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깨달았다. 죽으면 왜 안돼. 남들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지만 죽어도 된다.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실행할 돈도 있다. 언제든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그게 오늘은 아닌 것 같아진다.
우울이 현대인의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근 10년 동안에는 보수적인 국가 행정의 입으로 우울을 소리 내어 불렀고, 그전 10년 동안에는 알음알음 세상에 죽지 않으려고 우울과 고군분투 개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20년 동안 나도 고군분투를 해왔다. 바깥세상의 눈에 내가 가장 고요해 보였을 시절에도, 그것은 언제나 똥물을 튀기고 진흙을 손톱 밑에 채워 넣는 개싸움이었다. 언제나 치열했다. 죽으면 안 된다. 죽지 않도록, 혹은 죽고 싶지 않도록. 경계하고 긴장하고 정신을 차리도록 뺨을 세게 쳐야 한다. 내게 유효한 방법을 일러주는 사람을 찾을 수 없고, 일러진 방법은 죄다 오래지 않아 허사로 귀결되어도 만근 같은 눈꺼풀을 들어 눈을 똑바로 뜨고, 천근 같은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무릇 --의 도리로 괘씸하고 치욕스럽게 감히 죽어서는 안 된다. --가 무엇인지 당최 모르겠어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또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을 새기는 일은 때로 방금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경계를 호명하는 일이다. 그 경계란 무엇인가. 절대로 닿지 말아야 하거나 기어코 뛰어넘어야만 하는 작은 사선이다. 발목이나 겨우 간질이는 물에 파도가 쳐봐야, 그 높이의 물살이 거세 봐야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고작 그 정도의 경계, 나의 생존까지 위협하지는 않는 경계로 오늘과 내일을 접고 밀어 모양을 만드는 일에는 문제가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언제부터 점점 깊은 물로 들어가 이기지 못할 물결 앞에서 질 것을 강렬하게 예감하면서도 --해야만 한다, --해서는 안된다, 염불을 외게 되었을까. 고작 무릎까지만 물이 차도 계곡의 물살이 거세거든 사람은 휘말려 떠내려간다. 죽음이라는 경계는 고층 건물보다 높고 거대한 파도다. 나는 저편에서 그것이 내일처럼 밀려오는 것을 본다. 결코 닿거나 쓸려가서는 안된다-라고 말하면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돌아보면 내게 죽음은 코끼리였다. 세상에는 셀 수 없는 사건의 가능성이 있고, 흐린 날씨에 위험할 정도로 침울해질 흔한 날들이 콧등에서 나를 위협하고, 내게 주렁주렁 달린 문제들이 연속할- 길이가 가늠되지 않는 미래와, 내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고들과, 귀에다 속삭이는 안부조차 침투하지 못하는 두터운 적막에 잡아 먹힌 지 오랜 고독과, 해소되지 않고 영원히 누적되는 피로의 역사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익숙한 가능성에 우울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죽지 않는 방법, 죽지 않을 가능성, 죽음의 가능성이 지워진 하얗고 깨끗한 해의 가능성은 그 사이에 끼워넣기에는 너무나 인위적이고 어색해서. 다이소에서 발견한 싸구려 조화처럼 선명한 가짜 같다. 저것이 진짜 있는 가능성이 맞나? 죽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죽지 않는 가능성, 죽음이 배제된 미래라는 것은 왜 이다지도 가짜 같이 어설프고 싸구려 같은가. 죽지 말아야 한다. 그 말에 눈에 핏발을 세워 매달리고 똥물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나는 점점 뚜렷하고 선명해지는 죽는 일을 외면하는 일이 고되고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에워싼 똥물은 깊고 짙어졌고, 가짜처럼 희고 깨끗하며 불가능한(듯한) 해는 그 형체가 점점 더 흐려지고 촉감도 기억나지 않아서 종래에는 그것이 허상이라는 생각에 무엇을 쥐고 매달려야 하는 지도 갈피를 잃었다. 악몽이었다. 나는 사실 그런 가능성이 뭔지 모른다.
