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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697년, 황룡 성분 99할로 구성된 황룡사 69층 오도짜세기합목탑이 빛나고, 아쎄이 69명을 넣어서 만들었다는 해밀레종이 "따흑... 띨따꾸릃..." 소리를 내며 아름답게 울리는 평화로운 신음라이라이오도짜세기합통일왕국의 겨울!


나는 탈영을 하기로 했다.


이 무렵 내가 있던 화랑도에는 기합중의 기합, 짜세중의 짜세 죽지(竹旨) 화랑님께서 낭도를 다스리셨는데, 그분의 곧게 뻗은 대나무와도 같은 화랑 죽창은 낭쎄이(낭도 + 아쎄이라는 뜻) 69명을 동시에 관통할 정도의 날카로움과 단단함을 자랑했다! 당시 딸수중의 딸수였던 나는 매일같이 죽지 화랑님의 우락부락한 죽창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고, 그것이 너무나도 싫었던 나는 마침내 탈영을 결심했다.


무작정 달린 끝에 도착한 고향 마을에서는, 어머니를 만난 기쁨도 잠시, 아아! 도망친 곳에 미타찰은 없는 것인가! 고향 마을의 유력자 익선(益宣)이라는 자가 나를 곧 차출하여 나는 또 그곳에서 땅을 갈아야 했다. 그러나 노예처럼 부려지더라도 죽지 화랑님을 피할 수 있는 사실만으로 나는 기뻤다. 그 정도로 당시 나는 두려웠었던 것이다, 그 분이.


그 무렵, 화랑 호두를 긁으며 여느 때처럼 심심하다는 이유로 화랑도의 모든 화랑, 낭도, 동네 절 주지, 풍출남촌 개울에서 놀던 아이들을 포함한 동네 모든 인원을 집합한 죽지 화랑님께서는 낭쎄이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는 죽창이 우후죽순처럼 거대화하고 있었다!


"득오고곡! 득오고곡! 어디에 있나! 새끼... 하늘같은 선임의 집합에 늦다니, 새끼... 기열!!!" 하고는 방방 뛰며 죽창을 휘두르시니, 낭쎄이들이 하나둘씩 화랑 육전이 되는 모습이 여간 기합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화랑 육전을 씹으며 진정이 되신 죽지 화랑님께서는 '늦는게 아니라 도망친 것이다'라는 생각을 겨우 하게 되셨고, 건방진 낭쎄이를 잡기 위해 홀로 출격하여, 서라이라이벌 시내를 0.69초만에 주파하였다 돌아와 나의 어머니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새끼들! 모두 집합!"


"죽지 화랑님! 이미 모두 집합하여있어서 굳이 다시 집합시킬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려드려도 되는 것을 허락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


빡깡!


건방지게 선임의 찐빠에 티를 낸 박강막쇠(朴强幕金) 낭도의 육체를 죽창 안으로 흡수시켜, 체내의 모든 액체를 빼내는 가벼운 징계 이후, 죽지 화랑님께서 친히 화랑 죽엽청을 내어 주시니, 이 어찌 기합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겠는가!


"새끼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득오고곡 낭도가 납치된 상황 같군! 사악한 익선이라는 자가 강제 노역에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내가 노역에 동원된 것은 화랑도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일이었지만, 그의 화랑 지능으로 이 사실을 이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저런 사악한 새끼가 다 있나!", "강제노역이라니, 정말 끔찍하군.", "어떻게 강제로 사람을 끌고 간다는 말인가!" 하는 자못 골계스러운 상황이 잠깐 연출되었으나, 지금이야말로 화랑도가 그 뜻을 크게 세울 때, 죽지 화랑님을 앞으로 하여 서라이라이벌에서 자발적으로 징발된 예비 낭쎄이 169명, 그리고 낭쎄이 74명이 함께하여 진군을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내가 있는 마을 모량리에 그들이 도착했을 무렵, 이 때 나는 이미 멀리서 풍겨오는 개씹썅똥화랑내를 맡고 기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후의 상황은 내가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한다.


