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조선에서는 green과 blue를 모두 綠자를 써서 '푸르다'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사람을 불러놓고 '푸르다'라고 하면 산 속에서 자란 사람은 울창한 삼림의 '푸름'을,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먼 바다의 '푸름'을 떠올릴 것이다. 

시간이 지나, green과 blue를 구분하고, 푸르딩딩하다, 새파랗다, 퍼렇다... 같은 색을 나타내는 단어가 생겨도 우리가 언어라는 필터를 한번 거치고 상대에게 전해지는 한 우리가 말하고자 한 그것과 상대가 떠올린 그것은 다를 것이다.

선천적으로는 장애를 가졌거나, 유전자가 다름의 이유로, 후천적으로는 자라난 환경, 사상, 경험, 그 당시의 상황 등의 이유로 말이다. 

그리고, 서로 연상한 것이 다름으로 인해 그 말의 뜻은 구전, 번역, 요약, 설명을 거치며 점점 변질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떠올린 그것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면, 지난 선인들이 남긴 저서, 극, 논문들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무언가 언어로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방법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