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전장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태양은 지평선에 가까워졌다. 진한 노을은 그 끝에 넓게 흩뿌려진 채로 몰락을 위로하고 있었다. 땅에 떨어진 태양은 마치 폐왕 같았다. 그의 빈 왕좌는 밤이 차지할 것이었다. 막막한 어둠을 토하며. 하지만 낮의 잔해는 별빛으로 남는다. 그 자그마한 빛의 부스러기들은 영광스런 시대를 기억할 것이다. 밝은 대지와 선명한 낮을. 그래서 밤이 새벽에 패퇴하고 나면 또 다른 태양이 뜰 것이고, 날이 다하면 또 다른 밤이 스민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무엇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끊임없는 혁명과 격동, 반복되는 구시대의 종언이 중요하다. 그리고 거기에는 광란과 분노와 증오, 전장의 매캐한 포연, 어지러운 유황의 향, 또 죽음이 필요한 것이다. 새 시대를 위해.
사수는 다시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스름이 깔린 허공 속에서 붉은 과녁을 찾아야 했다. 포연 때문에 시계가 닫혔다. 마치 뜨거운 구름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도저히 육안으로는 상황을 판단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폭음이 울렸다. 기체가 날개와 꼬리에 당해 박살나는 소리. 폭약이 딱딱한 비늘 위에서 의미 없이 터지는 소리. 이따금 들리는 다른 사수들의 총성, 그리고 기분 나쁜 으르렁거림. 놈의 날갯짓이 내는 난기류를 견디기 위해 기수는 미친 듯이 조종간을 틀어 댔다. 2인승 경비행기가 강하게 요동쳤다.
사수는 기체 오른쪽 끄트머리를 굳게 딛고 왼팔로 편백나무 뼈대에 매달려 전장을 계속 응시했다. 그러나 놈의 윤곽을 다시 그리기도 전에 바로 옆으로 불타는 기체 하나가 나선을 그리며 추락했다. 깨끗이 외면해야 했지만 힐끗 쳐다보고 말았다. 절망적인 표정으로 곤두박질치는 기수와 눈이 마주쳤다.
얼마나 죽어 가고 있을까. 다른 사수들은 살아 있을까. 몇이나 남았을까. 위를 올려다보자 거대한 전장을 지휘하는 부유선이 보였다. 돛 대신 열기구와 프로펠러로 공중에 떠 있는 대형 갤리온. 아직은 타격을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놈이 수백 대 경비행기들의 견제를 뚫고 부유선을 향해 솟구치기라도 한다면 사냥은 고사하고 전부 끝이었다.
기수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사수는 그의 공포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작열하는 불길이 기체 바로 밑까지 닿아 있었다. 당황하지 않아야 했다. 기수를 믿고 머리를 찾는다. 불길이 북서 아래. 다행히 기수가 기체를 오른 쪽으로 급선회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제 서쪽 아래. 사수는 요동치는 기체 위에서도 능숙하게 반대편으로 위치를 옮겼다. 가까스로 피한 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짙은 포연 사이로 거대한 것이 꿈틀거렸다.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놈이 으르렁거렸다. 불길이 샜다. 주둥이를 찾았다.
사수는 더 집중했다. 다시 윤곽을 그렸으니 사납게 날뛰는 대가리를 계속해서 주시해야 했다. 전투를 끝낼 자그마한 과녁을 찾아서. 다행히 기수는 베테랑이었다. 좌표를 다시 확정했을 것이다. 놈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기수에게 거리를 유지할 것을 부탁했다.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좋다고도 덧붙였다. 기수는 온갖 욕지거리를 뱉으면서도 조종간을 꺾었다. 기체는 점점 놈의 대가리로 가까이 다가갔다. 날개는 한참 뒤편에 있으니 조심할 것은 꼬리와 불길뿐이다. 아까부터 꼬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다행히 후미의 소대가 확실히 맡아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불길은 이제 주시할 수 있으니, 남은 건 하나, 전장의 붉은 종점.