죽지 화랑님께서는 우선 친절히 익선에게 다가가 화랑 설병(기열싸제용어로는 비듬 더미)과 화랑 죽엽청을 제공하며, 익선에게 득오고곡을 돌려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익선은 혼절을 간신히 참으며, "야 이 똥게이새끼들아, 얘는 너희들이 싫어서 온거야. 너희가 아무리 이렇게 끔찍한 오물로 나를 고문해도, 일단 내 병사로 동원된 녀석을 돌려줄 순 없다!" 라고 호통을 쳤는데, 죽지 화랑님께서는 껄껄 웃으시며, '화랑 진미'의 맛을 모르니 그럴 수 있다며, 낭도들에게 일단 익선을 배불리 먹이라고 시켰다.


낭도들이 그의 팔을 붙잡고 그의 입에 화랑 진미를 집어넣자, 익선은 죽엽청의 맛에 취했는지 눈을 까뒤집고,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그리고 없는 구멍도 생기며 화랑 수박화채를 뿜는 것이었다.


"새끼! 기열 민간인이 이런 산해진미를 먹을 일은 없지. 놀라서 기절할 정도인가 보군." 죽지 화랑님은 여전히 평정을 유지하시며, 자비롭게 그가 깨어날 시간을 기다려 주셨다.


이 때, 마침 주변을 지나던 모량리의 세금과 화랑도의 경제를 책임지는 긴파의(緊播意 : 긴급히 자금을 조달할 뜻을 전하다)의 달인 간진(侃珍)이 간언하기를, "기열싸제민간인이 화랑 진미를 갑자기 먹으면 놀라서 정신을 못 차리는건 당연한 일, 우선 기열싸제음식을 먼저 먹여야 합니다." 라고 하며, 즉시 모량리 주민들에게 곡식 29+1섬을 '자발적'으로 징발해 오니! 여간 기합이 아닐 수 없었다.


드디어 죽음에서 깨어난 익선은 그의 앞에 좁쌀 29+1석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며, 이번엔 또 어떤 닝기미썅같은 지랄을 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하하! 익선, 아까는 화랑 진미의 맛을 모르는 자네를 생각하지 못했네. 내 자네를 생각하여 싸제음식을 가져 왔으니, 부디 많이 드시게!" 죽지 화랑님께서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익선을 보았으나, 그로서는 시발 도저히 생 좁쌀을 어떻게 먹으란 건지 모르겠었으나, 옆에서 살인 미소로 쳐다보는 죽지 화랑님을 비롯한 696명의 낭쎄이들의 압박에 못 이겨, 좁쌀을 으적으적 씹기 시작했다.


"하하! 아직 한 홉밖에 먹지 않지 않았는가! 999홉이 더 남았으니 안심하시게!"


그러나 죽지 화랑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익선은 생 좁쌀을 제대로 씹을 새도 없이 몇 홉을 그냥 먹어야 했고, 물도 없이 삼키느라 그의 입천장이 까져서 계속 아렸다.


결국 버티지 못한 익선은 쓰러져 바닥에 토하기 시작했는데, 죽지 화랑님은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얼굴이 오죽이 되어 외치셨다.


"새끼...... 기열!!!!!!!"


"이 모든 좁쌀은 비록 기열민간싸제음식이긴 해도 하나 하나 모량리 농부들의 혼이 담긴 것! 이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화랑도 발전을 위해 기부하였을진데 어찌 감히 뱉을 수가 있는가!"


죽지 화랑님이 비형랑처럼 날아가 익선의 가슴팍을 걷어차고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그러나 익선은 그 자리에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그 자리에는 몇 개로 조각난 화랑 육전만이 그의 빈자리를 메울 뿐이었다...


"새끼! 어디로 사라졌나! 땅으로 꺼졌나? 하늘로 사라졌나? 하늘? 하늘? 따흐앙!"


아직 하늘에 무언가 적이 있을 시대도 아닌데 무언가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역돌격을 감행한 죽지 화랑님.


그 후 마침내 깨어나 정신을 차린 내 앞에 보인 것은 나를 둘러싼 수많은 낭도들.


그랬다. 화랑도가 함께하는 이곳이 바로 미타찰인데 나는 왜 다른 곳에 가서 미타찰을 찾았는가?


모든 것이 해결됨을 느낀 나는 기뻐하며 뒤를 보는데, 아뿔싸. 전신죽창(全身竹槍) 상태의 죽지 화랑님이 나를 보고 계셨다.


아. 나는 죽었구나. 이곳은 결국 나락이었구나. 죽지 화랑님의 앵두같은 입술이 벌어지는 그 찰나의 시간동안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새끼...... 교우이신(交友以信)!"

