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병이 건담을 타게 된 이야기>








사실 엄밀히 말하면 건담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탑승가능한 이족보행 거대롯봇은 다 건담이라고 불렀다. 21세기 최고의 전쟁로봇만화 이름이기 때문이다.




어쩄뜬 감자 으깨기에는 건담만한게 없다. 월급의 절반을 떼어가는 국가라는 이름의 도둑놈은 전 우주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장성들을 위해 감자만으로 진수성찬을 내놓으라고 일개 조리병에게 윽박질렀으니 말이다. 감자포대를 밟아 죽처럼 만들고, 소금을 운반한 뒤, 쥐도새도 모르게 도로 갖다놓으면 그만이다. 건담 파일럿인 전투병과는 뒷거래가 있었다. 사단장만 모르면 그만이다.




아, 건담을 타고 싸우야 할 상대는 일본이다. 건담의 조국 일본이라니. 그러나 일본은 이제 더이상 애니를 못만든다. 그리고 예전의 일본이 아닌데 이건 나중에 설명하겠다.




일본은 이상하게 늘 지리적 입지 면에서는 운이 없어왔다. 지구에서 쓰나미와 화산폭발, 지진으로 인해 불안에 떨어야 했던 일본인들은 우주 플랜트로 전국민이 이주한다는 계획을 제일 먼저 세웠다. 그러나 또 우주에서도 플랜트 궤도에 들어온 우주폭풍에 의해 이민자들 다수가 죽고말았다. 본토만 남게 되어 순식간에 인구가 줄어들고 만 일본은 멸종위기였다. 그들은 다급해져서 실험실 인간-즉 정자와 난자들을 충돌시켜 인큐베이터에서 배양하여 다수의 후손들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말을 안들었다. 그게 문제였다.




현재의 세계에 대해서는 이정도만 이야기하고 이제 내가 왜 지구연합군의 최신형 건담 기체를 몰게되었는지 설명하겠다.




일본인들의 신형건담탈취계획에서 살아남은 단 하나의 건담을 내가 타게 된 이유를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그건 내가 감자밟겠다고 잠깐 빌린 건담이 조리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다 뺏겼다




일본인들의 건담 탈취계획에서 살아남은 단 하나의 건담.(조리실에 있어서)을 내가 몰 수 있었는데 사단장은 나를 임시전투병(파일럿)으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동작은 밟기 뿐이었다. 건담 기체조종은 엄청난 물리계산 능력을 필요로 해서 나같이 고등학교도 안나온 촌놈이 조종한다는 거 자체가 기적이었다. 나는 뒷걸음질치다가 일본 전투병 한명을 밟아버렸고 그게 그대로 무훈이 되어버렸다.




사실 건담탈취계획은 너무도 뻔하디 뻔해서 오히려 아무도 예상 못한 그런 진부한 계획이었다. 그렇지 않나? 퍼스트 건담 때부터 진부하게 내려온 클리셰인데 이걸 대비못하다니 황당하다. 고도로 훈련받은 일본 전투병들은 배수구로 격납고에 잠입했고 조리실에 있던 1기를 제외한 나머지 4기를 탈취한 것이다. 나는 일본어를 들으면서 어렸을 때 고전명작애니를 보며 들었던 진한 향수를 느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그건 적국의 언어였다. 




23세기 한국 군대 격납고 뒷건물 조리실에서 들려서는 안되는 언어였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잘생기고 키가 컸다. 같은 남자가 봐도 분할 정도로 잘생겼다. 그 이유는 멸종위기에 있던 고대 일본인들이 기왕이면 잘만들자고 잘생긴 남자의 정자들과 예쁜 여자의 난자들을 충돌시켰기 때문이다. 키도 시원시원하게 크고 눈도 멀리서 봐도 레이저처럼 우수에 젖은 눈빛이 벽을 뚫을것만 같다. 나는 600만원으로 성형했는데 아직 여자 손도 못잡아봤다. 여자들은 일본인을 좋아한다.




어쨌든 남자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암튼 잘생기게 태어난 네오 일본인들은(신일본인) 또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전 지구인들을 다 죽여버리고 자기들처럼 만들자는 거다. 그들은 공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애미애비 없이 자란 애들이 싸가지 없다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다.




