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렷을 적부터 겨울이 되면 바닷가에 오고 싶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폐부를 찌르는 소금기 섞인 찬 공기와,
조금은 얼어있어 밟으면 묘한 감촉을 느낄 수 있는 모래,
바람 사이로 들리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좋았다.
전역을 한 달 앞둔 2013년 2월, 말년휴가를 나오자마자 홀로 찾은 곳도 역시 바닷가였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겨울이었다.
마치 설국에라도 온 듯 해변은 온통 눈밭이었다.
파란 바닷물에 하얀 눈이 사뿐사뿐 가라앉고 있었다.
1시간 정도 정처없이 돌아다니다보니 운 좋게도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출출해진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와 종이컵, 담배 한 갑, 싸구려 과자 한 봉지와, 컵라면을 하나 사 방파제 옆에 걸터앉았다.
저 멀리서 낚시를 하는 몇몇 사람을 빼면 아무도 없었다.
뜨거운 국물과 소주가 몇잔 들어가자 취기가 오르며 몸이 따뜻해졌다.
가족들과 친구들,
일병 때 이별을 고한 유정이,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동고동락을 한 전우들...
한 달만 있으면 나도 푸른 군복을 벗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구나.
많은 생각이 머릿 속에서 명멸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금세 어두워졌다.
과자와 술도 다 먹었겠다, 낮에 봐둔 여관으로 가 잠을 청할까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옆에 서 있었다.
흰 얼굴의 창백한 남자였다.
불쑥 육포 몇 봉지와 소주 한 병을 내밀며 말했다.
“저도 바닷가에서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같이 한 잔 하시겠습니까?”
어찌할 줄 몰라 엉거주춤 있는데 그 남자가 계속 말했다.
“저는 요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여기엔 통 외지인들이 안 오는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는 될대로 돼라는 생각으로 통성명을 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받아 마셨다.
남자는 근처 잔가지를 몇 개 들고와 능숙한 솜씨로 모닥불을 피웠다.
몸이 따뜻해 지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남자에게 왜 여기 왔는지 술기운에 떠들기 시작했다.
“아~ 안 그래도 머리가 짧다 생각했는데 군인이셨군요. 그럼 어느 부대에 계신건가요?”
“저는 육군 O사단 수색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수색대요! 어쩐지 몸이 너무 좋으시다 생각했는데, 힘든 부대에 계셨군요. 거기 부대는 어떻습니까? 전우들끼리 친하게 지내나요?”
“그렇죠. 워낙 훈련이 힘들다보니까... 오히려 부조리 같은 건 없고 병사들끼리 좀 뭉치면서 친하게 지냅니다.”
“하하 그렇군요. 아니 근데 말년휴가 나왔으면 친구들하고 만나서 파티라도 할법한데 왜 혼자 바닷가에 오셨습니까.”
나는 어렷을 적부터 겨울 바다가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 내가 왜 겨울 바다를 좋아하는 지 따위를 신이 나서 설명했다.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담아 건배한 뒤 한입에 털어 넣었다.
내 담배를 한 까치 주고 나눠 물었다. 푸르스름한 연기가 밤 하늘로 솔솔 피어올랐다.
한참을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창백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는 겨울바다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겨울 바다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에 사귀었던 애인인가요?”
내가 실없이 농을 던졌지만 남자의 얼굴은 진지했다.
“아니오 군대 선임입니다.”
“선임이오?”
“네 제가 겨울밤 해변가 초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을 때 저에게 진정한 전우애를 알려준 선임입니다. 다른 부대에서는 결코 체험할 수 없던 전우애...”
“전우애라면..?”
남자는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멈추곤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닙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한 것 같군요.”
얼핏 남자의 눈에 반짝 눈물이 고인 것만 같았다. 남자가 슥 일어나더니 모닥불을 껐다.
“시간이 많이 지났군요. 그만 숙소로 돌아가 주무시죠. 오늘 즐거웠습니다.”
