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술병과 유려한 형태의 술잔에 조금 담긴 황금빛의 술.
엉성하지만, 뭐랄까 만든 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솜씨로 용접된 술장.
술장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비싼 술병들에 내리쬐오는 은은한 조명을 반사되고 투과되어 나오는 오묘한 분위기와 방 안에 은은히 퍼지는 몽롱한 위스키 향기.
투박하게 설치된 빔 프로젝터에서 흘러나오는 고전 영화와 수두룩히 놓여있는 솜씨좋은 사람이 공들여 그린듯 한 그림들.
추상화, 풍경화, 인물화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그림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자화상으로 보이는 흐릿한 남자의 그림.
그 앞에서 직접 깎고 용접하여 만든 의자와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술잔을 기울이는 남자.
"오, 왔구나. 지금부터 잘들어. 일이분정도만 집중하면 돼. 어려운 일 아니잖아, 그치?"
"살려줘, 살려줘! 씨발 내보내줘!!"
"자, 첫번째는 조용히 하기. 시끄러워서 좋을게 하나도 없거든."
"지금 씨발 겨우 도망친거야! 빨리 나좀 내보내달라고!!"
"두번째, 입고있는 옷 다 벗어. 팬티나 양말같은거까지 지금 바로. 빨간 팬티나 바지 정도는 괜찮지만 그래도 알몸으로 다니는게 더 좋아."
"이 씨발새끼 너도 한패구나!! 죽어라 이 더러운 씨발..."
소리를 지르던 남자가 술을 마시던 남자를 밀쳐 넘어뜨리고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목이 졸리는 남자는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듯 하지만, 이내 조용해져버린다.
방 안에는 한명의 남자만이 남게 되었다.
남자는 황급히 방의 문을 닫고 잠궈버린다.
잠긴 문고리를 두세번씩 확인하는 남자는 이곳에 숨으려는 것 같다.
'쏴아아-'
방 안의 화장실의 입구로 보이는 듯 하는 문 안쪽에서 변깃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방 안에는 한명의 남자만 있던게 아니었던걸까.
남자는 벌벌 떨며 숨을 곳을 찾아보려 하지만, 두려움에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도저도 하지 못하고 그저 엉성하고 우스꽝스런 동작들을 할 뿐이었다.
'달칵'
화장실의 문이 열린다.
남자의 몸은 굳어버려 아무것도 할수 없다.
방 안의 알록달록한 조명 사이로 들어오는 실루엣.
남자의 눈에서는 순도 100% 의 공포로 구성된 눈물이 흐른다.
시뻘건색 옷을 입은 남자가 화장실에서 나와 화장실의 문을 닫는다.
"뭐, 뭐야 씨발!!"
남자는 풀썩 주저앉아버린다.
"씨발, 이번판도 텃구만. 너무 당황하진 말고, 그... 내가 체질이 좀 특이해서 그래."
"..."
"안심해. 난 다른새끼들처럼 누구 강간하고 잡아먹고 하는짓들 안해. 무슨얘긴지 알지?"
"...네?"
"말 그대로야. 난 정신머리 멀쩡한 사람이라고."
"근데 방금... 어떻게..."
"아, 죽었다가 살아나는거? 어떻게 하는건진 나도 몰라. 신경쓰지 말고 너도 술이나 한잔 해."
"...감사합니다."
"발렌타인 30년 숙성.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이야. 좆같은 인간이시지만 술 입맛 물려주신거 하나는 감사하게 생각하지."
남자는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준 술을 황급히 들이킨다.
취하고 싶어서 보단 목이 말라보이는 남자는 이내 독한 술맛에 얼굴을 찡그린다.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의자를 뒤로 빼고 눕다시피 기대어 앉아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남자에게 담배를 권해보지만 남자는 물을 부탁한다.
"목이 말랐으면 진작 말을 하지."
방금 냉장고에서 나온 시원한 생수 한병을, 남자는 정신없이 마셔댄다.
물을 다 마신 남자는 연거푸 감사인사를 외친다.
"엇, 벌써 시간이 다됐네. 잠깐만 이쪽으로 좀 나와있어봐."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방 안의 불을 끄더니 방 전체에 검은색 커튼을 치키 시작한다.