죽음이 이토록 금기인 세상에서도 매일 경계를 넘는 이들의 소식을 듣는다. 좀 더 조용한 사람과 좀 더 슬픈 사람과 좀 더 억울한 사람과 좀 더 외로운 사람들이 저마다 떠난다. 어딘가에서 전해지는 비극과, 비극을 추측하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성의가 게으르고 지루하다. 누군가 나의 비극을 섣불리 아는 체하거든 화가 난다. 성의 있게 아는 체하여도 마찬가지다. 내 비극이 너의 비극보다 못할지언정 너는 결코 내 비극을 모른다. 나는 언젠가부터 대신해서 억울했다. (사실 그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냥 내가 억울했다.) 내가 이렇게 수고하고 있듯이 당신도 안간힘으로 수고했을 것이다. 깜깜하고 적막한 구덩이에 갇혀 바닥을 네 발로 기어 다니느라 똥물을 첨벙 튀기며 긴 계절을 견디는 중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에겐 몇 푼이든 당장 쓸 돈이 있고, 지난 계절의 코트 주머니에는 잊힌 동전이 있고, 예적금 통장에는 저마다 나름으로 아껴둔 숫자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만지지도 못하는 내 돈 같지 않은 보증금이라도 아직 얼마 남았을 것이다. 좋아하던 과자나 차가 주방 구석에 잊힌 채 남아 있고, 입고 나갈 일이 좀처럼 없던 아끼는 옷이 한 두 벌쯤 있을 것이다. 내일 죽지. 이제 가는 데 뭐가 급하다고. 엄두도 안 내본 자연산 참돔이라도 까닭 없이 시켜 먹든가, 어느 나라든 편도행 비행기 표를 사보든가, 계절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야간 택시로 먼바다를 간다고 해도 무슨 걱정이라도 되나. 나는 당신도 수고했을 것을 안다. 그리고 이렇게나 수고한 사람에게는 그런 것을 해줘야 한다. 죽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그냥 수고한 사람에게는 수고했다고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수고했기 때문이다. 모든 수고를 내려두고 게임에서 퇴장한다면 네 발로 엎드린 자도 그만 두 발로 서서 위로와 박수를 받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궁지에 몰려, 벼랑 끝에 서서, 지쳐서 눈앞을 분간하지 못해서 순간에 죽으면 안 되겠다. 나의 비극을 게으르고 건방지게 아는 척하는 사람들에게 넘겨 손 놓고 당해서는 안 되겠다. 그 누구도 나의 수고를 발굴해내지 못하고, 납작하게 불행이라고만 쓸 것이다. 함부로 유치한 이모지나 붙이고 한 마디를 얹을 것이다. 불행은 원인이고 나는 그로 인하여 수고가 많은 사람이다. 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가 퇴장하거든, 떠나는 내게 들려줄 말은 그토록 길고 치열했던 수고로운 시간에 대한 위로와 치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누가 해주겠는가. 내 수고와 비극을 아는 체 해도 괜찮은 사람이란 좀처럼 없으므로, 최적임자는 내가 아니고서야.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저기에서 멈추지도 않고 밀려오는- 거대한 것에 닿기만 해도 죄를 짓게 된다는 거대 코끼리, 쓰나미에 대해 본의 아니게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제법 귀여워하지만 낡고 성치 못한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생전에 성의껏 밝고 귀엽게 돌보는 장소여도 여기서 웅크리고 죽었다가는 경제적 궁핍과 고독에 잡아먹혔다고 해석하려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된다. 이토록 나름의 긴 시간을 수고한 나는, 그토록 사랑하는 활짝 트인 풍경. 시시한 남의 아파트나 남의 사무실에 침략당하지 않은 하늘이 시야를 버겁게 채우는 풍경을 보며 그동안의 수고를 하나씩 기억해 낼 자격이 있다. 어쩌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생한 기억들을 손 위에 꺼내 올려보고는 마침내 엉엉 울 수도 있다. 있음 직한 식순이다.