나는 남자가 말한 전우애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으나 그냥 남자를 따라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저 앞 도로에서 택시를 잡으면 시내로 금방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근처에 사니까 택시 잡는 것 까지 보고 들어가죠,
한적한 해변가 도로인 탓에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았다. 나는 계속 손을 들어 택시를 잡으려 했다. 저 멀리 택시 불빛이 보이는 듯했다.
아니 그건 택시가 아니라 하얀 봉고차였다. 실망을 하고 손을 내리려는 순간
봉고차가 끽 우리 앞에 섰다.
봉고차에서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 세명이 내렸다.
2월의 추운 겨울 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붉은 팬티 한 장에 팔각모자만 쓰고 있었다.
나는 이 비현실적인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안이 벙벙했다. 그 때 나를 바래다주던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박철곤 해병님! 필! 승!”
세 무리 중 가장 앞에 있는 붉은 팬티가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어디 땅굴에라도 있다 나온 듯 온몬이 흙투성이었다.
한참을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깊고, 낮고, 울리는 목소리였다.
“아쎄이... 전역 후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이 해변을 방황하고 있다고 들었다...!”
남자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박철곤이라 불린 붉은 팬티 남자 역시 눈시울이 팬티 만큼이나 붉어졌다.
“아쎄이.. 전우애를 준비하라...”
남자는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철곤 해병은 남자의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내곤 엄지를 쭉 빨았다.
남자는 바지를 벗고 자신의 양손으로 둔덕을 벌렸다.
나는 이 광경에 경악해 말문이 막혔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두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박철곤 해병의 포신은 거대했다. 다른 사람의 허벅지 만큼이나 두껍고 단단했다.
박철곤 해병은 남자의 둔덕을 향해 돌진했다.
허리는 점점 빨라졌고 두 명 모두 울음 섞인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싸워서 이기고 지면은 죽어라 헤이빠빠리바 헤이빠빠리빠!
나머지 빨간팬티 두명 역시 무엇에라도 홀린 듯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그들의 소위 ‘전우애’가 절정에 달했다.
따흐흑 따흐윽
부라보! 부라보! 해병대!
그렇게 ‘전우애’를 끝낸 두 명은 ‘해병짜장’ ‘올챙이크림’ 같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서로의 젖은 몸을 혀로 핥아 청소했다.
나는 온몸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박철곤 해병은 나에게 눈을 돌린 뒤 남자에게 물었다.
“아쎄이,, 저 아쎄이는 누군가..?”
남자가 나와 해변에서 만나 함께 술을 마신일을 얘기했고, 현역 육군 수색대 병장이라고 소개했다.
순간 박철곤 해병의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다시 펴졌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기열 땅개님 오늘 제 아쎄이와 함께 술을 마셔주시고,
제가 올때까지 이렇게 붙잡아 주셔서...정말 감사합니다.”
“...”
“감사의 의미로 숙소까지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아쎄이와 할 일이 남아있으니
저 두명의 해병이 봉고차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얼른 숙소로 들어가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모든게 한 순간의 악몽이라면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었다.
다른 두명의 붉은 팬티가 나를 부축해 일으켜세우곤 봉고차로 안내했다.
====
봉고차 안은 이상한 구린내로 가득했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쓸 힘이 없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명의 붉은 빤스는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뒤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창밖을 보니 박철곤 해병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나와 술을 마셨던 남자는 무릎을 꿇고 박철곤 해병의 포신을 탐닉하고 있었다.
박철곤 해병이 나를 향해 뭔가 말을 했지만, 창을 닫고 있어 들리지 않았다.
차가 어두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붉은 팬티들은 아무말이 없었다.
뒤에서 보니 그들의 팔각모에 희미하게 뭔가가 써져 있었다.
‘무모칠’ ‘톤톤정’
사람은 이름은 아니고... 무슨 암호인 것일까...
나는 꾸벅꾸벅 졸며 박철곤 해병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 너머로 그 낮고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마도..
아마도...
“기열 땅개에서 해병이 된 걸 환영한다 아쎄이...” 였던거 같은데..
과연
무슨 의미일까.
해병, 2013년 겨울
봉고차가 긴 터널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 dc official App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