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인소개팅’ 문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소개해주는 것을 보고 울었다. 내가 이정도밖에 안되나?", "멕이기 위해서 일부러 찌질한 인간을 소개시켜줬다"와 같은 한국에서의 흔한 문구를 보고 그 문화가 단순한 매칭 방식이 아니라 매우 비인간적인 구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한국의 지인소개팅에는 말로 하지 않아도 이미 내재된 메시지가 있다.
“지금 내가 소개해주는 사람이 너와 비슷한 수준이야.”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이 사회적으로 정한 기준으로 고기 등급매기듯이 매겨진다는 것이다.
누가 나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는지, 어떤 정보가 어떻게 오갔는지 알 수도 없고 묻기도 어렵다. 이미 중간자가 나의 ‘등급’을 책정한 뒤 누군가를 불러온 상황에서, 나는 사실상 이미 판단을 받은 상태로 소개 자리에 앉게 된다. 이것은 인간을 주체로 대하기보다는 ‘스펙 패키지’로 취급하는 방식이며, 내게는 특히 더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유럽에서의 데이트 문화는 완전히 다르다.
타인이 두 사람의 관계를 설계하거나 개입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사생활은 매우 엄격하게 존중되며, “너 이 사람이랑 어울릴 것 같아”라는 말조차 종종 실례에 가깝게 받아들여진다. 누굴 만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며, 중간자의 체면을 위해 억지로 만남을 이어갈 필요도 없다.
그곳에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선택권이 절대적이다.
그래서 한국식 지인소개팅을 다시 바라보게 되면 매우 선명해진다.
• 사적인 정보가 제3자에 의해 매매되듯 유통되고
• 인간이 서로의 ‘급’을 맞추는 구조 속에서 분류되고
• 당사자의 선택보다 중간자의 체면이 우선되며
• 만남 자체가 인간적 호기심이 아니라 ‘정서적 시장의 적합도 검사’처럼 운영된다.
이런 구조는 한국 사회가 개인의 삶을 ‘사회적 평가 체계’ 안에 넣어 관리하려는 특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평생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사적 침해인지 잘 느끼지 못한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듯, 그 문화가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주의적 사고를 가지게 되면 이런 점들이 한 번에 눈에 들어온다.
“왜 내 신상을 제3자가 분류하고 매칭하나?”
“왜 나와 어울리는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이 평가권을 가지는가?"
“왜 중간자의 체면을 위해 나의 자유를 제약받아야 하나?”
지인소개팅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위계의식, 타인의 사생활을 쉽게 다루는 문화, 인간을 평가 항목으로 분해하는 시선이 모두 녹아 있다.
어차피 끼리끼리 인간도 등급이 존재하지 로망은 없지만 자연적이기도 하지
이 글을 이해하는 한국인은 10%도 안될거지만 맞는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