국내 어느 근사하고 고요한 산골짜기도 근래에는 사시사철 예약이 꽉 찬다니 불시에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비하기에 적절치 않다. 10분 걸어 전봇대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도 신경 쓰인다. 게다가 혹여 근처에서 말소리가 들려오더라도 이해하지 못하고 새소리나 되는 듯이 흘려들을 수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어딘가 땅이 넓고 거대한 산이 있고 집 밖에 드러누워 오래 딴생각을 해도 춥거나 더워 곤란하지 않을 외국의 지역이 후보가 된다. 공항에서 그 산골을 찾아가는 데 택시를 탈 것이다. 그러니 그 교통비도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생에 마지막 비행을 반나절 한나절 다리를 접은 채 괴로워하며 아껴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퍼스트클래스는 아니어도 최소한 비즈니스를 타야겠다고 결심했다. 귀국 티켓이 없으면 입국 심사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입국 심사 직전이나 혹은 출국일에나 환불 가능한 티켓을 샀다가 입국 후에 환불을 하겠다는 계획도 세운다. 숙박비에 보태어 쓴다거나 어딘가 쓸 데가 있지 않을까. 항공권과 현지 교통비, 고요하고 깨끗한 장소에서 여독을 풀고 지난날들을 여유롭게 회고하기 위한 체류비. 대강 1000~1500만 원 정도일까. 심지어 유럽이나 서구 선진국을 가는 게 아니면 훨씬 더 저렴할 것이다.
어떻게 죽을까. 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스위스 안락사는 그렇게나 비싼데도 사람들의 생각처럼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관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에 피로하고 지쳐있을 것이다. 스위스에 입국한 이래로 들려오는 외국어에 긴장해 지쳐있으며 답답할 것이다. 다정하거나 신뢰 가는 얼굴을 한 직원들이 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여 한편에 누적되는 피로와 의구심 그리고 체념이 섞인 마음으로 대충 진행되기를 기다리거나 파파고 번역기를 손에 들고 있을지 모른다. 나의 고요하고 적막한 무드는 이미 모두 망가졌다. 심란한 마음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며칠쯤 일정을 조정하겠느냐는 다정한 질문을 받으며 차분히 결정을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동생 말처럼, 죽기 위해서 미리 강남역 근처의 영어 학원을 수개월 다녀야 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가부장적 가정에서 장녀로 자란 나는 염치가 있다. 나의 죽음이 누군가를 특별히 괴롭게 하지 않을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 고민한다. 거대하고 험준한 산 어딘가에서 낙상사하기. 험준한 산맥 어딘가에서 목격자 없는 사건이 되어 영원한 비밀이 되기. 그러나 죽기 직전이라고 다이빙이 안 무섭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죽는 게 두려워서는 아닐 텐데.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수면제 먹기. 너무나 역사가 오래된 수법이라 세상은 뻔한 수법이 성공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모양이다.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어 내키지 않는다. 목을 매기. CSI 시리즈의 팬이어서 목을 맨 사체가 어떤지 들은 것이 너무 많다. 나를 거둘 타인들에게 그나마의 염치를 차릴 방법을 탐색하는 중이니 선뜻 택하고 싶지 않다. 마침내 실행했을 때라니 결심이 굳을 것이다. 곡기를 끊고 아사하는 것은 그동안 해보지 않은 생각인데 깨끗하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 약간의 수면제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여기까지 계획을 세웠을 때 깨닫는다. 내게는 이것을 당장 실행할 돈이 있다. 