나는 곧 사관학교에서 정식으로 훈련받은 전투병들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출신이 미천한 날 좋게 볼 리 없었따. 난 운좋게 건담을 탄 조리병일 뿐이었으니까. 애초에 난 싸우지 않고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그게 안되니까 어쩔 수 없이 조리병한거였는데. 같은 조리병들이 날 보면 위로했다. 그들은 삼엄해진 경비 아래서 건담을 빌려서 조리하는 법은 절대 없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했던 것이다. 난 조종법을 배워서도 습관적으로 감자밟는 자세가 나왔다. 사관학교 출신 전투병들은 날보고 두더지 잡냐고 놀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내 점수가 가장 높게 나온 것이다. 난 밟는 동작밖에 못했는데 손 발 빔, 광선 등으로 현란하게 싸우는 다른 전투병들보다 일본인 마을을 더 많이 파괴했다. 나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사람들을 밟아댔는데 이게 허공에 빔을 맞추는 것보다 에너지를 절약했고, 명중률이 높았던 것이다.




나는 건담 파일럿 중 대장으로 승진했다. 날 비웃던 전투병들은 곧 내 감자밟기 동작을 따라하게 되었다. 




난 정말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이다. 왜 내가 전쟁같은 거에 휘말려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야 하는가? 난 안전한 후방에서 따듯한 밥을 짓던 시절이 그리웠다. 건담 기체 안에 숨겨둔 여자아이돌 사진을 보면서 눈물짓기 일쑤였다. 그런 내게 대장승진기념 휴가령이 떨어졌다. 




전쟁중이라 시내에는 젊은 남자 씨가 말랐지만 그 많은 여자들 중 내 여친은 없었다. '여자들은 왜 군대 안가나요?'라는 질문을 21세기 조상님들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러나 여자들은 너무 귀엽고 소중해서,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내 엄마, 여동생, 미래의 여친, 딸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건 당연한 일이다. 토를 달면 안된다. 




아 그런데 나는 저주받은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꿈에 그리던 아이돌 그녀와...그녀는 일본의 스파이였다. 그녀는 비사관학교 출신으로서 시뮬레이션에서 놀라운 점수를 받고 진급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접근했고, 그녀의 계획은 성공했다. 나는 휴가중이던 나를 보호하던 군 비밀요원들에 의해 분리조치 되었고 그녀는 구금되었다.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놀라웠으며, 남자에게 지극히 순종적이었다. 그런 여자는 다시 없을 것이다. 물론 군내상담요원이 그건 꿈이니 정신차리라고 했다. 내게 원하는 게 있으니 내게 잘한거라고.




그러나 일본인 여친은 내 가치관을 흔들었다. 아 나는 왜 저주받은 사랑을 하게 된 것일까. 적국의 스파이를 사랑하다니!




그녀의 요리는 맛잇었고 데이트는 황홀했다.




나는 그녀가 미국으로 압송되기 전까지 갇혀있는 건물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일이 많았다. 그녀를 데리고 일본으로 탈주할 계획까지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지켜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러지 못했다. 난 겁쟁이다.




군에서는 내게 여자를 붙여주었다. 내게 싸울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강해졌다. 더이상 감자밟기만 하지 않고 다양한 동작을 익혔다. 숙소에서는 더이상 밥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난 남자가 되었다. 예전에 그녀 사진을 보며 눈물짓던 나약한 조리병이 더이상 아니었다.




내 출격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일본의 미남미녀들과 그들이 탄 건담과 싸웠다.




일본 실험실에서는 계속 신인류들을 쏟아냈고 그들은 항상 우리보다 수적으로 우세했다. 그들에게 진 지구 연합은 멸종위기였다. 나는 40대가 되었다.




언젠가 포로로 잡힌 일본인에게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포로는 그런 것까지 일일히 말해야 하냐는 듯이 말했다.




"우리가 우월하니까."




그럼 난 지구연합이 다 멸종해버리면 더이상 너희보다 열등한 존재는 없을텐데 그땐 뭐때문에 살거냐고 물었다. 더이상 우월감때문에 살 수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잘생긴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건 너가 잘생기지 않아서라면서 잘생기면 살고싶은 욕구가 샘솟는다고 말했다.




난 그말을 듣자 죽고싶어졌다. 어차피 지구연합은 질게 뻔하다.




잘생기고 볼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