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해병력 기원전 69년(서기 2005년~2006년)
원인:김평걸 변왕추 등의 선임들의 폭정 및 부조리, 황근출 쾌흥태의 반발
교전 세력
구 해병대:김평걸, 변왕추, 김덕팔, 최철귀, 곽말풍 중령, 대한민국 육군(지원군)
오도짜세 기합해병군단(현재 해병대):황근출, 쾌흥태, 진떡팔, 박철곤, 말딸필, 대대장 마갈곤, 신병 아쎄이 중의 69%
중립:황룡, 황가은 중위, 맹닭춘, 코가손, 신병 아쎄이 13%
결과:변왕추 사망, 김평걸 의병제대, 오도짜세 기합해병군단의 승리, 황근출이 해병대 최고자리에 즉위
영향 및 후폭풍:곽말풍의 권력 약화, 황가은 제대, 전투로 인한 해병대 부대 붕괴 및 해병동산 황폐화, 해병들의 해병 대이동 및 현재 해병부대 정착(컨테이너 해병성채 등장)
해병내전은 해병력 기원전 69년에 대한민국 포항시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선임들의 독재정치 및 폭정에 반발한 황근출 해병님이 쾌흥태 해병, 박철곤 해병을 앞세워서 신 해병부대인 오도짜세 기합해병군단(이하 신 해병부대로 서술)을 조직하여 싸운 전쟁이다.
전쟁의 시작은 이랬다.
후임인 김기태 이병을 폭행하던 중이던 김평걸이 자신을 말리던 황근출 해병님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시작되었는데 지건을 꽃으려던 김평걸을 붙잡자 분노한 김평걸은 황근출 해병님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김평걸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황근출 해병님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자 김평걸은 중상을 입은채 의병제대를 했다.
김평걸과 싸운것이 미리 계획된 일인지 돌발로 일어난 일인지는 황근출 해병님과 현재 병장들 외에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황근출 해병님이 권력을 잡자 따르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해병 내전이 일어났다.
김평걸을 의병제대 시킨 이후 해병들은 신 해병대를 조직하고 황룡을 포섭해서(다만 황룡은 현재 기열취급을 받기 때문에 오도짜세 기합해병군단의 일원이었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전투를 계획하여 권력을 잡고있던 병장들을 처단할 작전을 짜고있었는데 그중 김덕팔과 변왕추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덕팔은 황근출 해병님이 직접 처단하기 위해 싸움을 걸었으나 최종적으로 양쪽 모두 타격을 입은채 어느쪽도 이기지 못한채 끝났고, 김덕팔은 끝내 처단되지 못한채 평범하게 전역하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해병들은 이런 전투를 단순한 해병들간의 맞짱과 서열정리로만 여겼던 탓에 제대로 된 전투로 보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후 상대는 변왕추였다.
사실 변왕추는 원래 훈련도중에 박철곤 해병이 총알을 몰래 숨겨서 가져간뒤 사살할 계획이었으나 그때는 태풍 장미가 해병부대를 지나가고 있던 때였던 탓에 훈련이 무산되었고, 당시 육탄전으로 변왕추를 이길만한 자는 해병대 부대 내에 존재하지 않았던 탓에 모든것이 무산될 처지였다.
변왕추는 당시 전역을 일주일 앞둔 상태로 해병병장들 사이에서도 권력을 잡으며 해병대의 모든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힘도 막강하였기에 황근출 해병님도 함부로 덤비지 못하였다. 그날은 말딸필과 몇몇 아쎄이들에게 얼차려를 가하며 폭행중이었는데 원래대로라면 사살되었을 변왕추가 해병부대 내에서 권력을 잡고있자 해병들은 변왕추가 전역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쾌흥태 해병이 단독으로 나서서 변왕추에게 선전포고 했고, 변왕추와 제대로된 싸움이 시작되었디.
변왕추가 포신을 내려치자 해병성채의 벽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고, 쾌흥태 해병이 포신을 휘두르자 해병대 부대가 붕괴되어 마침 태풍까지 불던 탓에 해병들은 전부 피난을 갔어야했을 정도였다.