알록달록한 술병들과 그림들은 이내 커튼에 가려지고 방 안에는 검은 커튼과 남자 둘만이 남았다.
"게이새끼들이 보면 또 다 박살나거든. 그럼 아깝잖아."
"아, 놈들한테서 도망치는 중입니다. 나가는 길이나 숨을 곳이 있다면 여쭙고 싶습니다."
"아 알지 그건. 근데 넌 못나가."
"...네?"
"이미 좆됐다고. 여길 오자마자 내 얘기를 들었어야 했어. 일이분동안 나한테 설명을 듣고 나머지 오분 안에 좆빠지게 뛰어서 봉고에 몰래 타야 나갈 수가 있는거야."
"그럼 전..."
"좀이따 붙잡혀서 죽는거지 뭐. 내말 안듣고 지랄병 떨다가 죽여버린 시점에서 이미 죽은거나 마찬가지라니까. 그때 정신차리고 도망갔어도 시간상으로 탈출은 불가능했어."
"제발 도와주십쇼. 부탁드립니다..."
"붙잡히기 전에 좋은술 한잔 했잖아. 아무것도 못하고 잡히는 새끼들이 태반인데 너정도면 양반이야."
"제발..."
"이 개새끼들이 슬슬 올때가 됐는데말이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잠겨있던 방문의 문고리는 부서지고 붉은 각개빤쓰와 팔각모를 쓴 구릿빛 피부의 한 거구의 남자가 들어왔다.
"으아아아악"
"새끼... 기열!!! 탈영을 시도한 것으로도 모자라 기수열외자와 작당 모의를 하다니!! 네놈은 당장 전우애인 형이다!! 그리고 기열 황룡!!! 탈영을 시도하는 아쎄이를 숨겨주다니... 곧바로 해병 탕후루로 만들어버리겠다!!"
"뭐야 웬일로 밑에애들 안시키고 근출이 니가 직접 뛰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사지가 찢어졌고, 황룡은 황근출 해병이 내지른 주먹에 맞아 머리통이 날아갔다.
"아으 씹새끼. 거 멀리도 날아가네. 그래 뭐 나중에 또 보자."
'쏴아아-'
변깃물이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황룡은 5사로에서 다시 눈을 뜬다.
변기에 앉은채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혼잣말을 읊조리는 황룡.
'요즘은 애들이 다 멍청한 애들만 잡혀오나... 이거 이대로가면 0.69퍼도 유지 못하겠는데...'
황룡은 자신의 방에 찾아온 민간인들의 탈출을 돕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자신의 팔다리가 찢겨나가면서도 민간인들을 탈출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은 황룡을 무뎌지게 했고, 이젠 그저 황룡의 무료함을 달래는 놀이가 되어버렸다.
화장실 5사로 바깥에 컨테이너를 두고 5사로의 벽을 개조하여 문을 달아 완성된 황룡의 방.
해병들이 새로운 컨테이너가 생긴것을 눈치 챌리는 만무하였고 게다가 해병들이 화장실에 온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리 없는 일이었다.
견쌍섭이 다른 부대의 물자 지원을 받는다며 긴빠이 쳐온 PX 양주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자신의 방을 꾸민 황룡이었다.
남는게 시간인 황룡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방을 만들고, 좋은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도 무료함의 괴롭힘을 당해내진 못하였다.
그 즈음부터 시작된 놀이였다.
잡혀온 민간인들이 가끔씩 황룡의 방으로 찾아온 민간인들의 탈출을 돕는것.
하지만 이젠 최대한 빨리 탈출 방법과 경로를 알려주고 정말로 탈출하는지 지켜보는 놀이가 되어버렸다.
대부분이 공포에 질려 황룡의 말을 듣지 않고 시간을 넘겨버려 잠깐의 술동무나 말동무로 끝나버리지만 가끔 정말로 탈출하는 것을 지켜볼때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박진감이 넘치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좀 재밌는 새끼가 들어와야 노는 맛이 나는데...'
황룡은 이내 담배꽁초를 변기에 버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황룡은 또 위스키 병나발을 불며 담배를 시원하게 빨아제끼고 있었다.
'쿵쿵쿵'
황룡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뭐어야 씨발..."
황룡은 비틀거리며 문을 연다.
"기열 황룡!"