사수는 놈의 거대한 윤곽을 놓치지 않으면서 총을 들어올렸다. 왼팔을 나무 뼈대에 바싹 감아 몸에 붙인 채로 왼손 검지를 방아쇠에 올렸다. 자유로운 오른팔은 현기증 나는 진동 속에서도 조준을 유지해야 했다. 아직은 조준경에 눈을 붙이지 않은 채, 사수는 계속해서 놈을 응시했다. 시선만으로 끝내겠다는 듯이 매섭게. 네 달 만에 다시 만난 녀석이었다. 이번엔 매듭을 지어야 했다.
갑자기 길쭉한 대가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약간의 돌풍이 일었다. 으르렁거림이 멈췄다. 사수는 첫 패배를 가까스로 기억해 냈다. 오싹한 소름이 끼쳤다. “기수! 떨어져! 귀 막아!” 기수는 즉각 반응했고 기체가 솟구쳤다. 사수는 편백 뼈대를 꽉 안고 온 힘을 다해 귀를 막았다. 놈이 고개를 내려 까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쳐들며 놈은 크게 포효했다. 가까이 있던 기체들이 기압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 위치에서 조종간을 놓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그들은 어지런 나선을 그리며 저 아래로 추락했다. 어림잡아도 수십 체였다. 추락은 피했어도 귀를 막지 않았다면 잠깐 동안 고통스런 고요가 찾아올 것이었다.
사수는 놈과의 첫 전투에서 저 포효에 참패를 맛본 적이 있었다.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그의 경험을 비웃듯 믿기지 않으리만치 강력하고 빠른 템포의 포효가 들이닥쳤다. 하루 하고도 반나절에 걸친 기나긴 전투는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엔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궁지에 몰렸음을 놈이 스스로 드러낸 꼴이었다. 게다가 포연도 걷혔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시계가 트였다.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저녁 어스름에 드러났다. 검붉은 비늘, 앙다문 주둥이, 누런 이빨. 악마의 날개, 긴 가시 꼬리. 그리고 쭉 째져 번득이는 황금빛 눈, 세로로 날카롭게 박힌 검은 눈동자.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주둥이부터 꼬리 끝을 한 눈에 담을 수가 없을 정도로 놈은 거대했다. 그러나 드디어 사수의 눈에 들어온 붉은 점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없었다.
“찾았다. 다시 가까이.” 기수는 포효에 질린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조종간을 앞으로 밀었다. 기체가 흩어진 포연을 뚫고 빠른 속도로 낙하했다. 놈의 이마에서 과녁이 빛나고 있었다. 사수는 다시 총을 들었다. 그리고 조준경에 눈을 붙였다. 목표는 분명했다. 요동치는 기체에도 불구하고 사수의 오른팔은 허공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점은 금방 가까워졌다. 조금만 있으면 사거리다. 방아쇠에 닿은 왼손 검지가 묘하게 떨렸다. 사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다섯. 놈은 그가 봐 온 것들 중 제일 거대한 놈이었다.
넷. 세 번이나 패배했다. 이번이 네 번째.
셋. 두 번째로 패배할 때에 놈은 마지막이라는 칭호를 달았다.
둘. 환상의 시대는 이제 끝이다.
하나. 문명, 기술, 인간, 바로 인간의 시대다.
총성이 울렸다. 정교한 강철 탄환이 그의 총구를 떠났다. 그리고 명중했다. 그러나 조준경 너머로 본 붉은 보석은 약간의 흠집이 났을 뿐 멀쩡했다. 사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세 그대로 다음 한 발을 준비했다.
그 때 거대한 눈깔이 왼쪽에서 튀어나와 조준경의 좁은 시야를 가렸다. 세로로 길쭉한 새까만 눈동자에 압도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겨우 조준경에서 눈을 떼자 놈의 한 쪽 얼굴이 보였다. 눈동자는 곧바로 그를 향하고 있었다. 시선이 기묘하게 마주쳤다.
그러나 어둠의 입구와도 같은 까만 동공엔 공포나 증오는 없었다. 오히려 거기엔 생기와 의지로 가득했다. 모든 것을 똑똑히 알고 생각하는 눈. 수백 대의 하찮은 날것에 둘러싸여 저녁 하늘 한가운데서 공격받는 일은 어떤 것인지. 언제부턴가 시작된 사냥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낮과 밤이 바뀌는 이 순간 왕좌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 모든 것을.