변왕추는 포신으로 쾌흥태 해병을 밀어붙여 목을 찔러 죽이기 직전까지 갔으나 도중에 해병짜장을 쏟으며 틈을보이자 쾌흥태 해병님이 변왕추의 포신을 뚫고 변왕추를 토막내서 죽였고 변왕추는 사망하여 늪지대에 있는 해병묘지에 묻혔다.
이후 해병들의 모든 통치권을 갖고있던 변왕추가 반대세력인 쾌흥태 해병님에게 살해되자 황근출 해병님을 중심으로 한 반대세력들이 모두 병장들에게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내며 봉기를 일으켰다.
구 해병대는 계급이 높은 곽말풍을 대장으로 내세워 반대세력에게 저항하려 하였다.
이후 해병대 부대 내에서는 두 세력이 직접 무기를 들고 교전하기에 이르렀다.
신 해병부대는 계속해서 살아나기에 시체 생산이 가능한 황룡을 이용하여 황룡 시체로 진지와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이후 식량을 운반 및 생산하는 진떡팔 해병과 말처럼 달려서 보급물자를 운송하는 말딸필을 통해서 식량과 보급품을 공급받으며 진군하였다.
그 과정에서 구 해병대는 892명, 신 해병대는 6974명이 사망하였다.
신 해병부대가 사망인원이 더 많은 이유는 당시 신 해병부대는 기존 해병대에 반감을 갖고있던 신병들이나 훈련을 제대로 받지못한 아쎄이들이 주였던 탓에 대부분이 방패로 전락하였고, 공격쪽에 강한 황근출 해병님과 쾌흥태 해병한테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구 해병부대 측의 사상자가 없던것은 아니었으나 구 해병부대 측에서도 계급이 낮은 인원들을 주로 전장에 보낸탓에 주요인물들을 처단하지는 못했다.
이 전투에서 구 해병들은 끝내 타 군대를 전쟁에 끌어들이기로 했는데, 바로 땅개들과 공군이었다.
땅개들은 예상보다 쉽게 빨리 전쟁에 참여하였고, 땅개들의 포탄 사격에 의해서 신 해병부대의 일원들이 다수 죽어나간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땅개들이 끌고온 전차와 자주포가 진격하자 장갑을 뚫지못한채 밟혀 죽거나 포탄과 기관총에 맞아 신체 일부가 없어지거나 잘려 날아간 해병들도 다수 생겼다.
그러나 땅개들의 무기는 박철곤 해병님과 황룡의 계획 하에 탈취되고 신 해병부대에서 개발한 오도봉고, 각개트럭 등의 무기까지 도입되며 구 해병대가 밀리기 시작했고 끝내 땅개들은 철수했다.
그러자 구 해병측에서는 공군을 끌어들일 계획까지 하게되었다. 공군은 해병들에게 공포의 대상인만큼 신 해병부대를 잠재우기에 좋다고 판단한 곽말풍 중령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군을 신성한 해병부대에 끌어들이는것은 구 해병들 사이에서도 납득될수 없다고 판단되었고, 구 해병부대 내에서도 전투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며 곽말풍을 지지하는 세력과 해병이 공군에게 의지하는게 말이되냐며 반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내분이 일어났고, 끝내 곽말풍 중령이 공군 참여를 취소하겠다 선언하며 내전이 종결되었으나 구 해병들 사이에서도 반대세력이었던 해병들 끼리 반대감정이 생기게 되었다.
구 해병들 사이에서 내전이 일어나는 사이, 신 해병부대는 구 해병대의 본부를 포박하기 위해 오도마운틴(현재 명칭은 기합산) 등산로 쪽에 컨테이너로 진지와 전투기지를 구축하였고, 이후 해병동산을 초토화 시키기위한 정비를 마쳤다.
그 컨테이너 전투기지가 바로 현재 해병성채의 터가 되었다.
해병 내전의 마지막 대전투는 오도마운틴 등산로에서 일어났다.
신 해병군단은 내전을 종결한지 얼마 되지않은 구 해병대를 포위하기위해 장갑차부대와 기관총달린 오도봉고들을 보내서 구 해병들을 압박했고, 구 해병들은 전세가 밀리자 오도마운틴 등산로 쪽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등산로 쪽에서도 신 해병군대가 대기 중이었고, 끝내 구 해병들과 백병전이 일어났다.
