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에 강한 끌림을 느끼고 입문하고싶습니다. 고등 교과과정의 내용은 모두 아는데 어떤 학자의 어떤책을 읽는것이 좋을까요
철학 입문
익명(223.39)
2024-08-02 0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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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가경 실존철학이 권위있는 책입니다 아쉽게 품절상태네요 - dc App
저희집에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 dc App
저도 철학입문하고 처음 끌렸던게 실존주의였던 것 같습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하는 짧은 글도 읽었습니다 - dc App - dc App
저도 조가경 교수님 책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20대때 읽어서 그때는 거의 읽히는게 없었어요 - dc App
집에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이란 책도 있는데 못읽었습니다 - dc App
실존주의는 문학작품으로 많이 형상화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카뮈를 좋아해요 시지프의 신화 이방인 칼리굴라 오해 읽어봤어요 - dc App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가장 먼저 추천드려요 - dc App
문학작품을 읽으시면 어떤 느낌의 사상인지 아실 거에요
실존주의는 양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고 난 다음에 유행했던 사상이라고 압니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 후에 앞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실존주의가 유행했던 걸로 압니다
고독사님 말씀대로 실존주의는 철학의 본령에서 좀 벗어나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한 가지라고 할까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인간은 본질에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말... // 저는 이 명제를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말하는 생물학적 본질에 따르는 삶을 거부하는, 다시 말해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적 경향성에 반하여 살 수 있는 칸트의 자유 개념으로 생각해 본 적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생물학적 본질에 마냥 거부한다고 해서 그리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밥을 먹기 싫어서 안 먹으면 죽게 되고요 남자가 여자가 되거나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이 물론 생물학적 본성에 반한 자기 자유에 따라서 근래의 기술적 진보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게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 않고요 기껏해서 생물학적 본성에 반해 산다고 하는 것은 성욕의 절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살인의 이유가 "그냥" 이라면 믿으시겠어요?
본질과 본성은 다른 말인데 섞어 말하고 말았네요
먼저 제 닉을 언급하셔서 기어이 대댓글을 답니다. 님, 제발 국어교과서보다 못한 유치한 말씀은 삼가고, 님 댁에ㅡ있는 듯 없는 듯한ㅡ조가경 씨의 해설서를 하루 빨리 찾아서 본문을 쓴 님께 선물로 주십시오. 읽은 듯 아닌 듯도 아니고 집에 있는 듯 없는 듯한 책의 존재는 대체 무언가요! 저도 예전 집구석에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습니다. 그 중 10분의 1을
제가 읽었을까요? 천만에요. 100분지 1도 나는 읽지 못하고서 내 집, 내 손에서 떠났어요. 그게 무슨 자랑입니까!
제가 읽었을까요? 천만에요. 100분지 1도 나는 읽지 못하고서 내 집, 내 손에서 떠났어요. 그게 무슨 자랑입니까!
어떤 존재에게는 여러 속성이 딸려 있는데요 그 속성은 본질적 속성과 부수적 속성으로 나뉩니다 부수적 속성의 유무에 따라서 그 존재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데요 본질적 속성을 잃으면 그 존재는 더 이상 그 존재가 아닌 것이 됩니다 삼각형의 경우 세 변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 각이 있고 그 내각의 합이 180도가 된다는 것이 본질적 속성이라면 둔각이나 직각 예각으로 분류되는 성질과 같은 경우는 본질적 속성이 아닙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말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질은 인간 개체가 유전자의 운반체라는 것 그래서 인간은 유전자를 이어나갈 생식행위를 하고 유전자의 운반체인 자녀를 생산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 본질적 속성에 반하여 살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입니다
고독사님 말씀대로 주소를 적어주시면 제가 실존주의에 관련한 책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최고!
그런데 님의 말씀엔 형식주의와 논리주의가 엉켜 있네요. '두 점 간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다'는 식의 유클리드 기하학은 집합론 이후에 많은 도전을 받았고, 수학계 내부에서는 '공리'로서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책은 꼭 부쳐 주십시오.
저는 기하학을 잘 모릅니다만 평행선 공리에 문제가 좀 있고 그것이 리만 기하학의 아이디어와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해 보았습니다
vioree@naver.com => 여기로 주소를 보내주시면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방금 생각한 건데요 본질은 존재를 관통하고 있는 그 무엇이고요 본성은 잠재되어 있는 성질로써 발현되어야 하는 그 무엇인 것 같네요 어떤 것의 본질로서 본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직 정확하게 정리된 말씀은 아닙니다만
세상엔 칸트의 말씀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요. 가령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에서, 칸트의 말씀처럼 "나의 타고난 인간적 능력이 노동을 통하여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의무론을 강조할 때 과연 이사회는 내게 의무의 기회를 부여하는가? 따위.
