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놈 정권이 기고만장 천방지축 나대더니
꼴 좋다.
한국 석유 68일분 남았다…오일쇼크 현실화?
일본군의 보급단절
미국이 일본에 대한 석유금수조치를 취한 이후인 41년 8월 일본의 주요 전략물자의 재고량은 다음과 같습니다.
니켈 및 니켈광 - 약 2개월 망간광 - 약 4개월
비치코크스 - 약 4개월 마닐라 삼 - 약 1개월
제1종 원유 - 약 4개월 제2종 원유 - 약 6개월
항공유 - 약 15개월 보통 휘발유 - 약 2개월 반
중유 - 약 1개월 반 보통 기계유 - 약 2개월 반
경유 - 약 10일 등유 - 약 1개월
반고체 기계유 - 약 3개월 피마자유 - 약 6개월
이와 같은 물자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최단기간에 석권하여 그 자원을 개발함으로써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결과적으로 지나친 전선확대로 인해 각지의 일본군은 고립된채 보급이 단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중 사망한 일본군 230만명 중 과반수가 광의의 아사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일본군 중에는 늑막염과 폐결핵 환자가 대단히 많았고 이는 영양부족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또 식량도 운반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생수나 정수장치를 충분히 수송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병사들은 흙탕물을 마시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고 이는 많은 병사자를 낸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 군의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일전쟁 2년째인 1938년 봄 서주 작전에서 이미 영양실조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전선에 종군한 어느 장교는 '내가 중대장 시절에 연대와 대대로부터 보급을 받은 것은 2년간 전투에서 1인당 쌀 1되를 2회 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보급단절은 중국전선에서는 민간에 대한 대규모 약탈을 초래했습니다. 식량도 보급할 수 없는 판국에 연료보급이 제대로 될 리가 없기 때문에 민가의 대문이나 기둥을 뜯어 태우지 않으면 취사도 할 수 없었습니다. 대본영 자체가 대미전에 주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 중국 파견군에는 현지 자활을 지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대규모 약탈을 공인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문에 중국에서는 일본군의 별명이 황군(蝗軍:곡식을 먹어치우는 메뚜기 떼)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대규모 약탈을 할 대상이 있었지만 태평양 전선에서는 약탈을 할 대상이 없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본군의 수송선이 연합군에 의해 침몰하게 되면 태평양 각지의 섬에 고립된 일본군은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부 뉴기니에 파견된 일본군은 총 15만 7646명이엇는데 전쟁후에는 단지 만 72명만 살아남아 94%의 사망률을 보입니다. 이들 사망자의 대부분은 기아와 열대성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일본군 사망자중 해몰사(海沒死)한 수는 해군 18만 2천명, 육군 17만 6천명에 달했습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참전국중 가장 많은 해몰사 규모인데 상당수는 물론 해전에서 전사한 것이지만 많은 수가 연합군의 공격으로 침몰한 수송선에 타고 있던 인원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해몰사는 연합군의 일본군 보급로 봉쇄가 철저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보급단절로 인해 태평양 각지의 일본군에게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식인이었습니다.
2. 같은 일본군에 대한 식인
출처
https://m.cafe.daum.net/pwarh/2dS/3195?searchView=Y
"산에서 산으로 퇴각하는 일본군의 대부분은 약탈자였습니다. 이건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먹을게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제비뽑기를 하기로 했어요. 진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기로 한 거죠. 그러나 진 사람이 도망치기 시작해서 우리는 그를 쏘았어요. 그는 결국 잡아먹혔어요.
당신은 아마도 우리들 중 다수가 현지 여자들을 강간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성적인 욕구의 대상으로 생각되지 않았어요. 그들은 우리들의 굶주림을 채워줄 대상으로 생각되었어요. 우리는 성욕이 없었어요. 강간을 하는데는 힘이 너무 많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원하지 원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꿈꾼 것은 먹을 것 뿐이었습니다. 나는 사람의 팔과 다리를 가져가는 군인들을 산에서 만났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한 것은 게릴라가 아니라 우리의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2차대전, 직전 일본이 발악하던 싯점 비축유랑 유사. 정신줄 좀 잡고.
물론 뒷감당 못하고 싸지른 트럼프는 개색퀴지만, 우리가 먼저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