이해 못 할 신념으로 가득한 놈의 눈빛에 사수는 얼어붙었다. 부유선의 퇴각 신호를 들은 것은 기수뿐이었고 그는 명령에 따라 기체를 틀었다. 사수는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관성에 휩쓸렸다.
그는 아래로, 아래로 추락했다.
말하자면 한 박사의 발명이 모든 것을 바꿔 놓은 셈이었다. 신화와 전설, 마법 그리고 비밀이 지배하던 세계에 갑자기 기계가 탄생한 것이다. 미지의 영역이 줄어들고 불가능이 사라져 갔다. 세력 균형은 깨졌다. 혹자는 발전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라고 이야기했고, 그건 꽤나 타당했다. 박사의 공화국은 전쟁을 시작했다.
사수는 공화국 저격수였다. 탄환은 사람의 감각보다 빨랐다. 마법사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사수는 느려터진 그들을 저격했다. 시대를 지배했던 힘이 자그마한 납덩이에게 왕좌를 빼앗긴 건 순식간이었다. 그의 탄환에 수백 명의 마법사가 목숨을 잃었다. 저격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선 채, 비명도 없이 찰나에. 그리고 마법 없이 공화국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인간은 통일되었다. 전쟁이 끝날 즈음엔 그는 공화국의 영웅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연 주역이라는 칭호는 달콤했다.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마법 대신 과학이 사람들의 생활을 완전히 차지했다. 라이터, 재봉틀, 전등,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 증기선, 온갖 장치들은 마법보다 효율적이었다. 기계의 톱니바퀴들은 마법의 잔재를 싸그리 갈아 없애려 했다. 마녀 사냥이 사회를 휩쓸었고 마법사는 말살 당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산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과학과 기술, 진보한 인간의 시대였다.
그리고 사냥이 시작되었다.
미지의 영역은 개척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환상의 베일에 가려 있던 모든 곳이 파헤쳐졌다. 신화와 전설의 주인공들은 사냥 당했다. 굼뜬 엔트들, 멍청한 트롤들부터 유니콘이나 와이번, 혹은 요정들까지. 그중 몇은 노예 시장에 팔렸다. 긍지를 건 저항이 몇 차례 있었지만 1년 만에 모두 끝났다. 그들의 피로 인간의 지도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구시대는 깨끗이 지워지나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흔적 하나가 남아 있었다. 세상 가장 고고하고 강력한 존재. 모든 것이 창조될 때부터 세계를 떠받치던 권력과 힘의 상징. 온갖 조화를 부리며 최강자로 군림해 온, 마법과 환상의 정점. 수천, 수만 대의 비행체들이 전시대의 완전한 종언을 위해 날아올랐고 그 중에 사수가 끼어 있었다.
사수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첫 조우를 떠올렸다. 말로만 듣던 환상의 존재를 직접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사냥꾼의 시선이었지만. 첫 사냥감은 부유선이 투하한 폭탄에 명중당해 한 쌍 나란히 고꾸라졌다. 그는 그 때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왕좌는 인간의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존재라도 구시대의 유물인 한, 신시대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5년이 다 되어 갔다. 놈들은 전설과 달리 싸워 볼만 했다. 이기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었다. 끈질기게 괴롭혀서 힘을 다 빼 놓든가, 강력한 한 방을 날려 땅으로 끌어내려 버리든가. 만만치 않은 놈이라면 이마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힘의 원천을 박살내 버리면 되었다. 사냥꾼들은 그것을 ‘종점’이라 불렀다. 사수들의 역할은 종점을 쏘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일곱 개를 쏘았다. 공화국 최고였다.
하지만 강렬한 눈빛이 낙하하는 의식 속으로 솟아올랐다. 거대한 날개가 하늘을 덮었다. 놈은 그 어느 녀석들보다도 강했다. ‘마지막’이라는 칭호는 괜한 게 아니었다. 공화국 모든 사냥꾼들이 몰려들었다. 놈은 어느새 구시대 자체를 상징하고 있었다. 이 마지막 사냥을 끝내는 자가 바로 구시대의 종언을 선고하는 영광을 거머쥘 것이었다. 그러나 사수는 네 번이나 실패했다. 놈의 눈깔이 묻는 듯했다. “네가 과연.”