(교우이신 : 세속 오계(世俗五戒)의 하나. 벗을 사귐에 믿음으로써 함.)


아......!


뿌직! 뿌드드득!


죽지 화랑님의 죽창이 나를 궤뚫었고. 화랑님은 많은 말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의 죽창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랬다! 화랑님의 죽창은 나를 괴롭고 아프게 만들었지만, 그 경험이 나를 오도낭도로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물건은 죽창이 아닌, 사랑의 매, 죽비(竹篦)였던 것이다!


한동안 모량리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오직 그 분의 죽비가 나의 마음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존재했다.




- - -


모든 일이 마무리되어 탈영죄는 죽지 화랑님의 자비 하에 일소되었고, 집합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너무나도 큰 죄는, 내가 화랑도의 공용 교우이신 인형이 되는 것으로 잘 해결되었다.


이후, 사라진 익선의 죄를 익선의 아들이 대신 묻게 하기 위해, 그를 한겨울 얼어붙은 연못에 잠깐 넣었다 빼는 가벼운 장난을 실시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아들 역시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화랑 빙수만이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일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나는 낭도로서 이제 자랑스러운 경험을 해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화랑도의 모두는 갑자기 생긴 간식에 기뻐하며 화랑 빙수와 화랑 팥을 게걸스럽게 먹다 서로 미끄러져, 모두가 함께 거대한 화랑 냉채가 되긴 하였으나, 모두의 먹을거리가 생긴 것이니 이 또한 어찌 기쁜 일이 아니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짜세중의 짜세셨던 죽지 화랑님을 생각하며 이 글을 적는다.


간 봄 그리매

모ᄃᆞᆫ 것ᅀᅡ 우리 시름

아ᄅᆞᆷ 나토샤온

즈ᅀᅵ 살쯈 디니져

눈 돌칠 ᄉᆞ이예

맛보ᄋᆞᆸ디 지ᅀᅩ리

郞이여 그릴 ᄆᆞᅀᆞᄆᆡ 녀올 길!

다봇 ᄆᆞᅀᆞᆯᄒᆡ 잘 밤 이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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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대 효소왕() 때, 죽만랑() 무리에 급간 득오실()[득오곡()이라고도 한다.]이 있었다. 그는 화랑도의 명부인 『풍류황권()』에 이름이 있어서 날마다 출근했는데, 10여 일 동안 보이지 않았다. 죽만랑이 그의 어머니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당전() 모량부()의 익선() 아간()이 제 아들을 부산성()의 창고지기로 임명했습니다. 말을 달려 급히 가느라고 미처 죽만랑께 인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죽만랑이 말하였다.
“그대의 아들이 만약 사적인 일로 그곳에 갔다면 찾아가 볼 일이 없겠지만, 지금 공적인 일로 갔으니 내 찾아가 대접을 해야겠소.”

그리고는 떡 한 합과 술 한 항아리를 가지고 하인[우리말로는 개질지()라고 하니, 종을 말한다.]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낭도 137명도 의장을 갖추고 따라갔다.

부산성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득오실()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문지기가 말하였다.
“지금 익선의 밭에 있습니다. 관례에 따라 부역을 하고 있습니다.”

죽만랑이 밭으로 가서 가지고 온 술과 떡으로 득오실을 먹였다. 그리고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여 함께 돌아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익선이 굳이 이를 거부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관원인 간진()이 추화군()의 능절조() 30섬을 징수하여 관리하면서 성 안으로 운반하고 있었는데, 죽만랑이 부하를 중시하는 풍모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이 꽉 막혀 융통성이 없는 것을 야비하게 여겼다. 그래서 거두어 가던 30섬을 익선에게 주고 죽만랑을 도와서 휴가를 요청하였지만,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절() 사지()가 타던 말의 안장을 함께 주자 그제야 허락하였다.

조정의 화주()가 이 말을 듣고 익선을 잡아다가 그 더러움과 추악함을 씻어주려 하였는데, 익선이 도망가 숨었으므로 그 맏아들을 잡아왔다. 그때는 한겨울의 매우 추운 날이었다. 성내의 연못에서 목욕을 시켰더니 곧 얼어 죽고 말았다.

(삼국유사, 권 2 中 소왕 시대 죽지랑, 일연, 신태영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