예, 본성과 본질은 다르지요. 본질은 말 그대로 실체나 실재이고 본성은 인간의 특질을 설명하는 말로써 자주 쓰입니다.
제 생각에 의무는 세 단계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 1 해야 하므로 할 수 있다 / 2 할 수 있으므로 한다 / 3 하면 된다 // 1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거고요 2는 계획을 구체화시키는 조직 3은 실행하는 사람들 // 이런 식의 단계를 거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본성이 튀어나온다' 는 문장등에서 본성과 본질은 구별될 수 있을겁니다. 본성은 타고난 성질이고 잠재태와 현실태 사이를 오갈 수 있을거에요. 본성이 튀어나왔다가 다시 숨겨지고.. 이런식으로요. 반면 본질은 개별 사물의 무엇임 이기 때문에 사물이 그것을 상실하는 순간 그 사물도 사라질 것입니다.
※4. 그러나 박정희 식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서 노동하는 사람은 칸트가 말하는 노동의 참된 의무가 아닙니다. 님은ㅡ위의 의무에서ㅡ가장 중요한 한마디를 빠트렸어요. 바로 '자율(성).' 마찬가지로 누가 무슨 직업을 가진다고 할 때, 그게 국가사회의 효율성에 의해 분배되는 것이라면 이미 참된 노동이 아니죠. 그러니 오늘날의 똑똑한 2030 실업자들은 칸트
칸트 식으로 따지면 아주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입니다. 그들은 과거 경제개발계획 세대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진화했죠.
꼭 국가단위의 의무가 아니더라도 개인단위에서도 마찬가지로 말씀드린 세 단계를 거쳐 무엇을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2030 청년들의 힘을 믿습니다.
아이고 님, 제 말은 그러니까 그들의 능력(의무)을 발휘할 공간적, 시간적 형식이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우선 마땅히(=>마뜩히) 일할 장소가 없는데 무슨 가능성이고 무슨 힘이요? 님처럼 따지면 익명의 찐따가 방구석에 누워서 딸딸이치는 거나 이건희가 조선족 여자와 떡치면서 사업구상의 일환으로서 휴식을 취하는 거나 똑같은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인문학이 님을 망친 듯합니다. 님의 인문학(철학은 아니니까)은 아무런 절실함도 목적도 없어요. 주제넘은 평가이지만, 사실입니다.
철학사적으로 실존주의라는 사조를 허용하고 있긴 하지만, 저로서는 그 주장에 몹시 회의적입니다. 실존주의를 따로이 떼서 철학공부를 할 순 없습니다. 정히 실존주의만을 파고 싶다면 근현대 시나 소설을 자주, 많이 읽고 니체의 불연속적인, 그러나 끊임없는 아포리즘 저서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실존주의를 떠나서 저는 하이데거와 그의 아류인 사르트르를 철학을 빙자한 일종의 문학적 사기술, 철학사에 대한 기만이라고 여깁니다. 하이데거는 어려워서 못 배우는 게 아니라 배우더라도 아무런ㅡ철학적ㅡ인상을 내게 남기지 못합니다. 사르트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의 개념어를 창조하기 위해 책의 절반을 문학적 소동으로 낭비합니다. 망설임과 염려를 그들처럼
고상하고 상세하게 기술하는 사람은 그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겠지만, 그따위ㅡ존재론적=>실존적ㅡ간절함은 이제 현대인 모두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주제로 석박사 학위논문을 쓸 게 아니라면, 키르케고어와 하이데거, 야스퍼스, 사르트르 따위를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 진짜로 "내" 인생을 낭비하는 겁니다. 키르케고어를 읽을 시간에 교회에 나가서 진지한 신앙인과 교우하고, 하이데거를 읽을 시간에 플라톤 원전을 처음부터 제대로 읽으십시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보다 구토가 훨씬 더 재미있으며,
그보다 더 재미있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은 까뮈의 '이방인'입니다. 예, 장담합니다!
시인들의 왕국인 한국엔 뛰어난 현대시인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 자체가 이미 실존주의자이며 실존주의 철학자예요. 그 사람들은 니체와 키르케고어,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에 대해서 웬만한 철학전공자보다 더 박식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을 하고 싶다? 그러면 님은 문학 공부를 하고 소설가나 시인이 되십시오. 그게 실존적 룰입니다.
고수들의 향연이군요
저도 고수가 아니지만, 위에 댓글을 쓰는 분은 철학의 철자도 모르는 초심자입니다.
저는 실존주의는 관심을 좀 갖다가 다른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게 된 경우입니다.
많은 의견 감사합니다.
넵. - dc App
ㅋㅋㅋ독사햄 오늘 여기저기 날아다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