구 해병들은 컨테이너 기관총 포탑을 6대를 폭파시키고 신 해뱡 892명을 살해하였으나 후퇴하던 신 해병들이 오도마운틴 중간지점(현재 69번 등산로)까지 역돌격하자 쾌흥태 해병님이 기다렸다는듯 전차를 타며 포신을 내밀고 참전했고, 이후 구 해병들한테 포격이 쏟아졌다.
결국 구 해병들은 대다수가 살해당하거나 항복하였고, 신 해병부대는 이후 곽말풍이 있을것으로 추정되는 산속을 개척했다.
이후 숨어있던 구 해병들과의 수많은 작은 교전 끝에 해병들은 벙커로 보이는 직육면체의 콘크리트 건물에 도달했고, 안에서 도주중이던 곽말풍을 붙잡았다.
신 해병부대에 붙잡히자 곽말풍은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마갈곤 대대장에게 저지되었고, 이후 마갈곤과 육탄전이 벌어졌다가 끝내 곽말풍이 제압당했다.
이후 곽말풍 중령이 항복문서에 이름을 적은 뒤 앞으로 해병대 부대 내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며 구 해병대를 해산하겠다고 선언하자 해병 내전은 막을 내렸다.
중립 세력. 중립 세력은 어느곳의 편도 아니라고 인식되어 해병들이 교전할 때마다 공격당했다. 결국 전투가 끝난뒤의 해병들의 전우애 인형으로 쓰이거나 학살대상이 되었고, 중립 세력 내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다.
그 외
.변왕추가 사망한것만 뺀다면 의외로 전쟁 중반까지는 구 해병대가 우위였다. 그저 구 해병대의 대우나 부조리에 반감을 가진 해병들이 들어간 신 해병부대와 달리 구 해병대는 선임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은 해병들이 들어갔기에 충성심이 있었고 원래 있던 자들도 훈련을 제대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신 해병부대의 일원들은 반감때문에 조직된 곳이었기에 게릴라 작전에서는 우월했을지 몰라도 기본적인 전투력이 되는이가 황근출 해병님, 쾌흥태 해병밖에 없었던것은 사실이다. 만약 곽말풍이 공군을 불러들이겠다고 선언해서 내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구 해병들이 다시 전세를 역전하여 구 해병들의 승리로 끝날수도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중립 세력에 있던 황가은 중위는 어느쪽도 아닌 탓에 교전중인 해병들한테 범해졌다. 이때의 트라우마로 해병대를 전역하고 공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황룡은 신 해병부대의 작전을 짜고 계획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내전이 끝난 직후에는 나름 대우받았었다. 그러나 황룡의 행태가 기열스러워짐에 따라 황룡은 현재같은 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기록 상으로도 신 해병부대의 참전자중에 제명되어 신 해병부대 대원이 아닌 중립세력으로 기록되었다.
.곽말풍 중령은 이 내전이 일어나기전에 해병대 부대 69%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가졌었다. 그러나 마갈곤에게 패배하고 황근출 해병님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한 뒤엔 구 해병대의 대장을 맡게된 전적 때문에 현재는 해병부대의 일에 간섭할수 없게 되었고, 현재는 나물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쟁 이후:
해병동산은 황폐화되어 사막처럼 변했고, 살아남은 해병들은 모두 부대를 옮기기 위해 이동해야했다. 해병들이 이동하여 자리잡은 곳이 바로 신 해병부대의 전투기지였던 컨테이너 기지였는데 그 컨테이너 기지를 개량하여 현재의 해병성채가 지어졌다.
해병들은 새로운 해병부대를 만들기 위해 오도마운틴 등산로를 개척하였는데 그렇게 개척된 결과, 새로운 해병부대는 잔디가 자라는 평원이 되었다. 그리고 오도마운틴이 차지했던 자리는 깎여나가 오도마운틴의 면적이 축소되었는데 그 남아있는 오도마운틴의 일부가 현재 해병부대 북쪽에 위치한 기합산이다.
해병내전 이후 원래 있던 해병들이 대다수 전역했다. 원래부터 계급이 높아서 전역한 이들도 있으나 전쟁중의 부상이나 트라우마로 의병제대한 해병들도 다수 존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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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내용의 책 있으면 추천좀
어우 손가락 아퍼
진짜 전쟁 기록한것처럼 잘 썼다! 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