거대한 파도가 코 끝에 닿을 때. 얼굴과 머릿속과 속옷 안까지 적시고 좀처럼 마르지 않는 지긋지긋한 공허와 불행과 권태와 적막에 마침내 백기를 들어야 할 때. 그게 당장 내일이거나 오늘 저녁이어도 나는 궁지에 몰려 손쓸 수 없이 흔하고 뻔한 불행으로 멋대로 각색당하고 끔찍한 이모지 형에 처해지는 대신 이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 다만 덜 괴로운 언젠가를 영원처럼 유예하며 모아 온 약간의 돈을 남기고 가기가 억울하고 아깝다. 딱히 사고 싶은 것은 없지만. 그동안 필요하지 않다며 선택하지 않았던 밀려난 모든 우선순위도 이젠 선택해보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가장 비싼 모둠회를 매일 시켜 먹고 에어컨 혹은 보일러를 양껏 틀고서 시시하게 벌어둔 돈을 시시하게 탕진하는데 얼마나 걸리나. 막상 계산하니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나는 당장도 이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 딱히 살고 싶어지는 것은 아닌데, 내일이든 모레든 언제든 실행할 수 있다. 그러고 나니까 그날이 딱히 오늘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살고 싶다는 아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것이 오늘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기서 밀려오던 파도가 썩 두렵지 않다. 나는 선수칠 준비가 되어있다. 끌려가지 않아도 된다. 내 죽음이 내 손에 있다. 나는 언제든지 내 맘대로 죽을 수 있다. 보폭을 넓혀 편하게 선다. 일어날 일이 무엇이든 기다려본다.
그런데 어쩌면 이쯤에서 걱정이 생긴다. 1000만 원 남기고 다 쓰고 죽겠다고 돈 쓰다가 갑자기 살고 싶어지면 어떡하나. 막막한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거기서부터는 외전이다. 나는 지금보다 더 가진 것도 없는데 강렬하게 살고 싶어서 해안가에서 등 돌려 도망갈 궁리를 하는 사람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그 애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그 애가 답을 찾겠지. 그건 지금의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그건 본편 이후에 달려 나갈, 내가 모르는 사람의 외전이다. 지금 이 순간 서있는 나는 저기서 다가오는 선명한 죽음을 보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내 죽음을 손에 쥔 나는 여전히 죽거나 혹은 살고 싶어진다. 유일한 걱정거리가 살고 싶어 질지 모른다는 거라니. 웃기니까 아무렴 대충 그만 걱정해도 되지 않나 싶고. 비즈니스 항공권은 오늘 살 건 아닌 것 같고. 어제도 아니었고 그저께도 아니었다. 때로 그날이 온 것 같으면, 남기기 억울한 돈으로 비싼 회를 시킨다. 그다음 날에는 날씨가 맑아서 어느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친구를 만나고. 그다음 날에는 다시 손바닥 위의 죽음을 본다. 그런데도 좀처럼 그날은 오지 않는다.
어느 시절이나 그 시절을 견디는 방법이 있다.
언젠가 돌아보고서는 기가 차서 꼴통이라고 외치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죽을 수 있다. 죽어도 된다. 내 죽음을 내 손바닥 위에 올린다. 공깃돌처럼 굴리고 만진다.
언제든 시시하거나 너무 급하게, 너무 초라하거나 불쌍하지 않도록. 나는 내가 수고한 걸 아니까.
그게 오늘은 아니니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어제 한 일을 생각하고, 남은 돈이 아직도 있어서 내일 죽지도 않을 것 같으니까 내일 날씨를 확인하고. 내 죽음이 내 손 위에 있어서, 언제든 비행기표를 사면 그만이어서, 시시하고 초라한 일을 해도 아무렴 상관없지라고 마침내 말한다. 시시한 돈을 벌어도 아무렴 상관없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어도 된다. 내가 가능한 마지막 순간까지 수고할 것을 알고 있다. 내일 죽어도 돼서, 오늘 죽지 않는다.
안돼가 아니라 안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