"어? 견씨아냐? 복면게이 새끼가아... 웬일이냐?"
"새끼... 기열! 전파사항이 있어서 왔다! 조만간 '해병 고기대전' 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해병... 뭐 개좆지랄 관심 없으니까 꺼져 이 좆게이새꺄... 아니면 너도 술한잔 할래?"
"해병 - 오줌을 마실 생각을 하다니! 기수열외자들의 사고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
"하하하...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전파사항은 이상이니 잘 준비할수 있도록!"
"니미"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쌍섭에게 대답을 하던 황룡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 든다.
쌍섭은 그런 황룡을 뒤로하고 자기갈길을 가버린다.
앞으로 고꾸라진 황룡은 떠나는 쌍섭의 손에 들린 자신의 횡경막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쌍욕을 하려고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이 씹새끼가 긴빠이를 쳐도 씨발...'
다시 5사로에서 눈을 뜬 황룡.
취기가 사라져 기분이 안좋아진 황룡은 방으로 들어가 다시 술을 진탕 마시고 점심해를 바라보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 침대에서 뒤척이던 황룡의 잠을 깨운 것은 또다른 민간인이었다.
"살려주세요"
자신을 툭툭 건드리며 속삭이는 소리에 황룡은 깨어났다.
"어우 깜짝이야 씨발. 나 얼마나 자고있었어?"
"한 3분정도... 큰소리는 내면 안될것 같아서 바로 깨우지 못했어요."
"너 그래도 머리가 좀 돌아가는구나."
"그... 사실 이미 좆됐어. 너 도망나온거지? 탈출하려면 수송부를 가야하는데 이미 늦었거든."
"아..."
"재수가 없었네. 뭐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없고, 여기서 먹고싶거나 그런거 있으면 해줄게."
"당장은 물이 마시고 싶습니다."
남자는 물을 마신 후 황룡에게 담배를 받아 피우며 체념한 듯 의자에 앉아있었다.
"잠깐만, 시간이 됐네."
방의 커튼을 치는 황룡.
아쉽다는 듯 한 표정을 짓고있는 황룡이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석딕조 해병이 방에 들이닥쳤다.
"Mr 기열 Goldragon! 혹시 주변에서 missing assei 를 see 한적 있습니까?"
"어... 아니."
"Oh... 그렇다면 mr goldragon 옆에있는 assei 는... Ah! mr goldragon 도 '해병 고기대전' 에 join 하는 것입니까? 나는 happy 하다! mr goldragon 도 이런 해병 event 에 열심히 join 하면 someday 기합 해병 될 수 있을것이다!"
"어... 그래, 고맙다."
석딕조 해병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전우애실로 돌아갔다.
"아, 맞다. 게이새끼들 또 고기대전인지 뭔지 하는 시즌이라고 했지..."
"저기... '해병 고기대전' 이 뭔가요?"
"해병들이 각자 납치한 사람들로 배틀을 하는거야. 모든 경기가 끝나면 1등을 한 사람과 해병한테는 상이 주어지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고기가 되는 지랄맞은 행사지."
"끔찍하군요..."
"생각해보니까 고기대전 준비시즌에는 봉고 배차가 없어서 탈출을 못하는데."
"..."
"상황이 좀 바뀌었네. 너 앞으로 조금은 더 살 수 있겠다. 그동안 탈출할 방법들을 찾아보자고."
"아, 감사합니다!"
"일단 저기서 샤워라도 하고 있어. 다 하고 밥이나 먹자."
남자는 샤워를 하러 가고, 황룡은 VOIP를 사용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통신보안, 일병 1q2w3e3r! 입니다!"
"야 깡통."
"황룡 해병님, 무슨일이십니까?"
"고기대전인지 지랄인지 그거 언제시작하는거냐?"
"해병 고기대전은 내일로 예정되어있습니다."
"어 고맙다."
그날 하루종일 황룡은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의 이름은 천기현 이었고 24살이며 육군병장 만기전역 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던 중 소위 말하는 자진입대를 당하였고 그 이외에도 고향이나, 대학 전공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황룡은 저녁이 되자 어김없이 술판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오랜만에 누군가가 함께하는 술자리는 황룡에겐 아주 반가운 것이었다.
