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으로 보면 유명한 멜로영화 '노트북'이나 '타이타닉'의 줄거리는 결국 불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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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여자는 이미 약혼자나 연인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 관계를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그런데 영화는 이런 비도덕적 행위를 ‘로맨틱’하다고 묘사한다. 관객은 배신당한 사람의 고통이 아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감정선에 감정이입하도록 유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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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영화는 매우 교묘하게 도덕적 시점을 삭제한다. 대신 카메라는 철저히 ‘감정의 진정성’에 집중한다. 배신이나 책임은 사라지고, 오직 '그때 그 감정이 진짜였는가'가 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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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잭과 로즈의 키스는 ‘부도덕한 외도’가 아니라, ‘계급을 넘어선 순수한 사랑’으로 재탄생한다. 앨리의 배신은 ‘약속의 파괴’가 아니라 ‘사회적 구속을 깨뜨린 자기 발견’으로 읽힌다. 결국 이 영화들이 로맨틱해 보이는 이유는 감정의 서사가 도덕의 서사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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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은 단지 현대 멜로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한쪽 시점만의 서사’는 언제나 폭력을 성스러움으로, 배신을 헌신으로, 범죄를 정의로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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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적 시점을 바꾸는 순간, 행위의 본질은 완전히 전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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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도 이런 사례는 무수하다.
고대 아즈텍 문명에서 인신공양은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한 ‘성스러운 의식’이었고,
중세 유럽의 십자군 전쟁은 수많은 학살에도 불구하고 '신의 뜻을 실현하는 성전'으로 포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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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도 국가의 입장에서는 ‘희생적 충성’으로 찬양되었다.
즉, 폭력이나 배신조차 특정 시점에 서면 언제든 숭고함으로 둔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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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문학의 서사는 이 원리를 정교하게 활용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중년 여인은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작품은 그녀의 죄책감보다는 ‘잃어버린 열정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주인공의 불륜은 파멸로 이어지지만, 관객은 그녀의 도덕적 타락보다 사랑의 진정성에 감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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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작품의 공통점은, 감정이 윤리보다 우위에 놓인 세계관이다.
‘사랑의 진정성’이라는 말은 마치 도덕적 책임을 무력화시키는 마법 주문처럼 쓰인다.
“진심이었으니까 괜찮다.”
“그때는 그게 사랑이었다.”
이런 식의 감정적 논리가 반복되면, 사회는 점점 도덕을 상대화하고, 진정성만을 선으로 착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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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러한 서사 구조는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현대 문화의 도덕 감각을 형성하는 강력한 기제다.
인신공양이 제사자의 시점에서 ‘성스러운 의식’으로, 불륜이 연인의 시점에서 ‘순수한 사랑’으로 재해석될 때, 사람들은 공통된 착각에 빠진다.
감정의 강도 = 진리의 강도라는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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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감정의 진정성은 도덕적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어떤 행위가 인간적으로 뜨거웠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사랑이든 믿음이든, 그 진정성은 윤리적 책임과 결합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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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노트북'이나 '타이타닉'이 남기는 나의 감상문은
“이 사랑이 아름다웠는가?”가 아니라
“이 사랑은 타인의 고통을 대가로 한 것은 아닌가?”이다.
결혼도 매춘과 비즈니스니까 그후에 사랑을 만난게 이상할건없지만 정리는 했어야하는게 합법적?이겠지?