그는 요동치는 의식 속에서 나선을 그리며 끊임없이 아래로, 아래로 낙하했다. 추락하는 와중에도 노을은 절정이었다. 태양은 이미 왕좌에서 쫓겨나 지평선에 걸려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비로소 새 시대가 완성될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는 끊임없이 추락해야 했다. 노을의 붉은 빛이 점점 진해지더니 놈의 핏빛 보석이 되었다. 새빨간 광채가 지평선 끝에서 뻗어 나와 추락하던 그를 삼켰다.
사수는 추위를 느끼며 벌떡 일어났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 바닥이 거칠고 딱딱했다. 거센 찬바람을 봐서 동굴은 아니고, 어딘가의 절벽이리라. 손을 더듬어 주변을 가늠했다. 평평한 바위가 꽤나 넓었다. 차가운 총신이 만져졌다. 이상했다. 총을 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 때 위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수는 긴장했다. 총을 침착하게 들어 음원을 향해 겨눴다. 그리고 방아쇠에 왼손 검지를 올리는 순간,
“깨어났군.”
갑자기 주변이 환해졌다. 빛이 뿜어져 나왔다. 황량한 현무암 지대였다.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뿜으며, 맞은 편 정상에 놈이 있었다.
“여긴 어디지?”
사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희 나라 한참 밖이다. 하지만 좀 있으면 그 조그만 날것들이 올 거다. 방향을 바꾸지 않았거든.”
놈은 입을 열지 않았다. 목소리는 그의 마음속에서 들렸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내가 너를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나를 살려 줬다는 말인가?”
“네 번 정도면 충분하니까.”
사수는 마지막 순간에 시선이 마주쳤던 것을 떠올렸다. 그 때 놈은 그를 알아본 것이 맞았다. 아마 곤두박질치는 그를 발톱으로 낚아채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놈은 대답 대신 주둥이에서 불길을 흘리며 끽끽댔다. 웃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궁금한 것이 많군. 모든 것에 인과가 있다고 생각하나 보지. 하긴, 그게 기계의 방식일 테니.”
“아무 이유가 없다는 말인가?”
“너희들의 시대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사수는 당황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인간이 진보했기 때문이지.”
“어떻게?”
“기술은 환상과 마법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박사가 최초의 기계를 발명했으니까.”
“그 박사는 왜 기계를 발명했단 말인가. 꼭 기계가 탄생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
“.......”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 놈은 말을 계속했다.
“그 박사라는 인간이 공부하고 상상해서 기계를 만들어낸 것이 과연 필연일까? 차라리 우연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들의 시대는 우리가 만든.......”
“아니, 우연이다. 거기에는 어떤 인과도 없어. 단지 뭔가는 일어나야 했을 뿐.”
놈은 날개를 한 번 퍼덕였다. 광풍이 불었다. 사수는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고 버텼다.
“낮과 밤이 반복되는 것에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시간이 흐른다는 것 자체인 것이다.”
“사냥감의 핑계일 뿐이야.”
사수의 발언에 놈은 고개를 위로 쳐들고 크게 웃었다. 날숨에 불이 섞여 나왔다. 실컷 웃고 나서 녀석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커다란 얼굴이 가까워졌다.
“나는 너희를 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아. 아니면 네 녀석을 살려서 말동무로 삼고 있지도 않겠지. 크나큰 착각을 하는군. 재밌는 일이야.
사냥할 테면 사냥해 보라는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저항할 뿐이다. 이를테면 노을과도 같이. 구시대는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지. 하지만 그 몰락의 순간에도 하늘은 어느 때보다 붉게 타오른다. 내가 맡는 건 바로 그 종언의 순간이다.
내가 분노하고 증오할 거라 생각한다면 완전한 오산이다. 밤이 하늘을 집어삼켜도 결국 새벽은 오고 또 다른 낮이 온다! 아무도 그걸 거스를 수는 없어. 수많은 왕이 왕좌에 머물다 갈 뿐이다. 항상 왕좌는 그대로 있겠지. 너희의 시대는 그냥 그렇게 열린 것이고, 우리의 시대도 그냥 그렇게 져버린 것뿐이다. 무슨 일인가는 일어나야 했음에. 거기에 무슨 원한이 필요하지?”
말하는 사이에 지평선 한 쪽 끝에서 희미한 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새벽이었다.