"근데 황룡씨는 어떤 분이신가요? 너무 제 이야기만 많이 한것 같습니다."
"나? 별거 없어. 죽으면 저기서 다시 살아나는거 정도만 빼면."
"아... 그런것 보다는 원래 뭘 하셨는지 같은게 궁금해서요."
"아, 풍출대학에서 의대 다니다가... 입대를 했는데 이지랄이네."
"의대생이라면 보통 군의관으로 복무하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 그냥 공부하기도 싫고 해서 입대 해버렸어."
"아무리 그래도 해병대를..."
"아버지가 공군 출신이셔서 항상 공군을 가라고 말씀하셨거든. 그게 맘에 안들어서."
"아버지와... 사이가 안좋으신가요?"
"의대도 부모님때문에 거의 강제로 간거야. 아버지가 풍출병원 원장이시거든. 어머니도 의사시고."
"그래도... 풍출대학 의대를 들어갈 정도면 인생 성공이 거의 확정인데..."
"하기싫어. 하고싶은게 따로 있는건 어쩔 수 없잖아."
"..."
황룡은 말을 마치고 방 한쪽에 빽빽히 걸린 그림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황룡과 남자는 말없이 술을 마시다 이내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황룡은 남자에게 탈출할 방법을 알려주었다.
"일단 고기대전이 시작되면 난 다시 여기로 돌아올거야. 그리고 넌 어떤 경기 종목을 만나느냐가 중요해."
"경기 종목이요?"
"상대를 불구로 만들거나 죽여야 이기는 종목이라면 어떻게든 이겨야 해. 하지만 자지칼싸움같은 병신같은 종목들, 그러니까 져도 니가 다치지 않는 경기들은 일부러 지라는거야. 최대한 빨리 져야해."
"일부러 지라는 말씀이신가요...?"
"맞아. 진다면 넌 전우애실로 끌려가게 될건데, 거기서 참새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르면 게이새끼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빤쓰런을 칠거야. 그때 최대한 빨리 여기로 와."
"네."
"참새 소동이 거짓말인건 금방 들통나니까 빨리 움직여야 할거야. 그리고 여기 숨어있다가 고기대전의 결승전이 열려 모두가 콜로세움쪽에 정신이 팔렸을 때, 수송부로 가서 차를 훔쳐타고 도망치는거야."
"위병소에 초병들은 괜찮을까요?"
"내가 팔각모랑 각개빤쓰를 구해올거야. 그걸 입고 대충 황근출이 시킨 일이 있다고 둘러대면 탈없이 지나갈 수 있어. 그리고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멀리 떠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일이 있어도 포항, 김포, 제주도는 가지 말고. 절대로."
"명심할게요."
"그래. 이제 가야해. 고기대전이 시작된다."
황룡은 남자를 해병 고기대전이 열리는 해병 콜로세움에 데려다 주고 아무 내무반이나 들어가 각개빤쓰와 팔각모를 하나씩 훔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황룡은 이번에 만난 남자는 꼭 탈출시키고 싶어졌다.
정상적인 사람과 정상적인 상호작용을 해본 것이 얼마만이었던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이야기 해본 것이, 아니 떠올려본 것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 황룡이었다.
오랜만에 황룡은 옛날의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자신에게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부모님.
그림을 그리고싶었던 황룡의 꿈은 항상 삭막한 곳에 내팽개쳐지고 의사가 되는것에 대한 강압만이 있었다.
명문대인 풍출대학 의대에 합격했지만 황룡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의대에 합격한 사실이 자신의 꿈은 완전히 끝나버렸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것만 같았다.
공군에 대한 자부심이 있던 아버지가 황룡에게 공군 군의관으로 복무하라고 하였던것에 대한 반발로 황룡은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 후 비상식적인 일들을 겪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사지가 찢겨나가는 삶을 살아왔던 황룡이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황룡이 이곳에서 도망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간다면, 황룡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평생 남의 의견에 의해 하고싶지 않은 일들만 하며 살아가는 노예같은 삶을 다시 살긴 싫었다.
항상 다른 모든것들과 차단당한 채로 공부만 해왔던 황룡에게 제대로 된 친구따윈 단 한명도 없었다.
남들에겐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는 부모의 품도 황룡에겐 가시덤불일 뿐이었다.
