간 내에 불리는 편법을 자행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출기업에 대한 관세와 세금 감면이지요. 중화학 공업 제품을 수출하는 일은 그 자체로는 도저히 이윤을 낼 수 없었어요. 따라서 정부는 각종 세금을 감면해 이를 지원할 의무를 미국으로부터 떠안은 셈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지원은 국민 혈세로 감당되어 해당 기업의 이윤 창출을 돕는 데 쓰였죠. 자세히 살펴보면 수출소득세의 50%가 감면되었고 영업세, 수출용 원재료의 수입관세, 수출 생산용 자본설비의 수입 관세 등이 모두 면제되었습니다. 또한 수출시장 개발비와 수출 결손금에 대한 과세를 유예해 주거나 수출품 생산 설비의 감가상각비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수출기업의 편의와 이익을 제공했습니다.
수출기업이 받은 또 다른 특혜는 융자 우대 정책. 60년대 이후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당시 한국 경제는 인플레가 만연한 상태로 자금 확보가 쉽지 않았죠. *3> 따라서 은행 이외의 사채시장 규모도 무시할 수 없었지요. 보통 사채시장의 금리는 연 40~60%에 달하는 수준이어서 은행권을 통하지 못한 일반 기업들의 자금 동원에는 여러 모로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특혜를 받은 수출기업에 적용되는 금리는 최저 3%에서 최고 10% 안팎이었습니다. 사채시장을 기준으로 할 때 일반 기업에 비해 최소 4~6 배의 이득을 볼 수 있었으며 이자율로만 따지면 최고 70%에 가까운 불로소득을 챙길 수 있는 구조였죠.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특정 기업에 대해 수출보조금을 지급하고 철도 운임 및 전기요금을 할인해 주었으며 특정 상품을 특정 지역으로 수출할 때 독점권을 부여하고 수출입 은행을 개설해 각종 융자의 편의를 제공하는가 하면 ‘종합상사 조성조치’와 같은 특별법을 마련해주는 등 수출기업이 규모를 확장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엄청난 혜택을 제공했습니다.
정부의 이같은 무차별적 지원은 물가를 폭등시키고 세금부담을 증가시키는 등 민중의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는 박정희 정권기의 조세구성을 통해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일반시민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간접세와 기업과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직접세의 비율은 1970년 ‘64.1% : 35.9%’이던 것이 1975년에는 ‘72.1% : 27.9%’로 나타납니다. 민중의 세금부담이 증가한 반면 기업의 조세 의무는 이윤이 늘어날수록 가벼워졌던 셈이지요.
이와 같은 특혜들을 받아먹은 기업들은 정권에 정치자금을 갖다 바칩니다. 이렇게 조성된 정치자금은 당시에 만연해 있던 금권선거에 살포되거나 반대세력 탄압에 악용되기도 했던 정보조직들의 운용 자금은 물론 박정희와 측근들의 사익을 채우는 데 사용되었지요.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당연히 존경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수성가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정부의 특혜를 받은 일부 기업이 정치권과 결탁해 부를 축적하고 그들과 라인을 형성한 일부 세력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활동범위를 확장해 온 것이 우리 자본주의 역사의 주요한 축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부가 세습되고 정당한 부의 재분배가 제도적으로 제한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역사였습니다. 요즘 삼성그룹의 실적이 부진하다고 하는데요. 삼성이 망하면 한국의 경제 자체가 휘청거리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삼성이 잘 된다고 해서 일반 대중에게 그 효과가 돌아오는 구조는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한국의 재벌이 서민 계층의 희생을 밟고 자라 왔다는 겁니다.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구체적 양상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대부분 구체적 양상은 모르실 거예요. '한강의 기적'이란 식으로 에둘러 표현될 뿐이지요.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 자세한 사정을 밝히면 당연히 '현재의 핵심세력'에게 불리하기 때문이에요. 경제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수록 그들에겐 유리할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모든 부자가 나쁜 놈은 아니지만 우리 수준을 우습게 초월하는 한국 부자들의 대다수는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지금의 부를 척적해 온 게 사실입니다. 그들이 소시오패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들이 진정으로 정당하게 현재의 부를 축적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겁니다.
*1> 미국은 차관의 대가로 베트남 파병을 요구했고 일본은 국교 정상화, 즉 대일청구권의 완전 소멸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한국 경제개발의 핵심적 요소였던 해외차관은 미국의 용병국가로 전락하는 동시에 제국주의 침략과 수탈의 유무형적 피해를 ‘빌린 돈’으로 보상받는 것을 대가로 한 셈이었습니다.
*2> 가령 삼성그룹의 계열사였던 제일합섬은 공장 건설을 위해 차관 350만 달러, 외화대부 650만 달러, 은행융자 80억원 등을 끌어다 썼습니다. 자기 자금 투입은 17억원에 불과했죠.
*3> 수출기업에 대한 융자 우대 혜택은 다음의 9가지 정책에 이릅니다. 1. 수출저리융자 2. 환불자금에 의한 수출조성기금 융자 3. 수출용 자재수입에 대한 융자 4. 미국 군용물자 조달업자에 대한 융자 5. 중소기업 수출산업화 기금 6. 수출산업 조성기금 7. 외국화폐 대부 8. 농수산품 수출준비기금 9. 수춘 신용 공여
대학생 때부터 최근까지 이어 온 '안티박정희' 시리즈 일부를 대강 편집한 글입니다.
전두환이 많은 문제를 해결함
그런가요..제가 알기론 두 차례 오일쇼크에서 비롯된 중화학공업 발 경제위기를 전두환이 일본에 방문해 차관을 가져오고 한국중공업을 공중분해하면서 그걸 현대 삼성 대우가 떠안는 방식으로 해결한 건데..이 방식은 미봉책이었다고 봅니다만..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개발독재의 폐해를 해결했는지 들려 주시겠습니까?
참고로 제가 알기론, 2차 오일쇼크 직후의 공장 가동률은 30%대였습니다.(미만인지 근소한 초과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요) IMF 사태가 극심했을 때보다 더 저조한 상황이었던 걸로 압니다. 이처럼 70년대 말의 경제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기에 상대적으로 전두환 정권의 경제정책들은 후한 평가를 받는 편입니다.
아직까지는 미국과 일본을 축으로 한 '지역통합전략'이 유효했던 터라 해외자금 유입이 수월했던 면도 있지요. 더군다나 80년대는 3저호황의 시대였죠. 이런 외부 요인들을 제거한 다음에 남는 '전두환 효과'가 무었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지에 따라 사태 파악 내지 해석은 얼마든지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