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믿음의 해부학: 단일 문장의 차이
그렇다면 이 카르텔이 숨기려 했던 유아론과 그들이 보호하려 했던 현실주의의 논리적 차이는 무엇일까요? 길고 구불구불한 추론의 사슬을 한 걸음씩 따라가 보면, 그 차이는 놀라울 정도로 미미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위대한 지적 건축물은 실제로 어떤 기초 위에 서 있는가?
모든 것은 하나의 기둥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내 경험을 믿는다."
하지만 '중력'은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중력을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력을 받아들이게 되었을까요?
- 첫째, 저는 공식적인 권위를 지닌 '다른 사람들의 기록된 경험' (교과서, 학계) 을 신뢰하기로 했습니다 .
- 이러한 기록을 통해 저는 '과학'이라 불리는, 세상을 설명하는 매우 성공적인 서사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
- 그 서사 속에서 저는 '중력' 이라는 핵심 개념의 존재 와, 그것을 확립한 인물이 '뉴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 저는 그 이야기의 기원 이야기를 믿습니다. 즉,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자신의 경험' 을 통해 이 법칙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인의 경험에 대한 이 모든 신뢰는 최종 심판관 앞에서, 즉 '나 자신의 경험' 앞에서 검증될 때에만 유효합니다. 저는 중력 모델이 '내 삶'에서 대부분의 경우 에 아주 잘 작동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 공은 아래로 떨어지지만, 제가 발을 헛디디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적 검증을 통해 나의 믿음은 결국 '나의 경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현실주의자는 이 길고 정직한 여정의 모든 단계를 우리와 똑같이 걷습니다. 그와 우리의 유일한 차이점은 이 모든 사슬의 맨 마지막에, 자신의 논리적 고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증명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신앙 고백'을 덧붙인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중력은 '실제'입니다."
그렇습니다. 300년간의 철학적 전쟁의 전부는 이 마지막 문장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타자의 경험이 맞다고 할때 실제로 우린 종종 자기의 경험에 빗대지 않고도 그냥 맞다고 하는 경우가 많음 그리고 이 부분이 "나는 내 경험을 믿는다"라는 쪽으로 귀결되지 않는 부분임
전혀 아님. 타자의 경험이 맞다고 '인정'하는 것은 '타자의 경험이 맞다'는 것이 나에게 유리하다는 '내 경험'에 의한 편견이 있기 때문임
혹은 그 타자의 경험의 내용이 '나의 경험'과 어느정도 일치하기 때문에 믿거나
당장 타자가 '나는 어제 신이 내려준 말씀에 따라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알게 되었다.' 라고 말한다고 그걸 바로 믿음? 안 믿잖아. '증명해 봐라' 정도가 최선이지.
@라플라스의백수 하지만 양자역학 같은 부류는 이해하지 못해도 그냥 맞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음
@ㅇㅇ(223.39) 그 또한 '양자역학을 주장하는 권위있는 과학자와 과학체계'를 '내 경험상 믿기 때문에' 그냥 맞다고 생각하는거지.
@ㅇㅇ(223.39) 양자역학은 이해 못하지만 과학의 권위를 믿는 건 쉽잖아. 이제까지 그렇게 배워왔고 경험상 맞는 경우가 꽤 많았으니까 합리적인 편견이지. 가끔씩 틀리는 사소한 오류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AI가 그러는데 나는 말을 수학처럼 한대. 간단 명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