“봐라. 새벽이 밝아온다. 너희에게도 새벽은 찾아올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노을을 장식하겠지. 온 힘을 다해! 내 시대를 기억하며!
네 녀석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너희 다음 시대가 올 때 그 찬란한 여명 속에서, 분노나 증오 없이, 온 힘을 다해 시간을 받아들여야 함을 말이다.”
놈은 말을 마치고 거대한 날갯짓을 시작했다. 사수는 광풍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바닥에 바싹 엎드려야 했다.
“다섯 번째에는 마침표를 찍어 보거라. 나는 이미 약해져 있다. 하지만 끝까지 날뛸 것이다. 과연 네가 성공할 수 있을까? 어디 한 번 제압해 보거라, 나, 구시대의 제왕을!”
온 몸에 힘이 풀린 채, 사수는 멀어져 가는 제왕을 바라봤다. 흐릿한 감각 사이로 비행선 몇 대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푸른색은 아닌, 그렇다고 새까맣지도 않은 색이 하늘 한 쪽 끝에 물들어 있었다. 잔잔한 여명을 응시하며 그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다섯 번째 사냥은 세 달 뒤에 놈이 공화국 국경에 다시 나타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 새 삼일 째 밤이었다. 부유선의 거대한 서치라이트가 사냥터를 통제했다. 작은 전조등을 장착한 경비행기들이 전장을 계속해서 날아다녔다. 놈은 어느 때보다도 강렬히 발악했다.
사수는 언제나처럼 기체 목근에 매달려 종점을 조준했다. 이번에야말로. 기수는 그의 말에 따라 놈의 위에서부터 대가리를 향해 따라붙고 있었다. 한밤중에도 빛을 잃지 않고 새빨갛게 빛나는 종점이 조준경의 시야 안에 들어왔다. 지난번에 남긴 흔적은 그대로였다. 사수는 다시 숫자를 셌다.
다섯. 다섯 번째 기회가 왔다.
넷. 이제 다음은 뭘까.
셋. 지금 총을 쏘지 않는다면 구시대는 연장되는 것인가. 그러면 인간의 다음 시대도 늦춰지는 것인가.
둘. 그렇지 않다. 시간은 흘러간다. 나는 지금 선택권이 없다. 왕위를 인간에게로. 어쩔 수 없이.
하나. 이제 끝이다, 구시대여. 하지만 기억하겠다. 걷잡을 수 없는 시간의 격류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너희 구시대를 기억하는 것밖엔 없다.
그리고 총성이 울렸다.
그날 밤에는 유난히 별이 밝았다. 사수는 탄환이 명중하는 순간 붉은 보석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봤는데, 그 파편은 중력을 거슬러 허공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부대 야영지로 돌아가는 길, 그는 붉은 별 몇 조각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막 타오르기 시작한 듯 강렬하게 빛났다. 구시대를 기억하는 것이 혼자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에 사수는 그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결국 왕위는 계승되었다. 다음 왕이 누구일지 그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인과율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야 묵묵히 여명을 기다리는 것만 못했다.
사냥꾼들이 그를 헹가래 쳐 줄 때마다 별이 가까워졌다. 사수는 제왕의 의지를 느꼈다. 한 번, 두 번, 밤하늘로 떠오를 때마다 그는 물었다. 제왕이여. 폐왕의 무게를 짊어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시대의 마지막을 경험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일인가. 과연 우리는 그대처럼 의연하게 여명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겨우 하루를 끝냈는데, 거스를 수 없는 새벽이 올 때면 나는, 이 작은 나는 도대체 어떻게.
둘째 줄 ------ 태양은 지평선에 가까워졌다 <--- 그대가 지평선을 못 봐서 그래. 딱 둘째 문장에서 그만 태양이지평선에가까워진 거 있죠?
더한 흠집은 아니나다를까 다음 몇 줄이야. 무협지 쓰냐.
ㅀ// 첫문단은 모든 곳에서 다 까이고 있거든요? 그 다음은요~? 헤헤
(아니 단지 무대가 중국 같아서)(그럴 뿐)(무대가 너무 넓으니까)(그게 무협지 아니겠느냐)(그럴 뿐)(쓸데없이 넓어요.)
ㅀ님 항상 말 너무 어렵게 하세요 ㅠ 무튼 고맙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