오랜 시간, 평생동안 자신을 제외한 모든것이 황룡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있었고 그 상처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황룡은 해병대로 도피하게되었다.
그리하여 돌아갈 고향이라는 것이 없는 황룡은 옛날의 일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떠올리지 않으며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해병대에서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옛날의 일들을 떠올린 황룡은 담배를 꺼내어 피우기 시작했다.
"시바... 언젠간 전역을 하긴 해야겠지...?"
짙은 연기로 된 한숨을 내뱉으며 황룡은 다시 생각에 빠졌다.
나가게 된다면 의대따윈 그만두고 화가가 될 것이다.
부모의 반대가 심할 것이고 지원 역시 없을것은 알고있다.
뭘 하든 혼자 힘으로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곳을 떠나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두렵다.
멍든 마음의 상처가 다 아물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황룡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해병대에서 지내며 황룡의 마음은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고향을 만들고 있는 황룡이었다.
언젠가, 마음의 준비를 마친 황룡은 전역을 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아니고... 뭐 좀 더있다가 나중에 나가지 뭐. 나가면 일단 자퇴부터 때리고 아버지랑 어머니한테 말씀드려야지."
혼잣말을 내뱉으며 황룡은 자화상을 새로 그리기 시작한다.
이전의 자화상처럼 흐릿하지 않고 선명하고 단단해보이는 자화상이 완성된다면 황룡은 무언가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황룡은 해병 고기대전에 참전한 남자를 까마득히 잊고있었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고기대전이 끝난지도 꽤 됐는데 게이새끼들한테 죽었나... 아깝게 됐네..."
그때 황룡의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황룡은 설렁설렁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누구... 어! 너 살아있었냐!"
며칠 전 만났던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황룡의 앞에 서있었다.
"악!! 이병 천!콴!엽! 바로 이곳입니다! 황근출 해병님!! 이곳에 기열황룡이 싸제 음식들, 즉 해병 - 음식물쓰레기를 모아둔 것을 제가 확인했던 바 있습니다!!"
"잠깐, 너 지금 뭐라고..."
"새끼... 기합!!! 기열 황룡 네이놈!!! 부대의 위생을 망치는 이런 불법 시설을 운용하고 있었다니!!! 새끼... 기열!! 기열!! 기열!!!! 무모칠!! 당장 이 시설을 철거 후 폐기하도록!!"
"야 근출아 잠깐만 진짜 내 술들 건들지마 씨발 저게 얼마나 귀한것들인데 진짜 내말좀 들어봐 근출아 야 이 씨발 그리고 넌 내가 숨겨주고 맥여주고 탈출하라고 도와준게 얼만데 이딴식으로 통수를 이 씨발...!"
"네이놈, 기열 황룡!! 나는 해병 고기대전을 통해 포신 칼싸움, 전우애 마라톤, 꼭잡땡, 악기바리 등의 기합찬 종목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탈영따위의 흘러빠진 생각을 버리고 황근출 해병님께 새 이름을 받아 오도해병으로 다시 태어났다!! 얌전히 징계를 받아들여라!!"
곧바로 무모칠 해병이 황룡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리해버리고 황룡의 방에 들어가 보이는 대로 개박살을 내기 시작하였다.
"아!!! 이 씹팔새끼들아 진짜!!!!!"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었지만, 이 일 또한 나중의 추억이 될 것이란 사실을 아직까진 모르고 있는 황룡의 상반신이었다.
이글거리는 여름은 끝나가고 있었고, 저녁이 되면 슬슬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가을의 새 바람을 만끽하며, 황룡은 자신의 집을 새로 만들고 있었다.
새끼...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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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이 해병대 탈출 안하는 이유를 이렇게 대다니 기합..!
내용 진짜 좋다...
기합
기합!!!
울화통을터트리고 있었지만, 이 일 또한 나중의 추억이 될 것이란 사실을 아직까진 모르고 있는 황룡의 상반신이었다.
사실 황룡에게 해병대는 일종의 도피처였고, 해병대 밖으로 나가봐야 기다리는건 황룡 본인에게 있어서는 가시덤불같은 노예의 삶일 뿐이라 일부러 해병대에 눌러앉아 살게 된 황룡... 기합!!
그에겐 해병대가 마음의 고향이었다
고기대전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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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